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실격 Dec 06. 2023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원작 소설

미키7

그 왜 유명한 속담이 있지 않은가.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이 책이 꼭 그렇다. 나는 처음에 미키 7이라는 제목에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어쩐지 일본 3류 소설 같은 느낌도 들어서. 하지만 띠지에 적힌 "봉준호 감독 차기 sf 영화의 원작 소설"이란 문구는 책 안을 들춰보게끔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나도 좋아하고 누이도 좋아하고 아카데미도 좋아하는 감독이다. 그가  매료된 이야기라면 품질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은 7번째 미키가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7번째 미키란 무엇이냐가 다음 질문이다. 7번째 미키를 말하기 위해선 "익스펜더블"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소설에서 정확한 시점은 등장하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지구를 떠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말할 것도 없이 행성 개척 임무는 죽음이 도처에 깔려있는 위험한 일이다. 작은 사고에도 200명 탐사 대원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돌다리를 두들기는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두들기는 그 지팡이로 사용되는 게 "익스펜더블"이다. 익스펜더블은 위험하고 기피하는 임무를 맡는다.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면 강한 방사능을 견디면서도 직접 수리한다. 행성에 도착한 뒤 새로운 바이러스가 있는지 몸소 생체 실험한다. 낯선 행성에서 괴물들에 대한 탐사 작업에도 가장 앞에 선다.

왜 그러냐고? 그들은 불멸이니까. 

이들은 백업해 둔 뇌를 단백질로 만든 육체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영생한다. 그 익스펜더블이 이 소설 속 주인공 미키다. 소설에서 첫 번째 미키는 우주선을 고치다가 방사능에 노출돼 죽는다. 그러고는 첫 번째 미키 기억을 이관 받는 미키 2가 재생 탱크에서 나온다. 소설 제목인 미키 7은, 그러니까 7번째 다시 태어난 미키의 이야기다.

미키 반스는 대단한 영웅심으로 익스펜더블이 돼 탐사에 참여한 건 아니다. 지구에서 본인 잘못(=도박)으로 큰 빚이 생긴다. 빚쟁이들에게 독촉과 고문을 당하자 이럴 바에는 지구를 떠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우주 탐사대를 지원한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그가 우주 탐사대에서 맡을 수 있는 일은 딱 한자리 익스펜더블뿐이었다. 떠날 당시 미키 반스에게 역할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구만 아니라면 어디든"이었을 거다. 그래서 냉큼 1명 뽑는 자리에 1명 지원자인 미키가 승선한다.

소설은 도입부에서부터 딜레마를 던진다.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로, 아직 미키 7이 죽기도 전에 미키 8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다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뒷부분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야기를 마친다.

많은 SF 장르가 그렇듯, 그 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장치는 현실 세계에 대한 비유 정도다. 이 책은 정말 많은 물음 거리를 던져주는 데, 

당연하게도 가장 첫 번째 질문은 실존주의와 관련된다. 

가령 이런 질문이 쉽게 떠오른다. 만약 삶이 영원하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이는 그냥 "어떻게 살 것인가?"와는 분명 다르다. 자연사한다면 우리는 100세 근처에 수명을 다한다. 삶은 유한하고, 심지어 짧기에 많은 부분에서 의미가 생긴다. (혹은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 역시 100세쯤 되면 죽는 것을 근거로 제도가 짜여 있다. 20살까지 교육을 받고, 정년인 60살 근처까지 일하고, 65살부터는 연금을 수령하니까.

하지만 익스펜더블처럼 삶이 영속한다면 분명 삶이란 다른 형태와 의미로 번역될 거다. 결혼이란 제도도, 종교라는 것도, 직장이라는 것도 모두 달라지겠지. 그러기에 이 책은 어쩌면 22C 버전 이방인 같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어떻게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이다. 조금 뚱딴지같은 소리일 수 있다. 나는, 나니까. 어쩐지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총리 답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이 부분은 굉장히 세련되게 묘사된다. 미키 8과 미키 7은 6주간 시차가 있다. 그러니까 미키 7 마지막 6주의 기억과 경험이 미키 8에게는 없다. 이 차이는 조금씩 조금씩 둘을 다른 결정을 내리게끔 만든다. 

만약 재생 탱크에서 나와 업로드된 기억이 왜곡되거나, 손상됐다면. 그것을 업로드 받은 미키 N은 미키 1과 동일한 사람일 수 있을까. "내"가 "나"일 수 있는 데에는 기억이 자아의 척추이자 근간인데 그 기억이 얼마나 불안전하고 연약한지 생각하면 어쩐지 섬짓하다. 아마 소설에서 미키 직업이 "역사학자"로 정해진 배경에도 "과거를 정확하고 오해 없이 기억해서 배우는 일"의 중요성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외에도 소설은 다양한 윤리적인 딜레마와 상황을 제시하면서 독자를 참여시킨다. 만약 소설이 노골적으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좋은 책, 영화, 메시지가 그렇듯 이 책에선 단지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택과 상상과 추측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숙함"은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