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시작 이후(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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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인트로]
<고민중독> 인스트루멘탈(보컬을 제외한 반주곡)의 볼륨이 점점 높아지면서 콘서트를 기다리던 바위게들의 기대와 긴장, 들뜸 또한 점차 커져 갔습니다. 저와 주변의 바위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QWER의 등장을 기다렸죠.
그리고 불이 꺼졌습니다.
흔한 패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러다 가수가 등장하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내일은 맑음>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컬러톤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면서, 다채로운 니트를 이쁘게 레이어링한 QWER 멤버들이 화면을 장식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BGM을 깔고서 말이죠. 포카리스웨트 시티팝 버전과 같은 상큼한 화면들이 지나가다, 화분 안에 홀로 떨어진 하늘색 퍼즐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발랄한 그녀들의 삶 속에서 무언가 하나 빠진 듯한 미싱 링크? 과연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이유 없이 예쁘기만 한 장면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팬 콘서트 중반부에 가서야 '빠진 퍼즐' 하나가 비로소 채워집니다. 시요밍의 스포로 인해 김이 빠진 채 말이죠. 그 와중에 화면 속 마젠타는 왜 자꾸 코를 만질까요? 이거 노렸네, 노렸어!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희고 붉으며 푸른 온갖 빛의 레이저 줄기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지상 최대의 EDM 페스티벌에 온 듯한 분위기로 전환되었습니다. 마치 클럽의 성지인 스페인 이비자 섬에 온 것만 같았죠. 심장에 때려박는 강한 비트의 음악 또한 그러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그린 톤의 글자와 숫자들이 어지럽게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환호성이 미친 듯이 커져가는 가운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무대 중간에서 그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래서 저는 QWER과 3Y코프레이션, 그리고 프리즘필터가 또다시 케이팝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날 팬 콘서트는 기존 케이팝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팬 콘서트'와 '단독 콘서트'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팬 콘서트는 단독 콘서트보다 티켓 가격이 낮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겠죠. 보통 팬 콘서트는 음악을 15곡 넘게 연주한다기 보다는, 팬과의 소통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그러니까 쇼케이스와 단독 콘서트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도됩니다. 쉽게 말해서, 무대 형식과 구성, 편집 등에 그렇게까지 돈과 노력을 쏟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 때문에 팬 콘서트 가격이 저렴한 거겠지요.
하지만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 그룹인 프리즘필터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MMA와 AAA 무대를 경험한 QWER의 팬덤 바위게들에게, 어중간한 무대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죠. 사실 프리즘필터가 좀 오버했습니다. 바위게들은 식당에서 주문하지 않았던 음식이 나와도 꾹 참고 먹는 무딘 수컷들이 대부분이거든요(군필여고생이기도 해서,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긴 하네요. 먹는 것에는 다들 진심이더라고요). 하지만 프리즘필터는 회사의 '공식 1호 연예인' QWER의 경우에는, (단콘이 아닌) 팬 콘서트마저 MMA와 AAA를 훌쩍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작정한 모양입니다.
에이, 기저귀 차고 올 걸... 숱한 오프 경험을 통해 체크리스트를 꼼꼼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했던 저였지만, 다음 콘서트 때는 반드시 기저귀를 챙기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QWER은 이제 '요실금 아이돌'로 등극했습니다.
[디스코드, 지구정복, 자유선언]
핑크와 화이트톤의 프레피룩 스타일로 눈부시게 빛나는 QWER이 바위게들에게 들려준 첫 곡은 다름 아닌 <디스코드>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첫번째 타이틀곡을 포함, 이날의 모든 연주목록(set list)은 새롭게 편집되고, 그에 따라 무대 퍼포먼스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거 실화냐! 그렇게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전곡을 편집하고 무대를 새롭게 꾸민다고? 팬 콘서트에서? 단독 콘서트에서도 주기 힘든 임팩트였습니다.
화려한 전광판 화면이 어지럽게 바뀌는 가운데, 핑크색 점퍼를 살포시 늘어뜨리고 끈나시를 드러낸 히나를 본 바위게들은 심정지 직전까지 갔습니다. 노렸네, 노렸어! 그러나 벌써부터 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주인공은 바로 시요밍이었습니다.
숱한 공연을 지켜본 저였지만, 제게 최고의 <디스코드> 무대는 2023년 [롤드컵 전야제] 무대입니다. 지금보다 어설프지만, 그 때 시요밍이 보여준 결기는 보는 이들 모두를 압도했습니다. 당시 QWER이 프로불편러들로 인해 겪었던 고통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평범한 악'의 실사판이 횡행했죠.
그러나 불굴의 아이돌 시요밍은 [롤드컵 전야제]에서 그 모든 논란을 일시에 잠재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대 퍼포먼스를 '기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 목소리가 더 높게 올라가는지, 누구 춤이 더 기계체조적인지, 무대에 얼마나 돈을 들였는지 등으로 자기 감동의 수치를 측정하죠. 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무서운 집중력과 진정성, 그리고 결기'에서 나옵니다. 특히 무명 가수에 가까우면서도 안티만 가득했던 QWER의 메인 보컬이, 다른 무슨 수로 처음 보는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이래서 저는 <온 세상이 QWER이다>에서 그녀를 '이 시대 마지막 열혈 아이돌'이라고 불렀지요.
그리고 2025년 1월 25일 첫번째 팬 콘서트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롤드컵 전야제]의 결기를 보여줍니다. 이를 갈고 나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매번 무대에서 진심이라는 표현도 낡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내내 거둔 엄청난 성적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팬과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 꼬북이입니다. 제가 QWER의 팬이라는 점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보다 더 많이 그녀들을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았죠. 아마 목이 터져라 "We are!"를 외치던 바위게들도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붉은 색 조명과 함께 소등된 무대는 다시 <지구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힘차게 주먹을 내지르던 시요밍이 "전속력으로 돌진해!"를 외치며 기타를 뒤로 둘러메는 장면에서 저는 다시금 기저귀를 찾았습니다. 뭐야, 시요밍. 오늘 미친 거야?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
이어진 곡은 바로 라이브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자유선언>! "1324897, 순서가 뭐 어때?" 제 머릿 속도 순서와 상관없이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춤을 추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감정은 바로 기쁨이죠. 1월 25일이니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따뜻했으며, 저는 QWER과 함께 가을 축제에 온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실 2024년 한 해를 QWER과 보냈기에, 이날 팬 콘서트에서 무대가 바뀔 때마다 사계절을 모두 경험했지요.
[멘트, 소다, 수수께끼 다이어리]
열정적인 무대가 끝나고, 드디어 '버벅대는 맛으로 보는' 멘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통상적으로 3곡을 하고나면, 한 번쯤 쉬어줘야 합니다. 강철성대 시요밍도 노래방 기계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이 어린 수컷 바위게들조차 제육볶음을 간식으로 먹는 XL 사이즈인지라, 4곡 넘게 뛰다가는 무릎이 버티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히나 탄신일을 축하하는 생일카페 여러 곳 가운데에는 아예 식당을 연 케이스도 있더군요. 무슨 놈의 생일 카페가 음식점을 차린단 말입니까! 바위게의 평균 몸무게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날 바위게들의 압도적인 덩치로 인해 객석이 비좁아, 앞쪽 A구역을 예약했던 일부 바위게들이 뒷쪽인 D구역까지 밀렸다고 합니다. 과연 패딩 부피 때문이었을까요? 뭐, 자학개그는 이까지 하고, 아무튼 가수와 팬 모두 잠시 숨을 돌릴 때입니다.
4명의 오타쿠 요정들은 무대 중앙에 모여 반갑게 손을 흔들며, 평소와 같이 인사했습니다. 그 와중에 마젠타는 "좋은 하루 보내고 있니?"로 팬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SNS에 "좋은 팬콘 보내고 있니?"라고 남겼죠. 이런 소소한 개그 본능 하나하나가 쌓여, "지난 나의 발자국에 서투른 꽃이 피어났습니다."(<안녕, 나의 슬픔> 참조) 한편 시요밍은 "저는 보컬을 맡고 있는 '밍밍' 시요밍입니다!"라고 인사해서, 시요밍단의 괴성을 이끌어냈지요. '밍밍'이라고 인사하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은데요. 역시 팬들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재주를 타고난 시요밍은 천상 아이도루입니다.
한편 오늘을 너무나 기다렸다며 전부 쏟아붓고 가겠다는 히나의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이 날을 꿈꿔왔는지 제대로 느낌이 왔습니다. 이날 콘서트 초반에서 히나가 감정이 북받쳐 잠시 울컥하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는데, 저만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97T 히나가 울 뻔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막내즈' 히나와 시요밍은 주로 자신이 억울할 때 뿌엥~ 하더군요. 예컨대 시요밍은 쇼케이스에서 <내 이름 맑음> 기타 연습이 힘들었다며 "나는 보컬인데~뿌에엥" 하는 명장면을 남겼죠. 히나 또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 MMA> 편에서, 연습하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보였죠. 무대에서 팬들에게 감동해 바로 수도꼭지로 돌변하는 분들은 바로 '언니즈'죠. 쵸단과 마젠타는 결국 둘째 날인 일요일 팬 콘서트 엔딩에서 눈물을 쏟고 맙니다. "젠타야, 토요일에 울지 않아서 실망이야! 못 본 게 억울해서 내가 울었어!" 하지만 마젠타를 저는 용서했습니다. 왜냐하면 장난꾸러기 히나가 마젠타의 고정 멘트인 "즐길 준비 되셨나요?"를 강탈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언니들에게 '목욕값'을 줄 셈이냐고요.
역시 멘트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했던 말을 반복하며 버벅대는 것이 QWER의 매력이죠. 이 공간을 바위게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며, 리더 쵸단은 "이름하여, 함성 퍼즐!"이라고 외치다가 부끄러워 그만 주저앉았습니다. 구역 별로 나눠 함성을 질렀는데, 두껍고 걸걸한 목소리들로 보아 수컷 바위게들의 짙은 농도를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쵸단은 '스태프 함성'을 유도했다가, 다시 한 번 민망함에 얼굴을 가렸습니다. 마젠타가 '고작 그 맘도 못 참고' 특유의 소심한 톤으로 "여러분, 즐길 준비 되셨나요!"를 외쳤으니, 빨리 다음 무대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새로이 편곡된 인트로가 울렸지만, 저는 바로 알아챘습니다. 이것은 바로 냥뇽녕냥 히나를 우주 최고의 덕통령으로 만든 <소다> 아니겠습니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뮤지션이 그렇게 멘트했었습니다. 자기는 <소다>의 히나 목소리가 컴퓨터로 만진 것이라고 착각했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알고 보니, 실제 목소리가 그런 걸 어떻합니까!
저는 1천만 원이 넘는 PRS 기타를 연주하며 "옹알이 랩"을 하는 히나가 전 세계 유일의 독보적인 개성을 자랑하는 기타리스트라는 점을 책에서 밝혔죠. 그녀는 말하죠.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든 일들을 어느 정도 금방 잘하게 된다고요.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끈기가 부족해, 무엇이든 대충 하다가 재미가 없으면 그만두었다고 하죠. 그런 그녀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이를 갈고 도전한 분야가 바로 '기타리스트'입니다.
물론 그녀는 이제 '제 값하는' 기타리스트입니다. 많은 프로불편러들은 지금도 그녀의 실력을 문제삼습니다. 하지만 뮤지션은 자기 곡을 제대로 연주할 줄 알면,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에 더해, 토털 솔루션으로서의 그녀는 전세계 어떤 기타리스트도 지니지 못한 '보컬'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몇 소절 되지 않는 히나 파트는 모든 바위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를 십분 활용한 이즈리얼 이동혁 작곡가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 케이스이죠.
저는 히나가 '스쿨존 창법'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콘서트장에 심심치 않게 많은 숫자를 자랑했던 초등학생 바위게들 또한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QWER은 오래오래 가야 하니까요. 지금 초등학교에서부터 바위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정훈교육용으로는 히나 선생님의 보컬만큼 제격인 것이 없지요. 축제에 왔다가 <소다>를 듣지 못했다며 뿌에엥~ 우는 꼬마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영상을 기억하는 바위게라면,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날 QWER은 <소다>를 완창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최초인데, 아마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리고...히나는 정말 너무 예쁜 거 아닙니까! 진짜 <소다> 무대를 보면서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만찢녀 덕통령'의 포스가 공연장 제일 뒷편까지 전해졌습니다. 스릉한다!
또 다시 새로운 인트로와 간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젠타와 쵸단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끝으로 <수수께끼 다이어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지만 최근 공연에서 보기가 어려웠던 <수수께끼 다이어리>. 한 때 QWER 팬덤 사이에서는 '소다 vs 수다(수수께끼 다이어리)' 대전이 일어났었습니다. 어찌 두 곡의 우열을 가리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세련된 제이팝 풍에 시요밍의 귀여운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수수께끼 다이어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OOTD(outfit of the day, 그 날 옷차림)'라는 단어도 이 노래 덕분에 알게 되었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 곡의 안무 때문에 부끄러움에 눈물을 쏟았던 시요밍. 하지만 [롤드컵 전야제]에서 선보인 <수수께끼 다이어리>는 수많은 팬들을 양산했습니다. 팬콘을 가장한 단콘에 선 QWER, 그녀들이 아낌없이 주는 선물에 저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WER 사관(史官)으로서, 그녀들의 첫번째 팬 콘서트를 소홀하게 기록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 또한 그녀들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니까요(명절 연휴에 약속이 없는 것은 안 비밀). 분량이 넘쳐 여러 편으로 나눠 게재 예정이니, 앞으로도 천천히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1월 31일(금) 12시 경에 <갤러리 카페 바이아스>부터 시작해서, 히나 생일카페 투어를 할 예정입니다. 그 때 저를 보시게 되면, 군필여고생처럼 수줍어하지 마시고 반갑게 인사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