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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Sep 23. 2023

돌다리 안 두들기고 건너기

제네릭 의약품에서 배우는 장점 훔치기

돌다리도 안 두드리고 걷는 법이 있다. 그건 돌다리를 두드리면서 걷는 사람 뒤에서 걸으면 된다.

제약 산업에 관심 있다면 제네릭 의약품은 친숙한 단어다. 제약 바이오 주식하는 직장인이면 들어봄직 하다. 제네릭 의약품이란 처음 개발된 '원개발 의약품과 동등하게 만들어진 의약품이다.

 조금 더 직관적인 용어로 카피약이다. 태엽을 감아 코로나가 피크일 때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타이레놀을 복용했다. 전 국민이 타이레놀을 찾으니 품귀 현상이 잦았다. 그럴 때 약국에서 타이레놀 달라면 타이레놀과 닮은 약을 주면서 "동일한 제품"이라고 설명 들었던 적 있을 거다. 브랜드와 제조처는 다양하지만 주원료가 타이레놀과 동등한 성분이다. 그 제각기 브랜드 모두가 타이레놀의 "제네릭 의약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릭 의약품 비즈니스

많은 제약회사에서 제네릭 의약품 비즈니스를 차용한다. 여러 장점 덕이다. 첫 번째는 신약 대비 현저히 낮은 실패 가능성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이미 검증과 허가를 마친 약 성분을 토대로 만든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에 반해 신약을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렵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긴 시간도 필요하다. 꽤 규모가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신약 개발을 실패하면 휘청거리는 사례도 있다. 그러니 레시피가 확실한 약을 제조하는 건 매력적인 방법이다.

 제조의 용이성 외에도 "시장성"이라는 장점도 있다. 일반 소비재와 꼭 같진 않지만, 약도 결국에 수요-공급 논리다. 만들기 쉽다는 게 공급의 논리라면, 잘 팔려야 하는 건 수요의 논리다. 제조가 쉬워도, 사줄 환자가 없다면 약을 만들기 어렵다.

 신약은 시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대략적인 환자 수로 시장 규모를 확인하지만 부정확하다. 과거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약을 만드는 결정에 큰 리스크다. 그러나 제네릭 의약품이라면 이런 고민은 손쉽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받은 잘 팔리는 약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제네릭 파티룸

2023년에 이르러 파티룸은 더 이상 참신하거나 혁신적인 창업은 아니다. 레드오션에 더 가깝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레드오션이 꼭 부정적이지는 않다. 곰곰이 뜯어보면 이미 많은 시행착오가 누적돼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헛발질로 발생하는 비용은 줄이고, 장점은 쏙쏙 빼올 수 있다면 레드오션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시장이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우리는 파티룸을 창업하면서 많은 장점을 훔쳐왔다. 말하자면 제네릭 파티룸이지.


우리가 도둑질한 (혹은, 영감을 받은) 첫 번째 장소는 오프라인 공간이다. 본격적으로 인테리어에 들어가기 앞서 가급적 많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예쁜 것과 활용도가 좋은 것을 사진 찍고 다녔다. 감각적인 에어비엔비 숙소도 있었고, 카페, 펜션, 미술관도 사례가 됐다. 어떤 톤과 무드로 만들었는지, 주요 타겟팅은 누구일지도 살폈다. 그렇게 살피면서 다닌 결과, 우리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톤으로 "유럽 미장"을 채택했다. 공간의 낡음은 "빈티지"란 키워드로 전환 했다.


온라인에서도 부지런했다. 리뷰 쿠폰 프로세스가 기억 남는다. 파티룸 예약은 리뷰와 사진이 중요한 예약 지표다. 우리는 리뷰를 잘 모으는 방법을 고민하던 참에 경쟁 업체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들은 30분을 추가로 무료로 대여해 주는 대신 리뷰를 약속받는 쿠폰을 발행했다. 많이 누적돼 있는 리뷰를 보니 꽤나 성과가 있어 보였다. 곧바로 네이버 예약 서비스에 동일한 쿠폰을 넣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구매자가 쿠폰을 사용하면서 리뷰가 남겨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리뷰 페이백이 대단히 참신하거나 혁신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을 적용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는 명백했다. 우리가 꼭 필요하던 리뷰가 차곡차곡 쌓였으니까. 우리가 만들고 싶은 파티룸은 세상에 없던 신약은 아니었다. 그보단 훌륭한 장점을 고루 갖추면서 단점은 잘 감춘 제네릭 파티룸에 가까웠다.

 

이 외에도 가격 구조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힌트를 얻었다. ~3시간 단위까지는 1시간 단위로 판매했다. 그러나 그것을 넘길 때는 패키지 금액으로 묶어서 6시간으로 팔았다. 대신 금액은 훨씬 낮췄다. 이는 촬영용 고객 (~3시간)과 파티룸 고객 (6시간 이상)을 가격 단위에서 구분 지어주는 방식이다. 마케팅 방식, 시즌별로 홍보하는 법 등 지금도 부지런히 탐색 중이다. 세상에 잘하는 사람 참 많다.


온라인 강의도 여럿 들었다. 온라인엔 이미 생각보다 "사이드잡, 부업, 창업"강의가 많다. 우리는 클래스 101 1년 치를 구독했다.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만든 파티룸 창업 관련된 강의를 완강했다. 이 외에도 자영업 강의, SNS로 마케팅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Tool을 계속해서 늘렸다.

바퀴를 다시 만들지 말라

개발자들 사이에선 "바퀴를 다시 만들지 말라"라는 격언이 있다. 그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또 발명하는데 헛수고를 들이지 말고 진짜 중요한 데 시간을 넣으라는 뜻이다. 무언가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시간과 자원은 비싼 기회비용이다.


같은 말을 "파티룸 다시 만들지 말라"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이 꼭 파티룸이 아니어도 된다. 당신이 준비하는 무엇을 대입해도 좋다. 쇼핑몰이 될 수도 있고, 콘텐츠, 혹은 직무에 필요한 기술도 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프로세스와 장점을 가급적 빠르게 흡수해서 내가 당면한 문제에 적용하란 격언이다. 마치 제네릭 의약품처럼.


이것이 표절을 장려하는 말은 아니다. 어차피 표절을 할 수도 없다. 당신이 만들 최종 제품은 경쟁 업체의 장점과 단점, 내 기호와, 기호가 맞지 않는 것을 추리고, 거기서 또 예산이 허락하는 것과, 벗어나는 것, 나만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곱셈한 결과다. 같아지려고 해도, 여러 이유를 통해서 같아질 수가 없다. 스스로가 그것을 못 허용한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돌다리 먼저 두들기면서 건너는 사람 뒤꽁무니만 쫓지는 않을 거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작은 분야에서는 조금은 먼저 앞 서보는 사람이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서 더 빨리 작고 많은 실험에 열심히여야지. 지속 가능한 실패를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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