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nk Glove Jul 28.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3-4 김치찌개의 그리움

우연찮게 포르투갈에서 친구를 얻었다.

그 흔한 로맨스 영화처럼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키스를 하거나 노란 트램을 타며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 귀하다는 10분 거리의 동네 친구를 얻었다.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모국어로 수다를 떨며 술 한잔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찾기 힘든지와 그 존재의 가치를.


술 마신 다음날, 나는 예정대로 출장을 갔고 그 이후로 제임스 강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생각대로 나는 너무 바빴고 공장과 호텔을 왔다갔다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데 시차가 다른 미국 사무실의 회사 담당자들과도 저녁늦게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전달을 해야했다. 보통 그렇게 힘든 상황에 여유로운 사람을 보면 심통이 나곤한다. 하지만 리스본과 그 근처 소도시들을 돌며 나중에 꼭 가보라며 신난 어린아이가 자랑하듯 사진을 보내는 그가 이상하리만치 밉지않았다. 아니, 밉지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 조금 기뻤다. 먼저 연락 한통 없는 선호 생각이 안 날 정도로.


포르투갈에서 돌아오는 길, 리스본 공항에서 하얀 박스에 든 기념품용 에그타르트를 사면서 나도 모르게 그가 또 우연히 어디서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기대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 I am going back to USA now. Let's hang out sometime after you come back

한국어로 쓰기가 약간 낯간지러워 영어로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한창 신나게 여행 중인가보다.


또다시 네덜란드 공항을 거쳐 미국에 돌아왔다. 1주일만에 맞는 이 동네의 공기가 달콤하게마져 느껴졌다.

익숙한 집에 들어오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해야할 것이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꺼내 썰었다. 동원 참치도 한캔 꺼내고, 냉동실에 넣어둔 파와 마늘도 꺼냈다.

쌀을 씻어 밥을 짓기 시작한 후, 파와 마늘을 손질하고 슬슬 싹이 자라기 시작한 양파도 찬장에서 꺼내 껍질을 까고 숭덩숭덩 크게 썰었다.

참치를 냄비에 붓고 김치를 참치기름에 볶다싶이 익혀주다가 물을 자작하게 넣고 끓였다. 손질한 파, 마늘, 양파를 순서대로 넣고 팔팔 끓기를 기다렸다.

흰쌀밥에 김치찌개. 이것이 너무 먹고싶었다. 포르투갈에서 먹은 해산물들도 맛있었지만, 이 밥에 김치찌개, 이 조합이 미친듯이 그리웠었다.

소원을 풀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자가 왔다.

-벌써 갔어요? 사실 나도 내일 돌아가요. 미국에서 술 한잔해요.

생각지도 않았던 그의 문자에 기분좋게 잠에 빠져들었다.


일요일 아침까지 푹 잔 뒤, 1주일만에 몸무게를 쟀다. 여전하다. 아니 이정도로 고생을 했으면 몸무게가 줄 법도 한데.

당장 공원에 가야겠다. 하지만 몸이 너무 천근만근이다. 나가 나를 공원에 데려가 운동을 시켜줬으면 좋겠다.

우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운동 자극영상을 보면 운동을 하겠다는 의욕이 솟겠지 하며 유튜브를 보다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