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김금희 작가 북 토크에서다. 김금희 작가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나는 온라인으로 중계된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북 토크를 보던 중 대뜸 사회자에게 인상을 받았다. 그가 던지는 질문과 나누는 대담이 깊이 있었고 예의 발랐다. 후에 엔딩크레딧에서 그 사회자가 신형철 문학평론가였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내 마음에는 두 명의 평론가가 마음에 들어선다. 저 한 쪽에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 그리고 저 반대쪽에는 신형철 문학 평론가.
오늘 소개하는 인생의 역사는 그가 4년 만에 쓴 신작이다. 이 책은 총 5부작으로 구성돼 있으며 25개의 시가 수록돼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록에 5편의 에세이가 적혀 있다.
시는 어렵고 낯설다. 그럼에도 아주 간간이 눈에 익는 작가나 시 제목이 있다. 공무도하가, 이성복 시인, 레이먼드 카버, 욥기, 릴케의 시가 있다. 그래도 모르는 작가나 작품이 수두룩이었다.
다시 한번 시는 어렵다. 시는 불친절해서 어렵다. 시는 소설처럼 서사나 배경 설명이 없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며 함축적이고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문학의 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와 거리가 멀었다. 시집을 사서 읽은 일도 거의 없다.
아마 책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나처럼 시는 안 읽는 독자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께 "인생의 역사"를 권한다. 시집도 안 사 읽는데 시에 대한 평론집을 사 읽어야 되는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질문이 말끔히 사라진다.
첫 번째는 "시 읽어 주는 남자"와 함께 어떻게 시를 음미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시에는 당연히 형식과 장르적인 문법이 존재한다. 그래서 낯설고 어렵다. 다만 신형철 평론가는 어떻게 그 형식을 차용했는지, 그리고 그 시는 왜 쓰였는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 설명을 읽고 다시 시를 보면 그 시가 다르게 읽힌다. 시 읽기는 문학을 음미하는 뇌 근육에서 꽤 고상한 부문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시 읽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면 다른 문학과 예술을 즐기는 데에도 차용할 수 있는 점이 많다.
두 번째는 평론 그 자체에 대한 미학적인 가치다. 신형철 평론가다. 더 긴 말이 필요한가. 이 평론은 말하자면 "시에 대한 시"에 가깝다. 시만큼, 혹은 시 그 자체보다도 그의 평론이 아름다운 글이 많다. 그래서 그 평론을 감상하는 거 자체만으로도 큰 문학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결국은 시에 대해서 조금은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시도 궁금해진다. 요즘 쓰인 시들은 무엇이 있는지, 윤동주 작가의 시 중에 다른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처럼 내 나름대로 그 시를 뜯어보고자 살핀다. 그래서 이 책은 문학을 즐겨 있는 독자라면 아주 관심을 갖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꽤 많은 문학과 거리를 두는 20살 이후 사람들에게서 수능 문학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음을 본다. 나 또한 그랬다. 내 평생 읽었던 시 보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시들이 가장 많았다. 분석하고 해석하여 답을 맞히는 일이 우선순위였기에 시를 음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물론 분석하고 해석해서 답을 맞히는 일도 아주 자주 불가능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유난히 시에 대한 오해가 깊었다.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인생의 역사를 다시 한번 권한다. 그 오해를 조금은 해소하여 시와 화해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