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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Aug 30. 2021

1. 우리 할머니 밥은 맨날 질어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1. 우리 할머니 밥은 맨날 질어

"부럽다.., 아냐 부러워하지 말자. 그래도 이런 부분은 부러운걸.." 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에 사로잡혀 옹졸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를 때 기분이 손에 쥔 젤리처럼 흘러내릴 듯 물컹물컹 해집니다. 때때로 마음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보거나 알게 돼도 나한테 좋은 것 하나 없단 걸 알면서도 계속 돌아보게 합니다. 이럴 때 다른 것에 관한 글을 쓰곤 하면 원래 단순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시선을 잠시 돌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끌어내리는 상념의 구렁텅이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 얘기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나올 예정이지만 우리 할머니는 이빨이 없습니다. 이빨이 없다기 보단 "진짜" 이빨이 없다는 게 맞는 거겠죠. 다만 틀니는 만화에서 보던 툭치면 빠지고, 빠진 틀니 자리는 오 골 오 골 한 주름이 대신했는데 현실의 틀니는 그런 일이 없어서인지 할머니가 틀니를 끼신다는 사실을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당연하지만 틀니를 끼려면 기존 이빨을 다 빼야 한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습니다.) 처음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입에서 틀니를  빼 칫솔질하는 모습을 보고 틀니라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한편으론 이빨을 밖으로 빼낼 수 있으니 칫솔질을 보면서 할 수 있으니 꽤나 깨끗이 닦아낼 수도 있고 편할 것 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틀니의 취약점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치과에서 입니다. 조금 크게 썩은 부분이 있어 센 마취를 하게 되었는데 마취가 생각보다 오래 가 배가 고파져서 치과 선생님께서 '밥은 마취 풀리고 드세요'라는 말은 잊은 채 왼쪽 턱만 마비됐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꼭 왜 왼쪽으로 씹으려고 하면 음식은 오른쪽으로 가있는 건지,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녔습니다. 그보다 맛은 분명 혀로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씹을 때마다 본인의 역할은 음식을 으깨는 일이라는 것 마냥 '딱딱' 소리만 내며 감정(?)/성의 없이 행동하는 이빨의 모습에 입맛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는 매번 밥 먹을 때마다 이런 느낌이었던 건지, 입맛이 없다며 다 차린 밥을 드시지 않던 할머니가 스쳐가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 집 밥은 대부분 그야말로 '떡'이 되기 직전의 흑미밥이 디폴트 값입니다. 가끔 하얀 꼬들밥이 나올 때면 할머니는 '너네가 이런 걸 좋아하니까'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곤 하십니다. "당신이 밥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밥 상태가 어떻던 이렇다 저렇다 할 권리는 없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할머니 손이 두꺼워서 물 양 조절을 못하시는 걸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삼시세끼 할머니 밥을 먹고 자라온 아빠는 떡진 밥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곤 했지만 이젠 나이가 들고 그마저도 이골이 난 건지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듭니다. 똑같이 삼시세끼 할머니 밥을 먹고 자라왔는데, 저는 할머니의 틀니 최적화 음식에 길들여져 있어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밥이랑 똑같이 라면이나 떡볶이도 퉁퉁 불어있는데, 어딜 가서 든 안 씹고도 훌훌 넘어가는 음식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할머니의 음식에서는 온기가 느껴집니다. 학교가 끝나고서도, 회사가 끝나고서도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바로 부엌으로 걸어가 식탁 위에 차려진 할머니의 밥을 확인할 때 마음이 놓입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언제 못 먹게 될지 모르는 아침, 저녁밥이 소중해집니다. 요즘은 때때로 냉장고에서 차게 식은 반찬을 꺼내 주시기도 하시지만 자다 깨던 언제든 늘 음식은 따뜻해야 한다며 밥이고 국이고 데워주시곤 하는 할머니,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 아빠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 하루를 견뎌내게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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