안녕하세요, 여러분! 마젠타와 마찬가지로 "커피우유"와 "김용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알이즈웰입니다. 여러분, 커피우유는 역시 서울우유죠. 바나나우유 하면 빙그레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살았던 홍콩에는 <홍콩문화박물관>이 있는데, 1층에 상설 <김용관金庸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젠타만은 여기 가면 뛸듯이 기뻐할 듯합니다(한국 관광객 중에 갔다는 사람 본 적 없음...). QWER이 나중에 홍콩 팬미팅이나 콘서트에 가면, 자컨(자체 컨텐츠) 만드는데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용 무협소설 줄줄 외우는 여자아이돌이라...아재들 좋아 죽습니닷, 앜앜앜! 저는 마젠타가 "여자 몸에 깃든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남자가 아니라 제 또래 아재가 빙의한 듯합니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진 조폭의 영혼이 갓난아기에게 들어간 <어덜트 베이비>가 갑자기 읽고 싶어지네요!
오늘은 제가 QWER에 입덕하게 된 계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저도 왜 이렇게 열심히 기록을 남길까 스스로도 의아합니다. 하지만 뭔가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덕후" 성격이라, 정리해 놓지 않을 수 없네요. 게다가 QWER은 앞으로도 성장세를 지속하며 수많은 떡밥을 뿌릴 예정이라, 지금쯤 정리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는 기억이 희미해져 불가능할 듯합니다. QWER에 빠져드는 계기는 각자 다를 텐데,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의 저는 본업 이외에 "운동"과 "여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운동" 파트에서는 <피지컬 갤러리> 및 달리기 채널을 즐겨 보았고요. "여행" 파트에서는 빠니보틀과 곽튜브, 캡틴따거 등 여행 유튜버 채널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계란 및 빠니보틀과 합동 컨텐츠를 만들었던 쵸단이나 마젠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의 컨텐츠를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름만 아는 정도였고, 특히 마젠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개그력 만땅의 방송천재라는 사실은 운동 유튜버나 여행 유튜버와의 콜라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니까요. 쵸단은 운동 신경이 뛰어난 미소녀였지만, 제 관심사는 오직 <피지컬 100>이나 <쇼미더바디>에 나오는 울퉁불퉁한 근육남들이었습니다. 동네 헬스장을 다니며 쇠질과 러닝에 정진했던 저의 스승들이었죠. QWER의 나머지 멤버인 냥뇽녕냥이나 시요밍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제가 좋아하는 운동 유튜버 김계란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평소에 구상했던 컨텐츠를 찍지 못하고 5억 원 이상의 손해를 봅니다. 그리고 그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 빠니보틀 및 쵸단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우정여행을 떠납니다. 낮 동안의 평범한 동물원 관광 등을 마친 일행은 번화가로 접어들어 라이브 바에 입성합니다. 그런데 앞열에서 그루브를 타며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즐기던 쵸단을 가리키며, 김계란은 "She is a drummer!"이라고 난데없이 소개합니다. 타고난 부끄럼쟁이에다 무대공포증까지 있는 쵸단이 몸서리쳤지만, 그녀 빼고 모든 이들이 환호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s> 연주의 드럼을 담당하게 되었고, 퍼포먼스를 직접 본 김계란은 미친 듯이 환호합니다. 참고로 그 연주 영상을 보면 쵸단이 할머니 모자(그녀의 표현)에다 하늘하늘한 여름 원피스를 입은 채 드럼을 갈기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미 치사량의 갭모에를 느낄 수 있습니다. 덕후인 김계란은 여기에서 쵸단의 실력뿐만 아니라 아이돌로서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발리 여행 전에도 일본 애니 <최애의 아이>를 보고서 글로벌 걸밴드를 만들 꿈을 키우고 있었던 김계란은 쵸단을 설득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장물 스토리에 열광하는 저는 조금씩 흥미가 생겼죠. 그래서 QWER 채널(구: 타마고 프로덕션)을 가끔 방문하면서 멤버 모집 현황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영상을 다 챙겨보지는 않았습니다. QWER 결성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요.
심지어 이제는 전설이 된 "김계란과 시요밍의 오사카 공원 만남" 영상 또한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참 고생했구나. 캐릭터가 엉뚱하네.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노래가 좋네. 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 모집까지 끝나자 대번에 관심이 식어서, QWER을 2023년 내내 잊고 살았습니다. 첫 쇼케이스와 <디스코드>의 역주행, <롤드컵 전야제> 등도 모두 2023년 당시에는 모르던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를 QWER의 세계로 인도한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알고리즘"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자주 찾아봤던 채널을 기억해놓았다가 제 취향에 맞게 귀신같이 노출해 주더라고요.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제게, 2024년 초 유튜브 알고리즘은 QWER의 도쿄 방문기 2편을 소개했습니다. <봇치더록!>의 팬이자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제게, 두 영상은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다음 일본 여행 때에는 반드시 시모키타자와 성지순례를 가고 말겠노라 결심했지요. 하지만 이 때에도 제 주된 관심사는 QWER이 아닌 <봇치더록!>이었습니다. 수많은 여행 컨텐츠 가운데 하나로 저 영상들을 소비한 뒤, 저는 다시 QWER에 대해 호기심을 잃었습니다(<봇치더록!> x QWER 시모키타자와 성지순례는, 바위게가 된 뒤인 5월에 다녀왔습니다. 자세한 흑역사는 아래 포스팅에...).
이렇게 QWER에 무관심하게 지내던 저를 입덕시킨 영상이 바로 2024년 3월에 있었던 <진해 해군교육사령부> 위문공연 편입니다. 또 다시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이 영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상을 다시 돌려보니, 처음 보았을 때의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다시 떠올라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이 영상 설명란에 3월 17일이란 숫자가 보이는데, 이 날에 영상을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4월 1일 <마니또> 앨범 공개 이전에 보았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QWER 공식 입덕일을 2024년 3월 17일로 정했습니다.
QWER의 팬이 볼 때, 이 영상의 입덕 포인트는 한둘이 아닙니다.
첫째, <고민중독>의 일부가 대중들에게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앨범 정식 발매 2주 전에 1절만 온라인에 공개된 것이죠. 그리고 저는 듣자마자 <고민중독>에 단번에 빠졌습니다. 비록 1절에 불과했지만, "벅차오름"을 인생 모토로 삼고 사는 제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아울러 시요밍의 실제로 노래하는 모습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렇게 청량하고 깔끔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딕션은 어찌 저리 정확할까. "가사"와 "딕션"을 대단히 중시하는 제게, 한글 위주의 <고민중독> 가사와 기계처럼 정확한 시요밍의 발음은 90년대의 향수를 그대로 불러왔습니다.
쿨이나 코요테 등 그 당시 댄스곡들은 가사집조차 필요없었습니다. 길거리에 놓인 형편 없는 스피커로 듣는다 해도, 듣는 족족 다 알아들을 수 있었거든요. 한글 문장은 정확했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이런 기본이자 상식이 지난 몇 년 간 케이팝에서 등한시되었는데, QWER이 이를 부활시켰습니다. 90년대 황금기 음악을 즐기던 아재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군대 위문공연에서 타이틀곡을 선공개했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케이팝 팬덤은 여성 팬의 비중이 높으며, 이에 따라 남성들은 마케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죠.
김계란은 후순위에 놓인 남성들로부터 시작하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UDT 출신의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바도 컸죠. 결과적으로 그의 도박수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뒤로도 QWER의 군대 위문공연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고, 그녀들은 "악에 받친 무지성 안티"가 아닌 우호적인 군인들로부터 격려 받으며 무대 경험을 착실히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군대 위문공연 유튜브 채널인 <위날>은 QWER 팬채널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녀들의 영상을 꾸준히 올렸죠. 군인들의 초기 홍보 효과를 절대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셋째, 사실 이 세번째가 제게는 가장 결정적인 입덕 계기였습니다. 영상 후반부에 김계란은 군장병 4명을 무대 위로 모셔 최애 멤버를 고르라고 부탁했습니다. 군대 예능이라면 항상 있는 평범한 설정이었죠. 그리고 장병들은 차례대로, 쵸단-마젠타-냥뇽녕냥을 골랐습니다. 남은 멤버는 단 한 명, 시요밍이었습니다. 그리고 착한 장병은 "오늘 처음 들은" 시요밍의 노래 솜씨에 반했다며 시요밍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나머지 세 멤버에 비해 시요밍은 인지도가 낮았으니까요. 물론 <디스코드>가 역주행하기는 했지만, QWER 자체가 대중들에게 덜 알려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보컬을 담당하는 프론트맨임에도 불구하고, 시요밍은 마지막에 선택되었습니다. 장병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요밍이 제일 마지막에 선택된 뒤 그 장병을 안아주는 장면에서, 뭔가 제 가슴 속에 울컥하는 게 있었습니다. 남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장면일 수 있지만, 제게는 달랐습니다. 뭔가 저 아이의 조그만 등 위에는 엄청난 열정과 수많은 좌절이 함께 얹혀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시요밍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 때, 완전히 잊고 살았던 오사카 공원 김계란과 시요밍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위문공연 영상을 끝내자마자 아사히 쇼쿠사이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며, 그 전설의 영상을 차분히 다시 감상했습니다.
저는 원래 감동을 잘하는 편입니다. 특히 남녀간의 연애보다는, 가족 사랑이나 동료애, 개인의 성장 스토리에 많이 공감하는 편인데요. 군대 위문공연 편을 보고 난 뒤 재감상하는 <김계란-시요밍 오사카 공원 편>은 완전히 느낌이 달랐습니다. 예전에 봤으면서도 마치 처음 본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앞선 여러 글에서도 다뤘듯이, 시요밍 본인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사를 읊조리면서 감동을 뽑아내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또 입장이 다르죠. 영상 시청을 마치고 난 제 감상 소감은, "이 아이만큼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물론 그 때 당시는 시요밍이 얼마나 팬들을 아끼는지, 부정적 독기가 아닌 긍정적 열혈로 모든 부정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제대로 모를 때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느낌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그녀에게는 남다른 "승자 멘탈리티(winner's mentality)"가 느껴졌습니다. 이 시요밍이란 아이가 발산하는 "절실함" 및 "간절함"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렬한 간절함은 무뎌진 아재의 가슴에도 불씨를 확 당겼습니다. 시요밍을 비롯한 QWER을 덕질한다는 것은 곧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덕질로 불붙은 열정이 제 본업으로 옮겨 붙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덕질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2024년 3월 17일, 저는 제 삶에 "벅차오름"을 채워넣기 위해 QWER 팬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얼빠 포함). 물론 이제 겨우 입덕(이라기보다는 입문)한 상태이고, 5월 10일 대림대 축제 공연 오프를 뛰고 나서야 비로소 "바위게"라 자신할 정도로 deep하게 들어갔지만 말이죠.
제 동료들은 가끔 장난스레, 제가 QWER 글을 너무 자주 쓰는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냥 웃고 맙니다. 만약 제가 아닌 마젠타였다면, 매일같이 스케줄 끝내고 귀가하여 라이브 방송하고 틱톡 10분 찍고 새벽까지 연습하고 "글도 쓰고" 30분 정도 자기관리 하고 자겠지요. 저는 마젠타 반도 못 따라가니, 많아야 일주일에 두 편 정도 쓰지요.
글 쓰는게 직업이자 취미인 사람에게, QWER 글쓰기는 틈틈이 티타임 대신 가지는 소일거리 정도입니다. 게다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열정과 기쁨은 본업에도 동일한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말하자면 덕질은 본업을 위한 부스터이자 에너지드링크입니다.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지요. 동기부여와 열정, 벅차오름과 활력을 잃은 중장년 남녀에게 진지하게 아이돌 덕질을 권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만 외모로만 덕질하면 금세 한계가 와서 자꾸 어린 친구들로 갈아타게 됩니다. 삶의 동기부여를 위한 덕질 대상으로는 "성장형 아이돌," 재미를 위해서는 "소통형 만담 아이돌"이 제격입니다. 그러니까 외모는 기본이요 이것저것 다 갖춘 QWER 딱 한 번만 파봐, 아조씨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