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두 손을 절대로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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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
QWER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저는 '깃발좌 A'와 '깃발좌 B', 그리고 '바텐더 바위게'와 함께 Cass 존으로 이동했습니다. 맥주 한 잔과 함께 속 깊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죠. 깃발좌 A 바위게의 경우 공연 전에 인터뷰를 마쳤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동행했습니다.
깃발좌 B 바위게는 바둑판 모양의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해남 버스킹에서 QWER 콘텐츠 PD인 빙빙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노들섬 버스킹에서 그가 흔든 깃발은 QWER 하이라이트 메들리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을 장식했죠. 깃발좌 A 바위게는 이번 [2025 펜타포트]에서 바위게 가입 안내 포스터가 인쇄된 깃발을 들어 시요밍을 비롯한 멤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다른 깃발러도 계시지만, 제가 연락처를 구할 수 있는 멤버가 이 두 분이라 모셨죠. 바텐더 바위게는 작년 11월에 쵸단 생일 위스키 바를 주관한 분입니다. 본디 술이 아닌 차(茶)가 취미이신데, 쵸단을 위해서 또 쉽지 않은 결단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 빈 테이블을 찾아 앉았는데, 그 옆에는 전완근 바위게를 비롯한 여러 낯이 익은 바위게들이 바닥에 앉아 김치말이국수를 먹는 중이었습니다. 참으로 온 세상이 QWER(을 좋아하는 바위게)입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QWER 덕질을 즐기는 아재들이 만나 사심 없이 하는 대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스테이지로부터 '터치드'나 '롤링 쿼츠' 등 뛰어난 밴드들의 연주가 들려왔습니다. 가서 공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때가 아니면 이 귀한 분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울 듯하여 시원한 그늘막에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때문에, '바위게 쉼터'에서 수박화채를 먹을 기회도 놓쳤죠.
4시가 넘어, 생중계를 마무리하고 휴식 중이던 '생중계 바위게'가 합석했습니다. <이망인>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시죠. QWER의 성장을 부모처럼 대견하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마음, 팀으로서의 QWER을 4명 멤버만이 아니라 소속사와 바위게까지 포함해서 이해하는 입장 등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일치했습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대화는 저녁 7시가 가까워서야 끝이 났습니다. QWER의 공연이 2시 20분에 종료되었으니, 4시간 4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네요. 이제 장기하와 크라잉넛의 무대를 즐기러 가야 할 때입니다. 저는 여러 바위게들과 함께 메인 스테이지로 이동했습니다.
장기하의 경우, 중얼거리듯 툭툭 내뱉는 그 창법은 독보적입니다. 가사 내용 또한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긴 어게인> 등을 통해 장기하의 실황 공연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으며, 이번 공연 또한 정말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펜타포트]의 음향 상태가 매우 나빴는데, 웅얼거리는 장기하 특유의 창법과 그런 음향 컨디션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부르는 노래 대부분을 알고 따라 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 음악 팬들은 가사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장기하인지라 노래를 딱히 몰라도 그냥 '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객석이 썰렁해지는 일은 물론 없었습니다. 저는 장기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충분히 즐겼습니다.
첫날 세컨드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는 데뷔 30년 차 관록의 밴드인 '크라잉 넛'이었습니다. 이른바 '조선 펑크'의 주인공이죠. 그리고 대한민국 음악 팬들을 가장 미치게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워낙 다양한 행사에서 공연했던지라, 크라잉넛의 노래는 대부분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또한 신곡이라 해도 딕션이 또렷하고 분위기가 신나기 때문에, 미치도록 뛰노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1시간의 공연 동안 몇 번의 슬램이 일어났는지 셀 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크라잉넛은 <룩셈부르크>에서 청중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길게 늘어섰다가 한꺼번에 달려와 부딪히는 '월 오브 데스(Wall of Death)'를 주도했습니다. 어지간한 국내 페스티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인데, 정말 몸이 부서져라 달렸습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이 깨져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QWER의 두 깃발좌 바위게 또한 슬램 존의 중심에 서서, 함께 즐겼습니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던 바위게들은 깃발좌를 이정표 삼아 모여, 이 밤을 뜨겁게 불태웠습니다.
이제 첫날 메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인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아지캉)'의 무대만이 남았습니다. QWER과 관련해, 아지캉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본디 QWER은 일본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의 주인공인 '결속밴드'를 모티브로 기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속밴드'의 모티브가 바로 아지캉입니다! 결속밴드 4명 멤버의 이름을 아지캉 멤버들에게서 따왔을 정도니까요.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밴드 가운데 아지캉의 영향을 받지 않는 케이스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이 밴드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수많은 히트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저를 가장 감동시킨 곡은 바로 <Re:Re:>입니다. <봇치 더 록!> 극장총집편 후편 엔딩곡이 바로 아지캉의 <Re:Re:>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봇치 더 록!> 스타일로 편곡되어 결속밴드가 불렀습니다만, 그것조차 아지캉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죠. 저는 <봇치 더 록!> 극장판 전-후편 모두 혜화역 대학로 CGV에서 친구인 '스파이크'와 함께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QWER의 모티브가 된 결속밴드의 모티브가 된 아지캉의 노래 <Re:Re:>를 저는 라이브로 듣는 극락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QWER과 아지캉은 오늘 같은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죠. 또한 연말에는 결속밴드가 내한 공연으로 한국 팬들을 만납니다.
제게는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강력한 서사를 이룹니다. QWER과 결속밴드, 아지캉 모두를 잘 알고 있는 바위게와 함께 이 순간을 누린 것조차 서사의 일부입니다. 절대 지어낸 것이 아니요,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다 보니 자연스레 완성된 내러티브죠. 그 때문에 [2025 펜타포트] 3일 동안 어떤 유명한 밴드가 내한해서 연주했든, 제게는 이 첫날이 제일 소중합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겠죠. 제게 이런 추억을 만들어 준 아지캉, 결속밴드, 그리고 QWER. 모두 고맙습니다. 알이즈웰, 성불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1V82ZUcm5M
다음날 아침, 저는 어젯밤 함께 뒤풀이를 했던 두 바위게와 [펜타포트] 2일 차 공연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경험치가 쌓여, 첫날과는 달리 쿨존(cool zone)을 적당히 오가며 체력을 안배할 수 있었습니다. 거문고를 뜯는 독특한 개성의 '카디(KARDI)', 크라잉넛 이상의 속도전을 보이며 공연장을 뒤집어 놓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은 저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살수차에서 무자비하게 뿌려대는 물세례로 인해, 저는 속옷까지 흠뻑 젖었습니다. 많은 바위게들은 '펜타포트'를 '팬티포트'라고 부릅니다. 저는 팬티까지 축축하게 젖고 나서야, 펜타포트가 팬티포트인 이유를 이해했습니다(하지만 실제로 '팬티포트 페스티벌'이 존재합니다! 펜타포트에 참여하지 못한 밴드들이 모여 인상주의 시대 프랑스의 '낙선전' 유사한 잔치를 열더군요. 올해에는 8월 2일 신촌에서 있었습니다).
이어서 아름다운 음색의 보컬이 돋보이는 일본 밴드 '오모이노타케'의 음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한 우리는 망고 빙수를 먹은 뒤 쿨존으로 돌아와, 다시 QWER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음악을 듣던지, 바위게들의 대화는 항상 QWER로 귀결됩니다. 앞으로도 QWER과 연관된 오프 행사에 참가할 계획이기에, 저는 음악에 관한 한 바위게와 함께 할 것입니다.
(XL 사이즈 바위게를 닮지 않은) 날씬한 미남 김준원이 보컬로 있는 일렉트로니카 밴드 '글렌 체크'의 공연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자리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싸 바위게 3명은 인싸들의 포스에 견디기 어려워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드디어 XL 사이즈 바위게를 닮은 '타이거 디스코'가 나와 국민체조를 리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본디 저는 춤추기를 좋아하는 홍대 한량 출신입니다. 고난도의 춤을 이 나이에 어찌 추겠습니까만(원래도 잘 못 춤), 타이거 디스코의 춤만큼은 정말 신나게 따라 췄습니다. 덕분에 저보다 더 춤을 못 추는 인싸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온종일 서 있느라 굳었던 몸도 풀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3명의 바위게는 '카네코 아야노'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솔로 가수로서의 '카네코 아야노'와 밴드 리더로서의 '카네코 아야노'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하는 뮤지션입니다. 솔로 가수인 그녀는 '아이묭'을 연상시키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하지만 이날 밴드를 이끈 카네코 아야노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넷플릭스 '밴드' 드라마인 <유리 심장>의 후지타니 나오키를 연상시켰죠. 비록 뛰고 구르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저는 이틀 공연 전체를 통틀어 '카네코 아야노'의 음악적 실험을 가장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혁오 & 선셋 롤러코스터' 공연 감상을 마친 우리는 돗자리로 돌아와 팟타이와 치킨, 그리고 맥주를 깔아놓고 늦은 저녁식사를 가졌습니다. 세컨드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는 한국의 스래쉬 메탈 밴드인 '메써드'인데, 속이 뻥 뚫리는 목소리와 연주로 우리의 고막을 시원하게 두들겨 주었습니다. 마젠타의 '도라에몽 샤우팅' 못지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QWER의 메인 보컬인 시요밍이 '위버스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명의 바위게들은 메써드의 그로울링을 배경음악으로 깐 채, 시요밍의 두서없는 잡담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뭐랄까요, 저는 이게 바로 '바위게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자 갭모에 취향'이라고 보았습니다. 가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아이돌 출신 시요밍이 헌트릭스의 <골든>을 연습하는 영상을 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감상하다니! 그것도 한여름 잔디밭에 드러누워 맥주를 퍼마시면서 말이죠. 바위게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황당한 짓을 벌이겠습니까. 이게 바로 '바위게 락'이죠.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위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정말 큰 기쁨이고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QWER이 공연하지 않는 순간에도, 바위게들은 QWER이라는 키워드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아쉽게도 저는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메인 스테이지 헤드라이너인 펄프(Pulp)의 공연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제 머리는 이틀 동안 들은 음악들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듣더라도, 더 이상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과포화 상태였습니다. 1978년에 결성된 펄프의 첫 내한 공연이었지만, 저는 바위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8월 16일 잠실 [세븐락프라임]에서 또 뵙겠습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 진행된 저만의 [2025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휴가를 QWER 공연 관람으로 대체했습니다. 2025년 여름의 제게, 그보다 즐거운 취미가 없기 때문이죠. QWER의 공연을 보는 일, 바위게와 교류하는 일, 이 모든 추억을 브런치매거진에 기록하는 일 등 QWER 덕질 전부가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서 QWER 유니버스 덕질을 계속 이어갈까 합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만 더하겠습니다. 8월 3일 일요일 밤 11시가 넘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QWER 매니저 검검. 한참 방송을 이어가던 그는 30분 내에 자신이 있는 식당으로 오면 국밥을 쏘겠다고 공약을 겁니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닌 다수의 바위게들이 그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심지어 한 바위게는 검검의 포토카드까지 준비해서 갔습니다. 세상에 이런 팬덤은 정말 없습니다. 매니저가 월요일 새벽 1시에 식당으로 놀러오라고 말했는데, 여러 명의 팬들이 택시를 타고 30분 안에 도착하다니요! 이래서 바위게들은 QWER 유니버스 덕질을 못 끊습니다. 아무쪼록 검검이 마젠타처럼 원산폭격할 일만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