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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Feb 08. 2020

본인이 회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무엇이며,

현대자동차 경영기획[전략기획]

현대자동차 경영기획[전략기획]

본인이 회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무엇이며, 왜 현대자동차가 그 기준에 적합한지를 기술해 주십시오 [1,000자]


왜냐면 현대자동차는 돈을 많이 주니까.


지원동기 질문은 자소서 항목 중 가장 어렵다.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백 가지도 댈 수 있다. 그런데 인사 담당자가 읽을 답변이라면 한 개도 쓰기 어렵더라. 여기는 필패해도 되는 공간이니까. 한 번 왜 지원했는지를 적어보겠다.


일단 현대자동차는 기업 규모가 크다. 시가총액 같은 어른들 얘기는 안 가져와도 된다. 아무튼 큰 기업이다. 길거리에도 현대자동차가 많다. 우리 집에도 산타페가 있다. 10년 됐는데도 잘 굴러간다. 요즘은 그랜져도, 제네시스도 디자인이 더 잘 나오는 거 같다. 소수 의견인가? 아무튼 이렇게 좋은 차를 많이 만들어서 팔면, 망할 일도 적겠지. 당연히도 10년 뒤에도 안 없어질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평판도 좋다. 이 평판은 현대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입사 과정이 대학을 입학하는 과정과 닮았다. 그리고 대기업 맨이라는 타이틀은 좋은 학벌에 대한 호의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대입 시기가 꾸러기 친구들 간에 대학 서열로 "급"이 나뉘는 첫 구간이면,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건 그 급을 공고히 하거나, 역전할 수 있는 두 번째 구간이다.

 실제로 타이틀이 중요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에 동시에 합격했다. 중견기업은 친구가 원하는 직무였고, 대기업은 계획에 없던 직무였다. 친구는 대기업을 갔다. 객관적인 연봉이나 복지를 보더라도 중견기업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가 대기업을 선택한 건 결국 "~~ 맨"이 주는 힘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가"로 볼 때, 현대자동차는 부끄럽지 않다.


당연히 돈도 많이 준다. 계열사, 부서, 직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동종 업계보다 많은 월급을 준다. 객관적인 숫자도 필요 없다. 업계 1등이니, 돈도 그만큼 주겠지. 사내 복지나, 회사가 서울에 있는 거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는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러니까 이런 이유를 근거로 "회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무엇이고 왜 현대자동차냐"라고 물으면 100가지도 댈 수 있다.


그렇지만 돈도 잘 주고, 기업도 크고, 복지도 좋고, 평판도 좋아서 지원했다면 200% 떨어진다. 그건 인재상이 "정직함"인 기업이라도 떨어트릴 거다. 그러니 여기서 구라가 시작된다. 현대자동차의 인재상이 도전, 창의, 열정, 협력, 글로벌 마인드란다. 자소서에 한 두 개 잘 배치시키면서 자소서를 채워나간다. 그러고 보면 이 문항은 "좋은 회사에서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는 주제로 1,000자를 채워야 하는 글쓰기 공모전 같다.


지원동기에 대한 질문은, 어쩐지 실존적인 질문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어요?"라는 질문이 "왜 살아요?"란 질문과 비슷하단 거다. 누군가 나한테 왜 사냐고 물으면 삐죽삐죽 대면서,


"그냥 뭐.. 일단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긴 한데...... 뭐.. 어떻게 하다 보니 벌써 이런 나이가 돼 있고... 이제 슬슬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고...... 이왕이면 잘 살고 싶고.."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어요?라고 물으면,


"그냥 뭐... 일단.... 졸업은 했고.... 졸업하면 다들 취업하니깐..... 나도 일단 하긴 해야겠고... 게 중에서 뭐.. 전공이랑 그나마 비슷한 곳이 이 직무 같고..."라는 대답이 나온다.


왜 이 문항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건 어쩌면 내가 실제로 지원할 동기가 부족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자소서는 글로 구성된다. 글은 애초에 쓸 말이 없으면 안 써진다. 자연스러운 글의 생리다. 그러니 나는 지원 동기에 쓸 "적절한"말이 없던 게 아니라, 순수한 지원동기 그 자체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구라와 동어반복으로도 한 두문장 정도야 늘리지 1,000자를 전부 메꿀 순 없다.


"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은, 괜히 머쓱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다. 사실 삶이란 거 자체가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 아닌가. 느닷없이 헌법을 꺼내서 미안하지만 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법에서도 행복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의 대원칙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그 안의 소소한 결정도 이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작은 일부터 큰 결심의 순간에도, 모든 건 이 행복 추구라는 대원칙에서 결정돼야 한다. 기업에 지원한 동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업에 지원한다면, 그게 내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되어야 한다.


그런데, 입사가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행복을 돈으로 거래한다고 불평한다. 내 주변에 유난히 투덜대는 친구가 많아서 그런가? 브런치만 봐도 회사 스트레스 글이 많더라. 미리 취업한 친구들도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웃긴 건, 그 친구들이 복권을 사는데 글쎄 로또 당첨되면 뭐 할 거냐는 질문에 "퇴사"라고 대답하더라. 로또 당첨이 직장 안 가게 만들어주는 일이라면, 나는 매주 그 행운을 누리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 직장 다니는 평생을 7시에 일어나야 하는가. 왁자지껄한 회식 자리도, 건배사를 공부하는 것도, 월화수목금을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연 내가 그렇게 30년을 살 수 있을까.

 솔직히 누가 시키면 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할지는 자신 없다. 취업이 날 더 행복하게 할지 불행하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건 나에게 거대하고 확실한 불행이다. 대학교 다니면서 미리 밥벌이를 궁리해놓지 못한 내 잘못일까. 그런데 나 진짜 아침형 인간 아닌데.

 

어찌 자소서도 다 떨어지면서 이런 글 쓰고 있자니 그림이 안 산다. 여우가 "저건 신포도 일거야"하는 말 같다. 그렇지만 내가 지원 동기에서 주저했던 이유는 취업한 뒤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다. 삶은 결국 행복을 위해선데, 취업이 행복 증진에 방해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는가.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후배가 물어보는 거라 생각해주길 바란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지, 취업하면 그래도 행복할 기회가 조금은 많은지,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지는지, 어쩌면 취업과 행복은 전혀 관련이 없는지 말이다.  [2,292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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