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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Oct 22. 2020

어떻게 운동을 할 것인가 – 꾸준히

다이어트의 How - 운동편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는가? 백 일 동안 목표를 쓰고, 힘차게 외쳐라. 난 10억을 모으겠다! 아, 혹시 어디서 본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기억력이 매우 좋은 것이다. 난 거의 비슷한 얘기를 참 여러 번 하고 다니니까. 내 주특기가 한 얘기 또 해서 친구들한테 타박맞는 일이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부르기도 했던, 그룹 ABBA의 <Thank you for the Music>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If I tell a joke, you've probably heard it before.” 해석하면 "제가 농담을 한다면, 아마 당신이 들어본 얘기일꺼에요." 정도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요즘 유행하는 짤을 보고 엄청 재미있다고 설명해주려고 하면, 아마도 당신은 이미 봤거나 들었거나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까지 마친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너, 언제적 얘기를 지금 하는 거냐?" 그리고 내가 이미 했던 얘기일 가능성도 매우 크다. "그리고, 너 전에 했던 얘기거든? 그리고 그 때도 똑같이 말해줬던거 같은데."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글도 이미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뭔가 창의적인 것을 쓰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기가 쉬운데, 문제는 세상에 새로운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은 지가 꽤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면 이전에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을 써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까? 딱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해야 한다는 것,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은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 따위, 새로울 게 있는가? 설마 그런 얘기를 새롭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아니,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그런 새로운 얘기가 정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에이, 설마.

          새로운 걸 써야 한다는 그 부담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한 꾸준한 운동 방법에 대한 글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진부한 주제에 내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건 세상에 없던 이야기가 된다. 마치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시작하는 글은 세상에 쎄고 쎘지만, 그 뒤에 ABBA의 농담과 내 주특기를 연결하는 글은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글 다른 어디에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아, 근데, 혹시 이런 얘기를 내가 전에 한 적이 있던가?




          꾸준히 하면 된다. 운동은 꾸준히 할 수 있으면 된다. 어떻게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도를 깨닫고 싶은 한 사람이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절에 찾아갔다. “어떻게 해야 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신비로운 미소를 가진 선승이 대답한다. “수련을 꾸준히 하시면 됩니다.” 답답한 마음에 대답한다. “아니에요, 제가 벌써 열 두 번이나 수련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꾸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선승이 미소를 거두지 않고 답한다.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 없어진 구도자가 화를 낸다. “아니, 열 두 번을 시도했다니까요! 말을 귀로 듣는 겁니까, 엉덩이로 듣는 겁니까?” 선승의 미소가 노기로 바뀌더니 들고 있던 빗자루 손잡이로 구도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아직 열 세 번째 시도해본 적은 한 번도 없잖소!”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내가 방금 지어냈으니까. 분명 세상에 없던 이야기다.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 꾸준히 한다는 것은 사실 역설적으로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일을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나는 유산소 운동으로 마라톤을 꾸준히 해왔다. 풀코스 완주를 기준으로 8년을 해왔으니 꾸준하다고 할 만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유명 마라톤 대회를 가보면 꼭 현수막에 “달리는 건각 OOO 회원님의 100회 완주를 축하합니다” 같은 글귀가 휘날리는 걸 볼 수 있다. 휘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10회 이상 완주해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들의 명단이 대회 안내 팜플렛에 빼곡하다. 대체 얼만큼 해야 꾸준한 거지? 매번 대회에 나갈 때마다 이렇게 되뇌이곤 했다. ‘이번 출전은 내 생애 첫 다섯 번째 도전이다’, ‘이번 출전은 내 생애 첫 일곱 번째 도전이다.’

          나는 웨이트 운동을 약 10개월 넘게 꾸준히 하는 중이다. 코로나로 인한 휴관을 제외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주 2회를 했으니 꾸준하다고 할 만 할 것이다. 약 4개월쯤 되었을 때 복근의 라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9개월이 넘어가면서 ‘식스팩’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포팩’ 정도로는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단계다. 하지만 인스타그램만 열어봐도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된다. 휘유. 대체 얼만큼 해야 꾸준한 거지? 매번 짐에 갈 때마다 이렇게 되뇌이곤 했다. ‘이번 주는 내 생애 첫 3개월 연장이다’, ‘이번 주는 내 생애 처음으로 웨이트를 30주째 하고 있는 기간이다.’


          운동만이 아니라,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매번 실패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을 내포하는 일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열 두 번을 실패한 사람에게만 열 세 번째 기회가 주어지니까.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오는 것처럼 자명한 일이다.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자신을 유혹하는 수많은 번뇌를 칼같이 잘라버리는 독한 의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꾸준하다는 것은, 오늘의 실패가 당연하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항상 꾸준하다는 것은, 항상 새롭다는 걸 이해하는 일이다. 지겨울 정도로 실패해도 사실 별 일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새로운 일은 실패하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니까.


          꾸준하다는 것은 생활이다. 내가 생활 속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되면 실패는 이제 실패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작아져서, 약간의 아쉬움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소설가 박상영이 말한 것처럼, ‘오늘 밤에는 정말 꼭, 굶고 자야지’ 정도로 내일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는 일에 실패가 어디 있는가. ‘난 오늘도 운동에 실패했어’,가 아닌, ‘난 원래 운동을 즐거워 하는 사람인데 오늘은 좀 아쉽네’ 정도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두 번의 아쉬움이 내 정체성을 흔들 수 없다. 그래서 꾸준하다는 것은 내 정체성에 대한 문제, Why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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