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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Aug 05.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4-2  야채면 스파게티

퇴근 후 유기농 마트인 Fresh Market에 들러 주홍색 얌을 가늘게 깎아 면발처럼 만든 얌 누들을 샀다. 집에 없는 월계수 잎도 한 병을 사고 통마늘도 한봉 집어들었다. 퇴근 후라 몸은 피곤했지만, 생각해둔 요리를 할 생각에 마음은 설렜다.


부엌에서 큰 도마와 자주쓰는 식칼을 꺼냈다. 당근과 양파, 그리고 빨간 파프리카를 비슷한 크기로 덩어리감 있게 썰고, 방울 토마토도 한주먹 꺼내 반으로 잘라두었다. 냉장고에 묵혀둔 스파게티 소스도 꺼냈다. 깊이가 깊은 팬을 꺼내, 소금과 후추만으로 버무린 갈은 비프를 한 숟갈의 올리브유와 볶고, 장을 봐온 월계수 잎도 두장을 넣었다. 맛있는 고기 냄새가 올라올 즈음 스파게티 소스를 붓고, 준비해둔 얌 누들과 썰어둔 야채들을 소스가 스며들도록 끓였다. 제법 스파게티의 태와 향이 난다.

'오늘 완전 기대하면서 왔어.'

문을 열자 동원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기대해 둬.'

부엌에 가득찬 맛있는 냄새에 동원이는 설레는 표정으로 식탁에 앉았다. 살을 빼는 건 난데, 동원이가 더 열심히라 턱선이 더 날렵해졌다. 괜히 사람 설레게.


'우와 이게 뭐야?'

'야채 면발 스파게티. 면발은 얌으로 만든거야.'

동원이는 한 입 먹더니 눈을 꼭 감았다 크게 떴다.

'제대론데. 이제 식단은 내가 믿고 맏겨도 되겠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겠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식사를 하는 사이 밖에는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공원은 못 가겠네.'

'아쉬운대로 실내 운동이라도 하자.'

동원이가 씨익 웃으며 마지막 남은 당근을 입에 넣는다.


강동원 이 독한 자식. 일반 스쿼드와 다리를 넓게 벌려서 하는 스모 스쿼드를 각 백개씩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하다. 낼 아침에는 운동화를 신고 출근해야겠다. 힐은 도저히 무리다. 아마존에서 새 샌달이 도착했건만.

대충 씻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자려는데 폰이 울린다.

'나 아틀란타 비행기 표 끊었어. 곧 보자.'

선호의 문자다. 뉴욕에서 본 선호의 얼굴을 떠올리려는데 동원이의 얼굴이 먼저 그려졌다. 매일 보다보니 그런다. 역시 동원이는 좋은 놈이야.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겠지. 주말에도 같이 운동을 해주려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잠이 오질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이 며칠 전과 다르다. 붓기가 빠진건지, 진짜 살이 빠진 건지. 얼굴에 생기도 좀 도는 것 같고. 내 마음에 든다. 간만에 흰 셔츠에 검은 블레이저를 걸치고, 과감하게 청바지에 어제 산 샌들을 신었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니 자신감도 한층 업 된 기분이다. 다리는 역시나 후들거리지만, 내 자신감은 지금 내가 신은 새 샌달의 굽 높이 만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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