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던 인적성 시험을 첫 번째로 보러 간 회사는 LG디스플레이였다. 지금이야 중국에 치여 대형 LCD 판매 부진으로 2,000명 넘게 구조 조정한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지만 ("LGD, 생산직 대상 희망퇴직 실시", 한국경제, 2019년 9월 17일), 당시만 해도 대형 OLED 신규 라인 Set up으로 대규모 신규 인력을 충원하던 때였다. 상/하반기 공채로도 모자라 한겨울에 또다시 수시채용을 진행할 만큼 어마어마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침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하반기 공채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여유도 없이 수시채용이 열려 그저 기쁜 마음이었다. LG디스플레이 정도면 세계적으로 인지도도 있고, 업무도 체계적이고, 연봉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들었었다. 파주 정도면 서울에서 많이 먼 편도 아니었다. 학교 이공계 동기들이 취업한 울산, 구미, 창원, 거제, 여수... 등등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완전 수도권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중요한 회사 비전도 밝아 보였다. 미래에는 모든 사물에 인터넷이 연결될 거란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처럼, 앞으로는 모든 사물에 화면이 달릴 것이라는 DoT(Display of Things)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포 H사에 취업하기 전 LG 타 계열사에서 채용 전환형 인턴생활도 해보았기에 이번 수시채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반 취준생 시절에도 LG그룹 인적성에서는 거의 떨어진 적이 없었다. 취준생 사이에서는 대기업 그룹사별로 궁합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아무리 기업분석을 철저히 하고 빡세게 공부를 해가도 항상 떨어지는 회사가 있는 반면에, 적당히 놀다가 가도 쉽게 쉽게 합격하는 회사가 있다. 나에게는 LG그룹이 그런 편이었다. LG그룹 인적성검사의 특징은 내가 가장 약한 편인 수리 계산문제 빈도가 낮고, 대신 난이도 극악의 도형추리 문제가 수십 문제씩 나온다. 또한 LG Way Fit이라는 인성검사를 같이 보는데, 인화를 강조하는 그룹사 방향과 내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LG디스플레이 인적성을 보기 불과 며칠 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여의도 사시는 팀장님이 모친상을 당하셨다. 어떻게든 이직하려고 인적성 공부에 목을 매던 나에게 상갓집 지원을 나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 찼지만 그나마 장례식장이 가까운 여의도라 꾹 참고 3일상을 치르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워도 우리 팀장님이었으니까. 아직까지는...
정말 당황스러웠던 일은 3일장 마지막 날에 일어났다. 나는 당연히 발인식에는 따라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상여 운구까지 도와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고... 무슨 소리세요... 저는 장남이라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상여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영정 사진 들고 맨 앞에 서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상여를 메고 남의 집 선산을 오르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더 당황스러운 일은 이제 시작된다. 이 지방 풍습은 돌아가신 분을 관으로 묻지 않고, 관에서 꺼내어 수의를 입은 모습으로 땅에 묻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비록 우리 팀장님 모친이시긴 하지만, 그 시신을 관에서 꺼내어 땅에 묻는 일을 내가 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멘탈이 박살 나는 경험이었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하루라도 빨리 이 회사를 떠야겠다. 그리고 팀장님 모친을 모시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팀장님 모친님, 제가 사회 경험도 부족하고 하여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합니다. 혹시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이 회사 때려치우고 파주 LG를 한번 가보려 합니다. 만약에 마지막 가는 길 운구 서비스가 만족스러우셨다면 한 번만 도와주십쇼. 이번 주 주말이 LG 인적성 시험입니다. 염치없지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장님 모친께서 마지막 가는 길이 만족스러우셨는지, LG디스플레이 인적성 시험은 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지금 삼성에 다니고 있다.
"LGD, 생산직 대상 희망퇴직 실시", 한국경제, 2019년 9월 17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421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