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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Sep 24. 2023

17.제사,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고소한 참기름 내음이 퍼져온다. 아침, 저녁으로 조금이라도 이불을 걷어내면 찬기운이 다리 사이를 감도는 시기,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가을바람이 서늘히 찾아온다. 매년 설, 추석날 우리 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신실한 천주교도이신 외할머니 덕분에 아빠, 할머니는 부모님의 결혼 전 반 강제적으로 세례를 받으셨다. 그 이후부터는 노인대학도 성당으로 다니시고, 머리맡에 십자가도 놓고 주무시지만 제사만은 포기하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제사에 관해서라면 웃음이 많던 할머니도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삐쭉 솟은 눈으로 부엌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시며 맘에 들지 않는 일들을 콕콕 골라내신다. 그렇게 전쟁 같은 제사를 지내고 나면 며칠은 알아 누으시는 통에 아빠는 늘 허례허식에 몸만 고생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어찌 되었든 추석, 설 전날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아빠, 남동생과 둘러앉아 콩나물 끝을 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등을 소파에 기대어 작은 과일칼로 꼼꼼히 딱딱한 껍질을 깎아내 민둥 해진 밤을 변색되지 않게끔 맑은 물에 담가 놓으신다. 백색 소음은 기본값으로 전국 노래자랑. 혼자서 했을 땐 아무리 해도 줄지 않던 콩나물이 손 하나가 늘어날수록 삽시간에 줄어든다. 머리만 남은 콩나물도, 끝단이 동강 난 콩나물도 빠짐없이 다듬으라는 할머니의 불호령에 따라 모두 손발을 바삐 움직인다. 그러는 사이에 부엌에선 넉넉히 두른 기름에 전 부쳐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밀가루-계란 순서로 새 옷을 입은 동태, 호박, 등등 할머니는 뭐가 그리 급한 신지 앞면이 다 구워질 새도 없이 빨리빨리 구우라며 더 이상 놓을 자리도 없는 프라이팬 위에 집어던지듯 안착시키신다.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도 불은 너무 세지 않게 적당히 낮은 온도에서 노릇히 구워내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제사 준비가 한창인 날에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요리가 한창일 때 할아버지와 아빠는 찬장 깊숙이 박혀 있던 제사 식기들을 닦아 놓고, 절할 때 깔을 돗자리를 꺼내 놓는다. 얄미운 삼촌은 어느새 방에 들어갔는지 온데간데없다. 


종종 제사란 왜 돌아가신 날을 길어 슬픔을 상기시키는 걸까? 즐거웠던 기억만 있는 생일을 기리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엔 특히나 내가 생전 보지도 못하던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께 절을 하는 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 반쯤 으슥한 시간, 아빠는 넋이 들어올 수 있도록 현관문을 조금 열어놓으신다. 밥, 국, 반찬 순서로 젓가락 위치를 바꾸어 놓으며 사이사이 절을 한다. 사춘기 시절 동생과 나는 더 자고 싶은 얼굴을 숨기지 못하기도 하고 절 하기 전에 양말 신는 걸 까먹어 맨발로 돌아다니다 혼이 나기도 했다. 한평생 제사를 지내온 할머니께 제사는 오랜 시간 장인에게 전수받은 김치 레시피처럼 처음 배울 땐 힘들었지만 보존하고 싶은 프라이드로 자리 잡은 느낌일까나. 큰 상 앞에서 할아버지나 삼촌처럼 나도 향에 휘휘 돌리며 술도 따르고 젓가락도 내가 놓고 싶은 곳에 놓고 싶었다. 아빠가 몇 번 해보라고 도와주셨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어린 나에게 제사상 앞에서의 원칙은 너무 어려웠다. 스케치북을 펼쳐 매년 바뀌는 제사상을 기록해 보려고 한창 그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제사가 끝이 났다. 또, 제사가 끝나면 할머니는 음식들 끝자락을 조금씩 떼어 술그릇에 담아 제삿밥을 먹지 못하는 넋을 기리곤 하셨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상을 치우고 할아버지가 양재기에 제사상에 썼던 삼색 나물과 고봉밥, 참기름, 탕수국을 듬뿍 넣어 비비신 후 작은 그릇에 나누어 주셨다. 큰 일을 치르고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제사음식을 먹는 이 시간이 나는 가장 좋았다. 


집마다 문화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겠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서야 비로소 제사라는 의식이 와닿았던 것 같다. 절을 할 때도, 젓가락을 놓을 때도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돌아가신 분에 대한 진심을 눌러 담은 의식이 제사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도 그게 강요가 되면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할머니께서는 늘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밀크커피를 타 놓고 이런저런 얘깃거리를 늘어놓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정말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뒤에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2년 전부터 우리 집은 제사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예전처럼 한껏 제사 준비를 꾸릴 체력이 되지도 않으니거니와 제사만이 할아버지를 기리는 방법이 아님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신 듯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제사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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