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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논어묵상] 학이-1.1

항상 나 자신에 대해서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저는 처음『논어』를 접했을 때, 학學과 습習의 목적어인 지之가 무엇을 뜻하는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내재적 지식이라고 가르치는 이도 있었으며, 외재적 지식이라고 외치는 이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시時와 열說의 의미 또한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時는 항시恒時, 그러니까 '언제나'를 의미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시時를 '때때로'로해석합니다. 어떻게 學과 습習을 항시恒時 할 수 있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學과 습習을 항시恒時할 경우, 어떻게 즐거울 수 있냐는 것이지요. 공부의 대상인 지之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니까,  學과 습習, 時와 열說의 의미까지 죄다 그르쳐 버린 셈이지요. 

많은 학자들은 時를 '때때로'로 해석함으로써, 공부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결론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부의 대상을 외재적 지식으로 삼고, 공부의 목적을 외재적 지식의 획득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인간의 지친 두뇌도 쉴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時를 항시恒時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學而時習之는 "나 자신에 대해서 항상 배우고 익히라"는 뜻입니다.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 자신의 현재 몸 상태와 감정 상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만약 사서삼경의 암기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와 같은 공부는 항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공부로 삼는다면, 쉬는 시간조차도 나 자신에 대한 공부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몸 상태에 끊임없이 주목함으로써,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는 것을 배웠고, 쉴 때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눈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탓에 쉰답시고 다른 일들을 벌려 녹초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說이란, 결코 마약이나 알코올에 취한 광란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는 삶에 대한 만족에서 오는 편안함을 열說이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안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내게 적대적으로 변하더라도, 내가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내 감정은 평안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내 존재에 대한 만족에서 옵니다. TED의 숱한 강사들은 "I am enough!"를 강조하는데, 이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과 만족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맹자는 성선설로 설명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논어』주석서에서, 첫 구절인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에 대한 해석은 향후 여타 논어 구절에 대한 해석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저는 지之를 '나 자신'으로 보고, 이후의 묵상을 이어가겠습니다. 


성선설 전도사 이주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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