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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Jul 28.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3-5 저녁 버디

제임스 강, 아니 동원이와의 재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포르투갈 출장을 다녀와 또다시 밋밋한 월화수를 보내고, 목요일쯤 그에게 연락이왔다. 포르투갈에서 포르투 와인과 체리주를 사왔는데 같이 한잔하지 않겠냐고. 포르투갈이 벌써 그리워서 누군가를 만나 포르투갈 얘기를 실컷하고 싶다며 금요일 저녁 약속을 잡았다.

금요일 저녁이라고 해야, 20대에나 다운타운에서 친구들과 불금을 불태웠지 이제는 혼자 넷플렉스 보면서 와인을 홀짝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금요일 일상에 동네친구를 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맘편히 술잔을 기울이기 위해 우리 아파트로 불렀다. 동원이네 아파트는 미국인 룸메들이 있어 한국어로 떠들기 조금 눈치보인단다.

남자친구 초대한 것도 아닌데 요리를 하는 것도 너무 오버하는가싶어 우버앱으로 간단한 중국요리를 주문했다. 야채를 볶은 초면은 종이박스에 그대로 두고, 탕수육 비슷한 스윗앤샤워 치킨을 접시에 부었다. 살짝 매콤한 몽골리안 비프도 다른 접시에 옮겨담아 식탁에 올렸다.

그래도 와인인데 치즈가 없으면 아쉽다싶어 냉장고안에 있던 동그란 모자렐라치즈를 썰고 사이사이 붉은 토마토를 끼워 나무 도마그대로 식탁에 옮겨놓았다.


'안녕'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양손에 하나씩 술병을 든 동원이가 왔다. 정말 편안한 추리닝 차림으로. 그래 이게 동네친구지.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내가 반 낼게.'

'됐어. 네가 술 가져왔잖아. 이걸로 퉁쳐.'

식탁에 앉으며 동원이는 살짝 들뜬 듯 했다.

나는 고요한 집안이 어색할까싶어 크롬캐스트로 넷플렉스를 켰다.

주거니 받거니 한잔씩을 마시고, 밥을 먹으며 동원이의 포르투칼 여행기를 들었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서핑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중간중간 감탄사를 내뱉으며 한시간넘게 대화를 나눴다. 포르투 와인 한병이 비자, 우리의 우정도 한뼘정도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준비해둔 음식을 다 비우자, 식탁을 대충 치우고 복숭아와 자두를 씻어서 내놓았다.

동원이는 웃으며

'역시 자취프로는 다르구나. 나는 아직 집 냉장고에 닭고기, 야채 아님 프로틴 파우더라 집에 과일이없어.'

라며 웃었다.

' 그래서 너는 그렇게 날씬한거야. 난 집에 먹을게 많아서 자꾸 살이 안빠지나봐.'

많이 편해진 그에게 다이어트 하소연을 했다.

그의 표정이 한순간 진지해졌다.

'나도 한 15킬로정도 뺀거야. 석사 시작전에 살이 너무 많이 쪘었어. 매일 몸도 아프고 해서 부모님 걱정시키기도 죄송하고해서 식단도 엄격하게 지키고 운동도 꾸준히 해서 뺐어.'

지금 이렇게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동원이가 그렇게까지 뚱뚱했었다는 게 믿어지지않았다.

동원이는 한참을 자기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운동을 했으며, 일주일에 삶은 계란을 몇개나 먹었는지 한참을 얘기했다. 동원이의 옛날 사진도 보여주었다. 토실토실 얼굴과 배에 살이 오른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진짜 동원이가 편해져서 인지 나는 나의, 나만의 실연 이야기를 했다. 그 상대가 곧 아틀란타에 올거라는 것과 그전에 살을 많이 빼서 변한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도 쏟아냈다.

동원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 젬마, 내가 도와줄 수 있을거 같아.'

'응? 어떻게?네가 내 가짜 남친 흉내라도 내줄거야? 하하'

' 우리 저녁을 같이 먹자.'

단호한 표정의 그를 보자 술이 살짝 깨는 듯 했지만 아직 이해는 되지 않았다.

' 내가 재료비의 절반을 낼게. 내가 주는 레시피대로 너는 저녁요리를 하고 그걸 반씩 나눠먹자. 결국 다이어트의 핵심은 저녁 식단이거든. 그렇게 저녁을 만나서 먹고 지난번에 만난 공원에 가서 자기 전 운동을 하자.'

그의 말에 흔들렸다. 그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지켜봐 준다면 내가 흐트러져도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거기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재료비 돈까지 받으면 약속을 더 잘 지키겠지.

' 그래 그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동의를 했다. 그리고는 밤 11시까지 그의 계획을 듣고 내가 토요일에 사야할 재료들을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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