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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Dec 26. 2021

3. 노인정 참기름 떡볶이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3. 노인정 떡볶이3. 노인정 떡볶이

2013년 내가 대학교에 입학 후 6개월쯤 지났을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에게는 갑작스레 몇십 년간 가질 수 없던 여유가 생겼다. 그런 동시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이후 몇 개월간 할머니는 잔병치례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된 것 같았다. 다행히도 3,4개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쉬이 따라주지 않는 몸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전에는 시간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었던 노인대학을 다니고, 노인정을 들낙거리며 고집불통 할머니들 사이에서 싸우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가 그렇듯이 어울리며 써도 써도 남아도는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가셨다.


그 후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노인정 회장이셨던 '7동 할머니'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진작에 홀로 생활하시던 7동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한테 핸드폰 사용법부터 집 근처 노인 커뮤니티까지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파했다. 또 명품 옷만 입는 7동 할머니는 자신이 살이 빠져 입지 못한다며 다발로 선물한 덕분에 안 그래도 알록달록했던 할머니 옷장은 형형색색 반짝이까지 더해졌다. 자신은 노인정 가기엔 아직 어리다며 경계했던 할머니는 자연스레 7동 할머니가 회장으로 계시던 단지 노인정에 발을 들여놓게 되셨다.


할머니가 노인정에 가시고부터 노인정에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를 얻게 됐는데,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순 없겠지만 노인정이라고 그냥 운영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관리 포인트들이 많다는 것. 또 이런저런 지원이 꽤나 많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과자, 회식 비용.. 등) 그중에 가장 흥미로운 건 쌀이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쌀인지 모르겠지만 밥을 해서 다 같이 먹기에는 다들 할머니들 같지 않은 귀차니즘을 장착해 젊은 한 두 사람- 그래 봤자 최소 70대 후반인 -에게 일감이 몰릴게 뻔하니 그 쌀을 방앗간에 맡겨 가래떡을 만드는 문화가 생겼다. 그때 갓 만들어진 가래떡을 먹고 나서야 떡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막 나온 가래떡은 본인이 매우 힘들게 만들어진 냥 송골송골 땀 맺힌 모습으로 아무것도 묻혀지지 않은 상태로도 고소하고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처럼 녹아버린다. 그런 떡으로 할머니가 해준 떡볶이는 위로의 맛이다. 참기름을 듬뿍 넣어 은은하게 퍼지는 참기름 향에 MSG의 강렬함 보단 서서히 퍼져 나가 마음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맛. 나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맛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노인정 생활은 즐겁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어제 있었던 멀쩡한 친구가 다음날 치매가 걸려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기억을 잃기도 하고, 잠깐 병원에 입원한 줄 알았던 할머니가 다음날부터 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지혜보단 아집만 늘은 것 같다는 할머니들은 귀도 잘 들리지 않아 툭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자연스레 싸움판이 일어나 이날은 이 집 저 집 할망구, 또 다른 날은 이 집 저 집 할망구, 아마도 오늘도 내일도 아주 미묘하고 작은 문제들로 싸우러 노인정에 모일 것이다. 나도 어느 시기가 되면 맞이할 날들이겠지 생각하곤 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많은 세월의 흐름을 견디고 우리 할머니만큼이라도 인정을 베풀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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