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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3] 열정과 진정성의 동두천 락 페스티벌

열정과 진정성, 반항과 똘끼가 난무하는 최고의 락 페스티벌

https://brunch.co.kr/@joogangl/720

미8군 밴드의 열정적이고도 감성적인 무대가 끝난 뒤, '초록불꽃소년단'의 사운드체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공연들은 평균 5분 정도의 사운드 체크 시간이 배정되었습니다. 대형 페스티벌에 가면 20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도 문제없이 밴드 라이브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무료 페스티벌이라 허접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F1 경기에서 정비 팀이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착착 기계처럼 진행되는 가운데, 다음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록불꽃소년단은 무려 2015년에 데뷔한 밴드였습니다. 10년을 넘게 공연했으니, 내공이 장난 아닐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초록불꽃소년단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무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으로 시작된 조선 펑크의 명맥을 이들이 잇고 있구나!'라며 감탄했습니다.

일단 이들의 데뷔곡부터 골 때립니다. 초록불꽃소년단은 2015년에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 걸>이라는 노래로 데뷔합니다. 그런데 이 '츠보미'라는 인물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녀는 일본 AV계의 베테랑인데, 무려 별명이 'AV 공장장'일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을 양산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노래 제목에 넣은 곡으로 데뷔했다? 이 밴드의 똘끼가 상당하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데뷔 앨범에는 <동정>이란 곡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경험을 통해 순결을 잃다(동정을 뗀다)'라고 할 때의 그 '동정(童貞)'입니다. 다만 초록불꽃소년단은 자신의 동정을 지키겠다는 소년의 심정으로 울부짖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광기가 30년 관록의 밴드 크라잉넛을 가볍게 넘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보유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팬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고생이나 젊은 여대생들이 거의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떼창하는 광경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듣고, 관념이 아닌 밴드의 개성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점차 올라오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여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실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10대와 20대의 문화 DNA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두천 락 페스티벌]은 동두천 시장이 나와서 축사하고 동두천 시가 주관하는 행사가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특정 이념에 쩔어서 예술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관념주의자나 예술계 꼰대 선배들보다, 공무원들이 훨씬 열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곡들이 인상 깊었지만,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 걸>과 <동경모텔>이 가장 좋았습니다. 초록불꽃소년단은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츠보미'도 '동정'도 모두 자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진솔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더욱 울립니다. 2020년대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낯'입니다. 잔뜩 꾸며대는 인스타그램 포샾 사진 같은 음악이나 소설은 양념으로 떡칠한 눈탱이 음식 같습니다. 반면에 가식 없는 진솔한 음악은 회나 생고기 같아서, 오히려 먹음직스럽습니다.

"끝이 없는 길을 걷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노래해. 아름다운 꽃이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아."라는 진솔한 가사가 인상적인 대표곡 <동경모텔>을 끝으로, 초록불꽃소년단의 무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공연 중간에 보컬이 베이시스트의 허벅지를 걷어차기도 하고, 광기를 보이며 바닥을 뒹굴던 보컬의 마이크가 껴져서 목소리가 나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기타리스트가 한숨을 쉬며, "저거 또 사고 쳤네!"라고 중얼거릴 정도였죠. 무대가 끝난 뒤 드러머가 드럼스틱을 객석으로 던졌는데, 그 스틱을 맞은 관객이 뒤편으로 빠져 치료를 받는 등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드러머가 드럼스틱을 등 뒤로 던지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겠죠.

아무튼 저는 '초록불꽃소년단'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직장에서도 교우 관계에서도 워낙 남자가 많아, 음악만큼은 여성 뮤지션의 곡을 편애함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철이 안 든 40대 '어른이'에게 딱 맞는 밴드가 아닌가 합니다. 그들의 음악 활동을 앞으로도 주시하고 응원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F3DWW34GVI


이어서 나온 공연자는 '서도 밴드'입니다. 제가 TV를 전혀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2019년 KBS 국악신예대상 대상' 경력을 보니, 적어도 그전부터 활동했던 꽤나 경력이 있는 밴드였습니다. 보컬인 '서도'의 본명은 '서재현'인데, 5살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한 '국악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악'과 '현대 대중음악'의 결합에 관심이 높아, 결국 '조선팝'을 하기로 마음먹고 밴드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이런 서도 밴드의 공연은 제게 있어, 충격과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2025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일 차에서 '카르디(KARDI)'의 공연을 접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카르디'는 거문고를 포함한 락 밴드입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의 조화보다는 거문고를 베이스처럼 사용하는 영미 락 스타일의 음악을 합니다. 물론 그들의 음악은 끝내줍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서도 밴드'의 음악이야말로 제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않는 장르이자 '서도 밴드'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기에,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영미 락'과 '한일 락(한국 일본 락)'은 20세기 필스너 맥주와 21세기 IPA 맥주 차이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독일이나 네덜란드 쪽의 맥주를 '전통 있는 맥주'이자 최고로 여깁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유럽의 맥주는 '무한한 과거에서 20세기까지를 반영하는 음료'입니다.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21세기 IPA 맥주와 장르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이야 당연히 최고의 맥주이죠. 하지만 너무도 익숙해서인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은 없습니다. 기타 독일 맥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21세기 IPA 맥주의 유행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습니다. 늙은 대륙 유럽은 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 맥주 시장에서 새로움을 선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맥주 마니아인 저는, 20세기 유럽 맥주와 21세기 미국-일본 맥주를 동등한 지위에 놓고 기분에 따라 즐깁니다. 하지만 20세기 유럽 맥주야 익숙한 맛에 마시는 것이고, 역시 도전 정신은 21세기 맥주죠.

한국에서 '락' 하면 아직까지 20세기 영미 락을 지칭합니다. 이 때문에 '락 근본주의자'들은 21세기 새로운 풍의 '제이락(J-Rock)'이나 그와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케이락(K-Rock)'을 높게 사지 않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영미 락은 위대한 반면에 익숙합니다. 2025년에는 더 이상 새롭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반면에 J-락이나 K-락은 가사 내용부터 20세기 영미 락과 많이 다릅니다. 서로 다르고 더욱 새롭죠. 그래서 21세기 음악이 더욱 저의 고막을 즐겁게 합니다.


'서도 밴드'는 판소리에 능한 보컬이 신들린 듯 무대를 휘어잡는 세계 유일의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말 그대로 끼가 넘치는 '무당'이 접신 상태로 손발을 휘저으며 판소리 창법으로 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멘트 타임 때 '페스티벌에 처음 서 봐서, 무척이나 가슴이 떨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놀라운 밴드가 페스티벌 무대에 처음 서 보다니! 그것도 대형 페스티벌이 아니라 규모가 작은 지역 축제에!"라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대중적이기에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페스티벌 붐이 일어난 덕분에 이렇게 놀라운 밴드가 축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막귀라서, 악기 멤버들의 연주 실력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음악 무대'는 무엇이 핵심입니까? 바로 그 현장의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대 내내 클래식 음악에 미쳐 살았던 저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같은 20세기 피아노 거장이 70세가 넘어서 '삑사리'를 계속 내면서도 누구보다 감동적인 연주를 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테크닉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특히 방에서 헤드폰으로만 음악을 듣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은 테크닉만을 중시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연주 무대는 테크닉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무대를 폭파시키며 객석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그 에너지는 빠른 속가락이나 보컬로이드 수준의 성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열정과 진정성, 그리고 완성도 높은 '판소리 락'의 정수를 이 날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곡은 '강강술래'였는데, 관객들이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돌며 신나게 춤사위를 펼치는 드문 광경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게 바로 '조선팝' 아니겠습니까!

이날 미8군 밴드, 초록불꽃소년단 그리고 서도 밴드는 열정과 진정성, 신선함으로 제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의 무대가 있으면, 가급적 달려가 함께 즐겨볼 생각입니다. '서도 밴드' 정말 크게 응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EAZPyeF1w


다음 무대는 '롤링 쿼츠'였습니다. 제 오늘 목표가 '롤링 쿼츠 가까이에서 보기'였기 때문에, 가장 기대되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베이시스트 '아름', 그리고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는 드러머 '영은'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QWER의 쵸단도 그렇지만, '미녀 드러머는 지옥에서도 업어 온다'는 것이 락 계의 정설이지요. 특히 영은의 경우, 여러 영상과 사진을 찾아보니 무릎에 붕대를 감은 장면이 자주 보였습니다. QWER의 드러머 쵸단 또한, 무릎에 감은 검은 붕대가 그녀의 시그니처가 될 정도였죠. 2025년에도 무릎 이슈로 인해 여러 번 공연을 쉬어야 했을 정도이니까요.

월드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으며 유럽 무대에도 자주 서는 롤링 쿼츠는 확실히 무대에 여유가 넘쳤습니다. 파워풀한 헤비메탈 공연을 펼쳤는데, 달착지근하다 못해 이빨이 썩어 버릴 듯한 음악이 메이저인 한국에서 이와 같은 음악을 들으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롤링 쿼츠, 사랑합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나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 등에서는 어떤 밴드가 락이냐 아니냐 등으로 '병림픽'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열정과 진정성, 반항과 똘끼' 등 제가 생각하는 '락 스피릿'의 덕목을 죄다 갖춘 밴드 음악을 연속으로 네 팀이나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들이 메이저가 되어 '평가 열외 대상'이나 '무지성 찬양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 이들의 무대를 한껏 즐길 예정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53FcQ9tJYI&t=28s


이렇게 해서 2025년 9월 13일 토요일, 저만의 [동두천 락 페스티벌] 놀이는 끝났습니다. 두 팀이 더 남아 있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른이인 저는 귀갓길을 재촉했습니다. 헤드라이너인 FT아일랜드의 공연까지 보고 나면, 지하철이 붐비는 데다가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서이지요.

전날 지방 스케줄로 인해 피곤해서 2시간이나 낮잠을 자버린 토요일 오후, 갑작스러운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본능에 따라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동두천 락 페스티벌].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동두천 락 페스티벌]을 매년 찾겠다고 다짐하며,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서양인들을 마주한 채 지하철에서 들뜬 마음으로 귀가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페스티벌에서 함께 즐겨요! 알이즈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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