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 情답게 (7)

자, 우리는 짧지만 가볍지 않은 논의들을 통해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제 우리에게는 서두에서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 가운데 단 하나가 남아 있다. 즉 “나는 무엇인가?”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나답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나 자신이 완전하게 존재하므로 그 완전함을 온전히 믿고 나답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엇인가?”란 질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질문은 <완전주의 – 스피노자의 反목적론>에서 상세히 다루어졌으며, 여기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나는 감정(情)이 다름 아닌 ‘나’라고 생각한다. 온종일 기쁘고 슬픈 이‘나’는 다름 아닌 ‘감정’이다. 그리고 내 감정에 충실히 살고 감정의 진실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내가 내 감정에 충실하면 행복하니, 그 행복한 주체 또한 감정이다. 또한 내가 나답게 살면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내 본성(本性)이다.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전제는‘인간은 자기 본성을 따를 때 행복하고 본성을 어기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제 본성을 따랐는데도 불행할 경우, 어찌 그 본성을 제 본성이라 할 수 있겠는가. 동물이나 식물들이야말로 제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타고난 그 자체로 완전하며, 나 자신에 해당하는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곧 나답게 사는 것이며, 나답게 살 경우 내 본성에 맞게 사는 것이 되어 필연적으로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했다.

칸트나 마르크스, 니체나 헤겔 등 오늘날 우파와 좌파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죄다 만인의 타고난 완전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우리의 논의는 도대체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근거 없는 이상주의인 것만 같다. 이 때문에 이 땅에서 멀쩡히 살아 숨 쉬는 닉 부이치치가 티브이에 직접 출연해서 모든 인간은 아름답고 완전한 존재라고 아무리 외쳐도, 주류 인문학에 익숙한 이들의 귀에는 팔다리도 없는 사람의 안타까운 ‘자기 위안’처럼 들린다.

게다가‘나답게’란 용어마저도 이미 기득권 철학에서 선점했는지라, 가령 인간의 타고난 완전성을 부정하는 아들러 심리학 전문가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郎)는 메가 히트작 <미움받을 용기>에 이어 <나답게 살 용기 高校生のためのアドラ-心理學入門 なぜ自分らしく生きられないのか>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이 열등감을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따라서는 결코 타고난 나 자신을 믿고 나답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아들러는 어째서 인간이 열등감을 타고난다고 주장하는가? 그는 인간의 기질이 존재론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아들러는 ‘기관열등성(Minderwertigkeit)’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생물학적 기반이 열등한 경우 신경증이 더 잘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어릴 때의 외상경험이나 정신성발달을 중요시했다면 아들러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바탕으로 사회나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어린 시절의 정신성발달이 인격형성의 핵심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들러는 열등성(inferiority)을 더욱 파고들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적 불완전성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고, 이 과정에 실패하면 신경증 증상이 생긴다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1&contents_id=93046

타고난 기질의 열등성에 의한 열등감을 주장하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닉 부이치치는 타고난 기질의 열등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은 타고나게 아름답고 완전한 존재라며 아들러의 심리학을 정면으로 부정할 것이다. 그리고 부이치치는 아들러의 심리학은 오류이며, 그런 방식으로는 부이치치 자신이 결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을 것이라 답했을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닉 부이치치에게 제 논리상 ‘너는 기관열등성을 타고나서 열등감에 젖어 있는 존재’라고 설명할 것이다. 이것이 닉 부이치치, 그리고 우리의 나답게 철학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더 자세히 기술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나답게’를 외치는 히트 작가의 뒤에 선 신진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갈수록 어처구니없이 좁아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게다가 <미움 받을 용기>가 한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온갖 출판사가 자신의 전문영역과 관계없이 아들러 심리학 관련 책들을 번역하려 애쓰고, 전문가들 또한 돈 되는 유행에 괜히 비판을 제기했다가 미움을 살까 봐 학자다운 양심을 잠시 접고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의 ‘미움 받을 용기 있는’ 질정은 잘 나가는 판 깨는 모양새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을 갈구하는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절실함으로 인해 ‘나답게’ 철학을 마치 물 한 컵을 마시듯 쉽게 이해하는 광경을 대학 강단에서 접하고 ‘미움 받을 용기’를 가득 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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