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ink Glove
Jul 23.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3-2 공원에서의 조깅
4시 55분.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겼다.
검정색 힐은 아래 서랍에 집어넣고 대신 버건디 컬러의 나이키 운동화를 꺼내신었다.
핸드백에서 머리끈을 꺼내 묶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회의에서 발표할 보고서도 다 썼고, 출장 계획서도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두었다. 완벽하다.
'내일 봐요~바이'
인사를 하며 큐비클에서 벗어났다.
화장실에 들러 까만 7부 레깅스와 티셔츠로 갈아입고, 누가볼세라 얼른 차로 가 시동을 걸었다. 이런게 진짜 워라벨이지. 퇴근 후 아파트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바로 향했다. 핸드폰에서 만보기앱을 켜고, 충전해둔 아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가수 퍼기의 'Labels or Love' 가 흘러나온다.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뉴요커가 된 기분이다.
햇살은 뜨겁다 못해 살이 타는 것 같지만, 몸에서 노폐물이 더 잘 빠지게 해주겠지. 부족했던 비타민 D가 과다충전되는 것 같은건 기분 탓인가.
집안의 스텝퍼로는 성이 차지않아 공원에서 달리기에 도전했다. 아직은 5분 달리고 25분 걷는 수준이지만 흠뻑젖는 티셔츠와 가벼운 피로감이 기분좋게 느껴진다. 건강해 지는 것 같다.뿌듯하다.
오늘도 선크림은 또 잊어버렸지만 괜찮다. 내일부터 바르면 된다. 메이크업 리무버 티슈도 챙겨올 걸. 눈화장이 녹아 흘러내려 눈이 쓰라리다.그래도 나는 달린다. 아니 걷는다. 숨이찬다. 자극이 필요하다. 폰을꺼내 인그타그램을 켠다. 나를 쏙 뺀 에이미의 사진첩을 본다. 둘이 바에서 찍은 사진이며 제시의 사진만 잔뜩 올리고 내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질투인지 짜증인지 모를 기분이 치솟아 오르지만, 이 기분을 운동의 원동력으로 써보자.
'아...안녕하세요.'
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자, 지난번에 마주친 그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아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실수를 하고나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죄송해요. 저는 제임스 강 이라고 합니다.'
' 아 아니예요. 저는 젬마라고 해요.'
'이 동네는 한국분들이 많이 없으신가봐요. 한국분 뵈어서 반갑네요.'
'아...네. 아시안이 많은 동네는 아니예요.'
'저는 여기 대학 박사과정을 하러왔어요. 이전에는 플로리다 대학에 있었구요.'
'아...네.'
'운동하시는 중이었는데 제가 방해했나봐요. 다음에 또 뵈어요.'
' 아니예요. 담에 또 뵈요.'
백수는 아닌가보네. 간만에 한국인을 봐서 반가웠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 사람은 곧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자세가 안정적이다.
' 앗 잠깐!'
폰을 켜고 셀카모드로 얼굴을 살폈다. 엉망진창이네. 아이라이너는 녹아내려 눈 아래가 시꺼멓고 립스틱도 지워지고 번져 마치 조커 코스프레라도 한 것 같다. 제길.
혹시나 다시 마주칠까싶어 그 사람이 달려간 길과 다른 길로 움직였다.
3.5키로를 걷고 뿌듯항 마음으로 스무디 가게에 들려 저칼로리 스무디를 사마셨다. 이것으로 저녁은 끝인거야.또 피자 시켜먹지 않는거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집에 들어섰다. 에어컨부터 시원하게 틀었다. 피곤함에 우선 침대에 누웠다. 아 좋다. 에어컨 바람에 폭신한 침대.
새로산 로즈향 바디샴푸를 꺼내 몸을 헹구고 샴푸 후 컨디셔너도 발라 준 뒤 깨끗하게 행구었다. 평일이면 출장 중이거나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폰만 만지작 거리는 것이 다였는데, 예뻐지겠다는 일념하나로 공원에 발을 내딛기 참 잘했다. 꼭 퇴근 후 주말인 것 같은 기분이다. 계속 해야지. 깜짝 놀랄정도로 날씬해져 선호의 마음을 붙잡아야지.
아틀란타 웨스턴 호텔 꼭대기 층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선호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지. 와인 한병을 시켜 나눠마시며 대화를 하다 취기가 오르면...아래 호텔 방에 함께 내려가....
폰이 찌링 하고 울렸다.
링크드인 알람이다. 뭐야, 리크루터인가 하고 폰을 열었더니 선호다. 선호가 1촌 신청을 했다. 승낙버튼을 눌렀다. 아는 사이에 굳이 왜 1촌 신청을 했지. 아무렴 좋다. 서로를 더 알게되면 좋은거니까. 아 얼른 살도 쭉쭉 빠지고 시간도 빨리 흘러 선호를 다시 만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