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만나 요즘 브런치에 올린 글에 대해서 전반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삼성의 사내 문화와 반도체 업계 관련 이야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거기서 느낀 개인적인 감정과 고민들을 적어놓은 글이 더 재미있다는 평을 들었다. 실제로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통계 시스템을 봐도 내가 고생한 이야기에 더 많은 조회 수가 몰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뼛속까지 공대생이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얻어 갈 것이 많은 정보성 글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결국 사람들은 에세이를 보며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구나,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고 싶다고 한다. 그런 김에, 예전 직장에서 정이 뚝 떨어져 필사적으로 이직하기까지 고생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제일 어려웠던 인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볼까 한다. 마침 우리 회사도 19년 하반기 채용 과정 중 인적성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마포 H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일은 베트남 파견 프로젝트였다. 마포 H사는 베트남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커다란 플랜트를 지었고, 이제는 그룹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베트남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보다는 기술이나 관리 수준이 낮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이 그 시절 주요 과제였다. 당시 내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진행한 과제가 그룹사 국내 사업장 IT 시스템 구축이었고, 2~3년간 운영하면서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업무에 여유가 생길 때였다. 팀장님은 때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셨고 당시 IT 시스템 개발을 맡았던 주관 컨설팅사와 1년 가까이 협업하며 베트남 사업장 IT 시스템 확산 전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프로젝트는 진행도 못하고 엎어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기에 마지막에 어떻게 흐지부지되었는지는 기억도 하고 싶지 않다. 임원진의 판단은 굳이 이걸 지금 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본인의 실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튼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 정말로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베트남 파견 욕심도 있었던 나는,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겸사겸사 팀이 해체될 위기에 놓이자 이직을 심각하게,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그룹사 공채를 통해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하반기 채용을 기준으로 9월 초에 채용 공고 및 서류 접수를 시작한 후 10월 초쯤 서류전형 결과를 발표한다. 10월 말에 인적성 시험을 통해 수많은 지원자를 대략 3~5배수 이내로 걸러내고, 11월에 면접을 진행하여 12월에 최종 발표를 내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취업 준비생이 지원하는 삼성 그룹을 기준으로 GSAT 전형(인적성)에 약 10만 명이 몰린다고 한다("10만 명 몰린 `삼성고시` 넘으려면…오답 줄이고, 40초 내 풀어라", 매일경제, 2018년 9월 17일). 이 수많은 지원자 중 12월에 합격 통지를 받는 인원은 수백 분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솔직히 자소서와 면접은 그렇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매일 써오던 보고서가 내 자소서이고, 늘 해오던 대면보고가 면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역시나 인적성이었다. 인적성은 쉽게 말해서 IQ 테스트와 심리 테스트를 섞어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서류전형 합격자들을 다 면접장에 부를 수는 없으니, 한국스럽게 지필 고사로 똑똑하고 말 잘 들을만한 상위권만 깔끔하게 잘라내는 것이다. 서류나 면접에서 떨어지면 운이 안 좋았다고 위로라도 하지. 인적성에서 떨어지면 내가 공부를 못해서 시험 문제를 많이 틀린 거라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방법은 공부밖에 없었다.
서류 전형 마감일, 최종 제출 버튼을 클릭하고 나서부터 서점에서 인적성 책을 사서 빡세게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1~2시간 정도는 꼭 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식이 있어 아무리 술을 많이 먹은 날도 집에 들어와 시험 1회분씩은 꼭 풀고 잤다. 주말은 당연히 인적성 문제집만 풀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하고 나니 유형이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마음이 불안해서 채용 관련 업체에서 지원하는 유료 모의고사도 응시했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합격권이 들어왔을 때, 감 떨어진 중고 신입인 내가 그래도 아예 틀린 길을 가고 있지는 않구나 안도했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
"10만 명 몰린 `삼성고시` 넘으려면…오답 줄이고, 40초 내 풀어라", 매일경제, 2018년 9월 17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4220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