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ink Glove
Aug 07.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4-3 Party Boat Party
아쉽다.
운동을 빠지는 것이 아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아쉬운건 운동이 아니라, 마음 맞는 친구와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업무관련 긴급 출장이 또 시작됐다.
미시간에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수목금을 다른 도시에서 보내게 되었다. 동원이에게는 미안하다고, 이번주 수목금은 스킵해야 할것 같아ㅠㅠ 라고 문자를 보내자, 출장 잘 다녀오라며 그다운 다정한 답변 문자를 받았다. 왜 이렇게 다정한 거야, 얘는. 여자들이 얼마나 얠 좋아할까.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회색빛인 홀리데이 인 방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저녁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 인가 고민했다.
호텔 앞의 식당에서 멕시칸 타코를 먹을까, 그냥 룸서비스로 종이박스같이 퍼석한 햄버거나 먹어둘까.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 이번 주말에 뭐해?
회사 친구 디에나다. 그녀는 콜롬비아 출신의 씩씩한 여장부타입으로 회사내 여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 별다른 계획은 없는데. 왜?
-우리 보트를 타자! 사람들 모아서 파티 보트를 빌려서 놀자,이번 주말에.
사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해서 주말에는 푹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그녀의 다음 문자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 혹시 다른친구 있으면 더 데려와도 돼! 사람들 모으는 중이야!
동원이가 주말에 심심하다며 투덜대던 것이 생각났다. 동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원아!'
'응, 미시간은 잘 도착했어?'
'잘 도착했지. 다름이 아니고 회사 친구들이 주말에 같이 보트 타고 놀자는데 너도 갈래?'
'정말? 그래도 돼?'
'그럼, 회비만 조금 내면 돼.'
'그래? 응 나 가고싶어.'
'알았어, 그럼 시간이랑 장소 받아서 나중에 문자로 줄게.'
'고마워!'
전화를 끊고 가벼운 손놀림으로 디에나에게 답변을 보냈다.
-나도 조인 할게. 친구 한명 더 데려갈거야!
시간은 흘러 토요일이 되었고, 동원이는 설레는 표정으로 아파트 문 앞에 서있었다.
차 한대로 같이 가기로 하고, 길을 아는 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우와, 차 좋다. 나 아우디 처음 타봐.'
'좋긴. 차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이 아우디를 사기위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모았던가! 주말마다 청소하고 세차시키며 애지중지하는 내 차를 칭찬해 주자 내심 뿌듯했다.
보트를 타는 곳으로 가자. 여자애들이 바글바글하다. 여자대 남자비율이 7대 3 정도 인것 같다. 동원이를 괜히 데려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괜히 엄한 여자애랑 눈 맞아서 내 남사친 뺏기는 거 아닌가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디애나를 비롯한 싱글 여자애들이 평소보다 더 반갑게 인사하며 동원이가 누구인지 묻는다. 친구라고 하자 다들 눈꼬리와 입꼬리가 올라간다. 특히 중국인 슈링이 동원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언제 말을 걸어볼지 눈치를 보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 혹여나 동원이가 슈링이랑 만난다고하면 뜯어말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보트에 올랐다. 파티 보트라더니, 2층에 빨간 워터 슬라이드까지 달려있다.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안전 교육을 간단하게 받고, 디애나가 보트를 몰아 강 한가운데를 달렸다. 보트 위에서 맞는 바람과 물방울이 내리쬐는 햇빛과 대조적으로 시원하다. 챙겨온 선크림을 나누어 바르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에게 동원이를 소개했다. 슈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원이 옆에 앉아 수줍은듯 인사를 한다. 꼴뵈기 싫다.
한참을 달려, 좋은 위치에 보트를 세우고, 다들 가져온 음식과 맥주를 꺼내 놓는다. 동원이와 마켓에 들려사온 맥주 12캔과 안주용 과자들을 나누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과일을 먹었다. 적당히 분위기가 오르고, 다들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여자고 남자고 수영복만 걸친 채 하나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슈링과 디애나는 비키니만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지도않고 동원이 곁을 맴돈다. 동원이도 간만에 미국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한다며 조금 설레보인다.
3잔째 마시는 이 캔맥주 탓인지 햇살 탓인지 살짝 어지럽다. 나도 시원한 물속으로 들어가고싶다. 차마 수영복만 입을 용기는 나지않아서 눈치를 보다 원피스 아래 입은 수영복 바지에 티셔츠를 걸친채 물로 품덩 뛰어들었다. 원래 강물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으면 안되는데 급하게 뛰어들다보니 물을 조금 먹은 것 같기도 하다.
옆에 둥둥 떠있는 유니콘 튜브를 잡고 둥둥 뜨자, 몸이 릭랙스가 된다. 살짝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긴다.
보트 위를 흘끗 바라보자, 동원이가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슈링과 디애나가 경쟁하듯이 들이대서 그런건지. 좋을대로 하라지. 살짝 불편한 심기로 그 상황을 관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원이가 뒤돌아서 티셔츠를 벗는다. 탄탄한 상체가 햇빛을 받으며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 남자들 처럼 갈색으로 태닝된 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명한 복근과 강인한 팔근육이 자리잡은 멋진 몸이었다. 슈링과 디애나의 눈이 하트로 변하는 것이 보인다. 살짝 질투가 난다. 동원이는 멋쩍은 듯이 강물로 뛰어든다. 안정된 자세로 배영을 해서 내가 붙잡고 있는 유니콘 튜브로 다가온다.
'너무 편해보인다 너. 하하. 나도 같이 좀 붙잡고있자'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유니콘 꼬리를 붙잡는 동원이의 모습에 괜히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물이 담길 정도의 깊은 남자의 쇄골이라니. 갑자기 온 몸의 알코올이 심장으로 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며 살짝 어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