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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Aug 21. 2021

에필로그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소개


부정하고 싶지만 선천적으로 경상도인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비평엔 능하고 칭찬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납니다. 한편 후천적으로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고, 예민해서 상처도 잘 받고 작은 것에 쉽게 감동받기도, 가라앉기도 하는 저는 어떻게든 쌓아 놓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을 때 편지나 글을 씁니다.


한 번 내뱉을 때 끝나버리는 말보다는 두, 세 번 곱씹어 눌러 담은 글자들이 모여 소중한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다다를 때 행복 이란 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내 기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까요, 감정을 숨기는 기술만 늘어갑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줄 알았는데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말들은 마음 한편에 실타래처럼 끝없이 엉켜가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있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을  글을 읽고, 쓰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에서 글로 풀어내며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들른 할머니 집처럼 잠깐의 휴식이라도 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매번 얘기할 때마다 웃음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할머니 아침밥을 먹으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의 회사’, '집 가서 할머니랑 저녁을 먹을 수 있게 칼퇴가 가능한 회사'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일만큼 저에겐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3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더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보니 놀라움을 사곤 해 저보단 엄마가 고생했지만 어깨를 으쓱하곤 합니다. 보통 익숙함에 속아 가장 가까운 부모님, 특히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는 할머니에게 당연하다는 듯 감사한 마음을 지나치며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보단 할머니 손에 자라 저에게 할머니는 가장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자 어렸을 땐 제2의 엄마였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작아지고 할머니가 차려 주신 아침,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간소 해집니다.


할머니한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그 아침밥, 저녁밥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것 만이 자신이 챙겨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시는지 일찍 오던 늦게 오던 집에 돌아올 때면 늘 자다가도 나와 “밥 먹었냐”라고 묻는 할머니. 때로는 그런 할머니식 안부인사에 “당연히 먹었죠”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좀 더 상냥히 말할걸, 후회하곤 합니다.


늘 건강하시던 할머니지만 할머니의 음식 맛이 점점 짜다고 느끼기 시작하며 늘 있던 행복에 조금씩 불안함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어라!”라는 호통도, “아침밥 안 먹으면 죽어!”라는 잔소리도 언젠간 잦아들고 희미하게 추억 속에 묻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 순식간에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브런치에 우리 할머니의 밥상 위 흑미밥 하나에 담겨있는 우리 가족의  추억과 이야기, 마음속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기록하며 헛헛하게 살아가는 현실 속 독자들에게도 할머니의 온정과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또 언젠간 이 책이 발간된다면 할머니에게 하나의 긴 편지이자 책으로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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