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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Aug 06. 2023

15. 바삭한 전을 먹고 싶어요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근래에는 뭐랄까, 나도 모르는 사이 일상 대화 주제 중에 할머니의 비중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할머니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계시거나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노인정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셨다. 식탁에서 할머니와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이야기는 대체로 단조롭거나 짧아져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들이 희미해질까 조그마한 걱정들이 싹트기 시작한다. 같이 생활하면서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 둘 꺼내놓자면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억울함의 몽우리만 커질지 몰라 서로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사사 건건 들고 일어서기보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가장 큰 배려임을 미묘하게나마 전하고 있는 중일지도.  주변사람들한테 괜히 오해를 살까 꺼내놓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모두 마음속으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지만 표현은 투박한 나머지 자주 대화가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미워할수록 닮아간다고 하던가, 어느새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문득문득 느껴질 때 묘한 위화감에 써라운드 앰프에 둘러싸인 듯이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린다. 좋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최선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최소한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피해보자는 차선책을 써보는 중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잘도 차분한 가면을 쓰면서 왜 소중한 가족 앞에선 용암처럼 불뚝불뚝 올라오는 감정을 꺼트릴 수 없는지,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의지와 다르게 수련해야지라는 마음가짐만 근근이 유지할 뿐이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대부분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간식을 먹곤 했다. 과일일 때도 있었고, 대부분 라면, 김치볶음밥, 팬케이크 등이었다. 안 그래도 폭신한 팬케이크 위에  올리고당을 듬뿍 뿌려 폭신하다 못해 물렁했다. 할머니는 모든 음식을 일단 많이 만들어 놓으신다. 그 덕분에 여름이 되면 반찬이 쉬어 버리게 되는 일이 태반이지만 어쨌든 한번 든 습관은 쉽게 고칠 수 없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라면은 늘 퉁퉁 불어 이빨로 끊어먹기보단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젊은 시절부터 이빨이 시원찮으셨어서 틀니를 사용해 오신 할머니는 대부분 음식을 잘 씹히게끔 만드셨는데 라면도 그중 하나이다. 가끔 할머니가 설거지를 끝내시고 아무렇지 않게 이빨을 꺼내 손에 올려 구석구석 닦으시는 모습은 이빨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아 몇십 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딱딱하거나 조금이라도 질긴 음식은 몇 번 씹고선 뱉어내시는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보내서 인지 질기거나 딱딱한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어먹는 일보단 목 넘김이 좋은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집에서 자주 먹는 음식들은 왠지 밖에서 돈 주고 잘 사 먹지 않는데 삼계탕, 감자탕, 설렁탕, 그리고 제사 때마다 하는 전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대학교에 들어가고나서부터 술문화와 함께 안주라는걸 접하기 시작하면서 전집에서 전을 처음 사먹게 됐는데 내색은 못했지만 전집에 들어가면서도 이걸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바로 구운 전이니까 가장자리가 바삭한 정도겠거니 생각하던 나에게 널따란 철판에 기름에 거의 튀기듯이 구워진 전은 중심부까지 바삭함을 잃지 않은 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바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할머니께 전이 중심까지 바삭할 수 있다며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할머니의 전은 이후로도 몇 번을 다시 구워주셔도 푹신했고 지금도 어제 구워놓은 전은 수분을 머금은 듯 축축하다. 그렇다. 바삭한 전은 그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축축한 전은 우리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열티 한 음식인 것이였구나 로 결론짓기로 했다.


얼마 전에서야 할머니께서 나를 돌보기 시작하시면서 30년 동안 남대문에서 운영하시던 액세서리 가게를 그만두셨다고 들었다. 오래전부터 할머니는 주부셨던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정리했던 거라곤 하셨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휴직을 내는 것도 고민을 하게 되는데 할머니께서 내린 결정이 쉽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어릴 적 기억 중 마음이 헛헛할 때 유난히 또렷이 기억나는 할머니와의 추억들이 있다. 유치원 때 집에 돌아오던 길 원숭이를 닮았던 태훈이란 친구가 늘 나에게 이담에 크면 결혼하자고 달라붙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우리 둘 손에 작은 꽃반지를 만들어 주곤 하셨다. 또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나는 뜨개질이 취미셨던 할머니가 남동생한테만 털스웨터를 만들어 주거나 삼베옷을 만들어 준 사실을 알고 나서 샘이난 다며 마룻바닥에 드러누어 몇 시간을 내리 울곤 해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 한 여름 할머니는 늘 민소매 인견 원피스를 입으셨는데  그 사이로 나온 팔뚝살이 너무 보드라워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 옆에 앉아 만지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 소화기관은 좋지 않은데 욕심만 많아 많이 먹다가 체해 배가 아픈 나를 몇십 분이 넘게 배를 주물러 주셨던 기억들.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적 특별한 일을 한 것보다도 별 것 아닌 것 같은 추억들이 왜 이렇게 바닷가 투명한 유리알처럼 반짝거리고 더 소중해 보이는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몇 년, 몇십 년이 지난 후엔 지금의 기억의 조각들이 말라버린 나의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신없는 하루하루 속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 어딘가에 가라앉겠지만 언젠가 흔들면 떠오를 수 있게 조금 더 소중히 차곡차곡 쌓아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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