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Why
난 술을 많이 마시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다.
진심이다.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난 술을 많이 마시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는 그나마 쉬운 일이지만 그럴 때조차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시나마 진심으로 내가 원했던 것은 몇 날 몇 달이 지나면 어느새 시들해져 버리곤 하고, 심할 때는 몇 초만 흘러도 내가 그걸 원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도 많다. 사람의 진심이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진심으로 말하건대,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술을 더 잘 먹고, 많이 먹고, 계속 먹기 위해서다. 난 잠자는 것도 매우 좋아해서 잘 때 누가 깨우면 많이 짜증을 내는 편인데, 그런 나를 잘 때 깨워서 한번 물어보라. 너 다이어트 왜 해? 그러면 짜증이 나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내가 잠이 덜 깨어 어리둥절한 상태로 눈을 꿈뻑이다가 대답하는 걸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술 마시려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한 자리에서 많이 마신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경우는 오래도록 마신다는 의미도 된다. 나보다 술을 세 배 더 잘 마시는 사람과 똑 같은 양을 마시기 위해서는 숙취와 필름 끊김을 각오하고 주량의 세 배를 마시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가 세 배 더 오래 살아 계속 술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뭐 그렇다고 세 배나 오래 살고 싶다는 얘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 전날, 이런 날엔 비행을 저질러줘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으로 휩싸인 나와 친구들은 놀이터에서 맥주를 깠다. 각 두 캔 정도씩 마셨던 것 같은데, 맛있었는지 취했는지 들켰는지 어쩐지, 아니 중학생이 어떻게 맥주를 무사히 구할 수 있었는지조차 전혀 기억에 없다. 필름이 끊겼다는 얘긴 아니고, 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멀쩡히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 다음날 시험을 보러 갔던 것 같다. 이십 대는 대학생으로서, 삼십 대는 직장인으로서 술을 마셔댔지만 그 때는 중3때 첫 비행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유로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술이 달다거나 분위기가 좋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뭔가, 이제 막 제약을 벗어난 어른의 음료 같았달까. 그러니까 술을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며 마셔댄 시간이 꽤 길긴 하지만, 진짜 술을 좋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악뮤의 노래가사처럼 어느 순간, “그 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난 술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술이 아니라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라는, 정말 되도 않는 말은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분위기만을 좋아했다면 무알콜 맥주를 마셔도 좋았을 거고, 취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난 멀쩡해도 좋았을 거야. 하지만 난 그냥 술을 좋아하는 거였고, 취하는 걸 좋아하는 거였다. 그래서 덜 취하면 화냈었구나. 야, 왜 술을 마시다 말어!
목적이란 한 줄의 심오한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목적은 세분화해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맛있어서, 같이 먹는 안주가 좋아서, 같이 먹는 사람이 좋아서.
술은 맛있다. 어쩜 이렇게 완벽한 형식의 문장이란 말인가. 내게 술의 맛을 알려준 일등 공신은 바로 편의점 4캔 만원 행사다. 난 맥주는 카스 하이트만 있는 줄 알았지. 이건 무슨 공산당 국가도 아니고 세상에 맥주가 두 종류뿐이냐! (박중훈의 ‘랄랄라춤’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오비는 내가 술을 한창 탐닉할 시절엔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레트로 디자인으로 다시 부활한 요즘 오비는 좋아한다.) 그래서 클라우드가 출시됐을 때 열광했었고(곧 실망했다), 필라이트가 출시됐을 때 흥분했으며(더 실망했다), 피츠가 출시됐을 때부터는 기대를 접었다. 그런 의미에서 테라의 성공은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름만 들어본 전세계 맥주가 편의점과 마트에 깔리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세계 4대 라거로 불리는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스텔라 아르투아, 그리고… 이제는 이름을 바꿔야 하는 코로나 위주로 시작해서, 진열장에 있는 모든 새로운 종류는 다 먹어본다는 목표로 열심히 마셨다.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돈이 없어 당시 마트에서 가장 싸서 많이 마셨던 칼스버그, 아일랜드에서는 약으로도 먹는다는 기네스, 맥주 종주국 독일 것도 마셔봐야지 벡스와 크롬바커, 필리핀에 대해 아는 건 맥주 뿐 산 미겔, 타이항공 타면 꼭 달라고 하는 로컬 비어 싱하, 각종 흑맥주에 에일까지 세계는 맥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가 싶었다. 대동강 맥주를 마셔보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세계는 맥주로 대동단결!
물론 맛은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거 보면 다양성 자체가 맛있음 아닌가 싶다. 다양함을 가질 수 있는 문화가 강하고 건강한 문화다. 그런 탐색기를 오랜 기간 거친 후 지금은 전세계 청년들이 욕한다는, 가장 맛없다는 ‘자기 나라 라거’인 카스와 테라에 정착했다. 자랑스런 내 나라는 전통의 증류주인 소주와도 섞어먹을 수 있지 아니한가. 꽤 오랜 기간 소맥에 정착 중인데, 슬금슬금 새로운 시도가 하고 싶어진다. 이제 막걸리를 한 번 파봐…?
막걸리뿐 아니라 고급 증류주에, 곡주에 과실주에 위스키까지 마셔보려면 갈 길이 멀다. 이렇게 다양한 맛을 오래도록 즐기고 싶어서 오늘도 난 다이어트를 한다.
하지만 술 자체만으로 술이 맛있어 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 절대미각이 되어 주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물만 갖다 놓고 소주를 마실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단계가 아니며 그런 상태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역시, 좋은 안주와 잘 매칭될 때 술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 전에 읽은 장기하의 산문집에도 나오는 얘긴데, 장기하 씨는 이것을 '페어링'이라고 칭했다. 물론 이 글은 그 책을 읽기 전에 쓴 건데, 물론 장기하 씨도 책이 나오기 훨씬 전에 그 글을 써놨을 것이고, 무엇보다 장기하 씨가 훨씬 유명하므로...... 선후를 따져보는 건 필요없을 뿐 아니라 내가 명백한 손해다. 사실 장기하 씨의 술에 대한 글을 보고 상당히 반갑고도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데가 있군!
이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는… 부끄럽지만 자랑스럽게도 치킨이다. 뭐 대단하게 특별난 치킨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지점 많은 인기브랜드 치킨 다 좋아한다. 그러다가 지역의 전통 강자 페리카나, 멕시카나, 처갓집 양념통닭을 만났을 때는 그 맛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광고에 휩쓸려 인기브랜드 치킨집의 새로운 메뉴 시도에 열을 올리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변함없는 그 맛. 요즘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역시, 반반, 그리고 무 많이 주세요, 이다.
하지만 이건 꼭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의 신흥강자 지코바 중산1호점은 여전히 새로운 전통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난 원래 순살치킨은 잘 안 먹는 주의였는데, 지코바 순살 소금구이와 약간매운맛은 그야말로 오븐구이와 양념의 신세계를 보여주었달까. 탄산음료를 떡사리로 바꿔주실 수 있냐는, 참으로 귀찮은 나의 부탁에도 항상 친절히 응대해주시는 직원 분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물론 족발도 좋아하고 초밥도 좋아하며 곱창도 좋아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채식주의자 분들께서 보시면 기함할 문장이라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난 김한민 작가가 쓰신 <아무튼, 비건>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고, 지구를 끝장낼 이 공장식 축산의 방향을 돌리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죄송하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두부김치도 매우 좋아한다. 지금은 사실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에 클린 미트가 상용화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쨌든, 다양함 자체가 맛이다. 술도 안주거리도 이렇게나 다양한데, 각각의 조합까지 생각해보면 거의 무한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다양한 세상과 다양한 내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봐 주기 위해, 난 오늘도 다이어트를 한다.
그리고, 술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 사실 다양함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난 많은 사람과 즐기는 술자리나, 처음 보는 사람과 갖는 술자리를 좋아하진 않는다. 성격이 모나서인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곁에 남는 사람들이 없어서, 몇 안 남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몇 안 되는, 그렇지만 서로의 깊은 속내를 들어주고 알아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더 알아가는 데는 술이 최고다. 그래서 신기한 술 봤다고 맛있는 안주 봤다고 같이 먹자고 연락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이토록 맛있는 술을, 이토록 다양한 안주와 함께, 이토록 소중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즐기려면 몸이든 마음이든 건강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건 내 다이어트의 이유다. 당신에겐 당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어떤 이유도 괜찮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길. 자신의 마음을 잘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난처할 만큼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원하는 건 모르면서, 원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 문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그게 옳은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이 먼저 앞서게 되면 솔직한 마음은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솔직하게 원한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보디빌딩을 세계에서 가장 잘하거나 체형으로 남을 이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실패할 이유도 없고 나 자신을 사랑하면 되는 내 다이어트를 하자는 것인데 할 수 없는 게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길. 이건 솔직함과 같이 간다. 솔직할수록 분명해지고, 분명해질수록 솔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의 이유는 분명해야 한다. 건강해지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는 거라면, 그 건강함이 20kg 감량을 뜻하는 건지, 여름 MT를 가서 물놀이 한다는 핑계로 동기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웃통을 까고 싶다는 건지, 4pc 레시가드가 아닌 2pc 비키니를 입고 싶은 건지, 밤샘을 한 다음 날 끄떡없이 쌩쌩하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서 김부장을 놀래키고 싶다는 건지, 길을 가다 무심결에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혔는데 밀리지 않고 밀어 쓰러뜨려버리겠다는 건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출근해도 입에서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과 여름밤 가로등 불빛 아래 산책로를 걸으며 오래도록 서로를 지켜주자는 맹세를 하고 싶다는 건지…… 열 두 줄도 더 쓸 수 있지만 당신이 완성하기를 바라며 문장을 말줄임표로 끝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숙취를 이기고 김부장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과, 연인을 지켜주겠다는 결심은 말이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려면 다이어트보다는 대화법을 연습해야 할 수 있다. 밤샘 후 입에서 구취가 나지 않으려면 이를 잘 닦고 설태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바디프로필을 찍고 싶은 거라면… 이건 전방위적인 다이어트가 필요하긴 하겠다. 난 뭘 목표로 삼고 있기에 건강하고 싶은 걸까? 대체 뭘 원하기에 굳이, 정말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걸까? 그게 분명해질수록 나에게 솔직해지고, 솔직해질수록 내가 진짜 원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한참 꿀잠을 자고 있는 당신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깨운 뒤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을 때, 20kg 감량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마시따밴드의 노래 <돌멩이>의 가사처럼, “시간이라는 놈은 피도 눈물도 없”지만, 친구처럼 같이 살아가고자 곁을 내준다면 시간은 꽤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의 진심을 확인했다면, 그 진심이 그대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런 제련을 통해 추출한 진심이 있다면 의지박약 같은 건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 해도, 누가 안 깨우면 열 일곱 시간도 잘 수 있는 내가, 새벽 같은 6시에 일어나서 사과를 먹고 일주일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운동을 간다. 왜? 술 마시고 싶어서! 맛있게, 좋은 안주랑, 좋은 사람이랑 오래도록 마시고 싶어서! 진심이니까!
혹시, 내 진심이 잘 찾아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말길. 그대의 진심은 너무 소중해서 아직 다이어트 따위에 발견될 마음이 없을 수 있다. 세상의 고정관념과 세월의 더께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진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이어트가 아닌 세계 평화나 지구 온난화 방지가 그대의 진심을 깨울지 누가 알겠는가. 오히려 부담 가지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시간을 친구 삼아 숨어있던 진심이 고개를 들지 모른다. 그 때 잊지 않고 반겨주면 좋겠다. 다이어트는 그 때 해도 전혀 늦지 않다. 다만, 그 때가 너무 몸이 아플 정도로 늦지 않기를 바란다. 몸이 아픈 건 너무 힘들고 서러운 일이다. 소중한 당신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