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다이어트
누군가를 더 알아가고 싶을 때, 또는 아끼는 사람과 오랜만에 만남을 가질 때면 이 질문으로 대화를 열어간다.
-“요즘 하는 일은 어때요?”
사실 그 사람이 정확히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근래 어떤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보다 더 궁금한 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 지다.
우리는 보통 행복을 일상 밖에서 찾는데 익숙하다. SNS엔 무릇 특별한‘하루’가 담긴 사진을 올리기 마련이다. 나는 그 사진 이면의,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평안한지 궁금하다. 그래서 우리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일’에 대해 묻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 용기 내어 한발짝 다가가 그들의 마음 속 깊이 감춰진 무언가를 살펴주고 싶은 내 진심을 담아.
일상을 관통하는 질문을 찾기 위해 여러 번 형태를 바꿔왔다. ‘요즘 잘 지내나요’는 질문의 범위가 포괄적이라 본질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또 일상의 만족감을 말로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에게 대뜸 ‘요즘 행복하신 가요?’라는 질문은 대답을 하는 입장에서 너무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들의 일상처럼 대부분 단조롭고 평이하다. ‘왜 그런 질문을 하지?’ 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응 그냥, 괜찮아”라고 얼버무리듯 읊조린다.
대답하는 입장에선 가장 쉬운 선택지일지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입장에선 겹겹이 포장돼 풀어보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는 표현이다. ‘그냥’ 과 ‘괜찮아. 각각 놓고 봐도 해석에 있어 꽤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표현들인데, 거기다 두개가 합쳐진다면 난이도는 거듭제곱으로 올라간다.
그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괜찮다 : 별로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으로 좋다
아무리 읽어봐도 어딘가 맹숭맹숭 한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 속에 수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것이 정말 아무 일이 없어 평온하단 말인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나름 잘 이겨내고 있단 뜻인지, 특별한 일 없이 지루하단 뜻인지, 아니면 지옥 같지만 얘기하자면 끝도 없어 거두절미해버린 것인지, 사실은 나름 행복하지만 괜히 내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감정을 끌어내릴지 몰라 배려심에 뱉은 말일지, 직장얘긴 여기서 하고싶지 않으니 더이상 묻지 말란 말인지,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선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9년간 주입식 교육의 울타리에서 주변을 의식하며 모나지 않게 자라는 법을 익혀온 우리들이 성인이 되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설령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씨앗이 되어 어떤 후폭풍을 낼 지 가늠도 되지 않아 그저 괜찮다는 말에 모든 감정을 욱여 넣는다.
성인이 되고 아주 잠깐, 예를 들면 대학시절이나 면접을 준비할 즈음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세요”라는 홍보문구로 마음의 경계를 늦추는 시기가 온다. 하지만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보여줬을 때 돌아오는 건 결국 불합격 통보인 현실 속에서 우리의 속마음은 점점 불투명해져 자신 조차도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하물며 직장에서 점심 식사를 고를 때 마저도 “오늘은 뭐 먹고 싶어?”라는 상사의 질문에 정해진 답을 알면서도 선택지 내에 없는 메뉴를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다 보면 씁쓸하지만 이런 류의 애매한 감정표현에 익숙해져 버린 나를 발견한다. 매일 아침 동료들과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가볍게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음 한 켠엔 늘 ‘퇴사’를 꿈꾼다. 요즘 일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어떤 마음으로‘괜찮아’라고 답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하루는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수많이 질문하고 가지각색의 답변을 들었음에도 대답하기까지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동안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을 용기 내어 꺼내 본다.
“저 요즘 행복해요, 사실 하고싶은 일 하며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