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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Dec 12. 2021

2. 할머니 그만 좀 꺼내세요!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2. 할머니 그만 좀 꺼내세요!2. 할머니 그만 좀 꺼내세요!

우리 집은 이전에는 일곱 명, 이제는 여섯 명이지만 근래에는 보기 드문 6인용 식탁을 쓰고 있다. 직사각형에 기다란 목제 식탁이다. 과장을 좀 더해서 내가 할머니랑 같이 산 28년 동안 할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밥상의 바닥을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모든 집의 밥상이 이런 줄 알았고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이 밥상에 대해 아무도 불만을 달지 않았다. 그러다 이 밥상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구나라고 느낀 것은 가세가 기울면서였다.


우리 엄마는 보통 집에서 식사를 하시지 않는데, 그렇다 보니 할머니의 밥상을 보게 된 적이 많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세가 기울면서 우리 집 회계장부는 대장인 엄마에 의해 전면 검토가 이루어졌다. 새고 있는 돈, 낭비되는 돈의 출처를 찾아 떠난 여정의 끝에는 우리 집 밥상이 있었다.


가끔 할머니는 이 밥상을 다 채우지 않으시면 마치 내가 회사에서 오늘의 일과를 다 채우지 못했을 때의 찜찜함을 느끼시는 걸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방면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회사에서 찜찜함을 느끼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 할머니 지론에 따르면 반찬통에 담긴 반찬은 늘 수북해야 하고 식사에는 국, 밥, 메인 요리, 추가 반찬 이 네 가지는 디폴트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잠시 떠오르는 의문점 하나. 분명히 반찬에겐 수명이란 것이 있을 텐데, 소복한 반찬통을 만들기 위해선 늘 백업 양까지 준비되어야 하다 보니 인기가 없는 반찬은 늘 최후에 남은 반찬에 백업 양까지 버려지게 되는 실정이었다.


어느 날 엄마의 화살이 밥상으로 날아들었다. "수입이 너무 줄었는데 반찬 수를 좀 줄여서 같이 절약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렸을 적 우리가 엄카를 쓰던 시절에는 숨쉬기만 해도 돈이 물처럼 새나가는 고통을 알 리 없었던 것처럼, 용돈은 따로, 생활비는 또 엄카로 사용하시다 보니 엄마의 타들어 가는 속을 공감할 리 없었다.


마냥 밥상 위에 여러 반찬이 있던  좋았던 나는 그제서야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밥상부터 보게 됐다. 김치만 나와있던 , 국과 밥만 나와있던 집들.. 우리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 수준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나이도 점점 드시는데  예전처럼 준비하시려다 보니 힘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누구를 위한 밥상인 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뒤부터 나도 자연스레 반찬이 너무 많이 나온다 싶으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잔소리가 늘었다. 마음 켠으론 할머니가 없으실  과연 나도  정도의 밥상을 만들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다. 그렇게 되면 할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같아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할머니의 키가 점점 작아지면서 나와 눈높이가 맞지 않아지고, 아무리 정정하신 할머니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가 떠난다는 것은 그게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일에 대비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호우에는 우산이 있어도 옷이 젖기 마련. 그 옷이 마르기까지는 시간이 또 걸릴 것이다. 8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정말 심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부정하고 싶었다. 그 이후론 겁쟁이가 되었는지 살아계실 때 더 잘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에게서 자꾸만 거리를 두게 된다. 할머니가 하는 행동에 어느 순간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또 미워 보이기도 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과연 준비할 수 있는 이별이란 있는 걸까?


오늘도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 속에서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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