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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Oct 21. 2020

나를 불태우는 세 가지 말 (외전)

다이어트의 What - 운동편 외전

          웨이트 운동을 할 때, 나를 불태워주는 세 가지 말이 있다. 이 글은 내가 머리털 처음 난 이후 처음으로 꾸준하게 10개월 넘게 웨이트 운동을 하게 해 주신 우리 짐장님께 바치는 글이다.



내 몸이에요.

          맞다, 내 몸이다. 내 몸이 내 몸이라는 사실을 이토록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말이라니.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으며, 이 말을 듣고 난 후 난 윤종신의 명곡 <환생>의 가사처럼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짐을 몇 개월 다니면서 어느 정도는 편하고 익숙해졌던 것 같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동작보다는 기존에 하던 동작을 반복하거나, 더 강도를 높일 수 있게 자세나 높이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정도로 그룹PT를 받던 때쯤이다. 그룹PT는 월금이든 화목이든 크게 변동 없이 출석하는 시간대에 계속 출석하는 사람이 많아서, 몇 개월 정도 지나면 수강생들 중 낯이 익어 눈인사를 하는 회원분도 생기곤 한다.

          이런 분위기가 되면 짐에서 짐장님과 매니저님을 포함한 누구에게 뭐 하나 질문하는 것조차 서먹해하는 나 같은 사람도, 괜히 한 두 마디 너스레를 떨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전엔 차마 내뱉지 못했던, 너무 힘들 때 ‘으어어억’, ‘우오아워억’ 같은 비명 같은 신음소리가 가끔씩 터져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 때는 바로, 파이크 푸쉬업(Pike Push-up)이라는 매우 힘든 운동을 할 때였다.


          파이크 푸쉬업이 어떤 자세인지 궁금한 분은 검색해보기 바란다. 자세와 방법을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욕이 튀어나오는 운동방법이다. 일반적인 푸쉬업과 아주 약간의 차이이지만 운동강도로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오는, 대체 저런 방법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뭐 하는 인간일까 싶어지는 자세다. 사실 웨이트를 하다 보면, 처음 고안해낸 사람을 만나면 (앞에서는 못하겠고. 힘 쎌 꺼 아냐.) 뒤에서 메롱을 열 두 번 정도 날려주고 싶은 동작이 참 많다.

          “으어어억, 더 못해!” 정도의 대사가 내 입에서 튀어나갔던 것 같다. ‘으어어억’이 아니라 ‘우오아워억’이나 아니면 ‘으우오우와우왁’ 이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됐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진심을 담아 식도와 성대를 거쳐 입 밖으로 튀어나갔음에는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예의 바른 내가 반말을 썼을 리 없고, 그렇다면 짐장님께 한 말이 아니라 나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을 것이며, 그럼 아마도 큰 소리라기 보다는 차마 입 속에 맴돌지 못하고 튀어나간, 으르렁 소리에 가까운 나직한 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직한 소리에 짐장님은 침작하게 대답해 주신 것이다.


          “내 몸이에요. 왜 못해.”

 

         그 순간 눈이 번쩍, 내 안에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났다. 그렇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몸이지. 누가 내 뒤에서 채찍이라도 들고 있다면 남은 몇 번의 파이크 자세는 갑자기 거뜬히 해낼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해낸다면 그것도 내 몸인데. 이걸 더 못한다는 내 외침은 내 몸이 못한다는 게 아니라 내 정신이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물론 그 뒤에 남은 횟수를 갑자기 아름다운 자세로 해내지는 않았다. 내 입이 고분고분해진 것도 아니어서 “아니, 안 된다고오!” 정도를 으르렁거리며 볼썽사나운 자세로 겨우 한 세트를 마쳤을 것이다. (물론 나는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반말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그 때 이후로 힘들 땐 저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 몸이다. 움직일지 말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이겨내세요.

          케틀벨(kettlebel)이라는 운동기구가 있다. 역시 검색해보면 욕이 나오게 생긴 기구다. 이 둥그렇고 앙증맞고 무시무시한 기구를 잘 사용하면 여러 부위의 근육을 다양하게 단련시킬 수 있다…… 고 하던데 난 잘 모르겠고 여러 부위가 다 힘들다. 덤벨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무게가 있어서, 익숙해진다 싶으면 무게를 올려주시는 짐장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때문에 쉴 틈 없이 계속 힘들다. 다 힘들고, 진짜 힘들다.

          웨이트 운동의 묘미이자 저주는, 끝났다 싶을 때 한 세트를 더 하는 것이다. 보통은 그 마지막 제일 힘든 세트를 할 때 진짜 운동이 된다고들 하고, 나도 매우 공감하는 바이지만, 실제 할 때는 공감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9개, 10개…… 11개…… 아, 이제 하나만 하면 돼! 12개! 아, 충분히 힘들었다. 나님 잘했어. 이제 물 마시면서 1분간 쉬라고 하시면 딱 좋은 타이밍이군, 할 때쯤 한 세트를 더 하라고 하면 진짜 운동이 되고 안 되고는 잠시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욕을 한 번 내뱉고 다시 1개, 2개…… 들어가는 거다.


          케틀벨은 여러 가지 자세를 이어서 할 수 있는데, 이런식이다. 케틀벨 스윙(swing)을 30초 한 후 스내치(snatch)를 10개에서 15개를 한다. 스내치 마지막에 케틀벨을 들어올린 자세에서 오버헤드 스쿼트(overhead squat)를 10개에서 15개를 한 뒤, 트라이셉 익스텐션(tricep extension)이나 원 핸드 로우(one hand row), 혹은 그 둘 다를 연속으로 10개에서 15개씩 하면 4~5개의 루틴이 완성된다. 숨 넘어가도록 설명한 저 루틴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오른쪽 왼쪽으로 두 번 할 수 있다. 양쪽으로 총 10개의 세트를 진행한다고 볼 때, 첫 번째 팔로 오버헤드 스쿼트를 할 때쯤 그러니까 10개 중에 3번째 세트를 진행할 때 이미 난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상태로 남은 7개 세트를 해낼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오늘 깬 정신으로 짐을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쯤, 짐장님의 명대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진다.


          “이겨내세요.”


          고지는 아직 한참 멀리 있는데, 이제 3부 능선에 서서 벌써부터 긴장감이 떨어진 내 상태를, 이미 꼬리 내리고 있는 내 의지를 운동자세에서 읽어내셨을 것이다. 뭐, 사실 날 보고 하신 말씀이 아니어도 큰 문제는 없다. 사람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해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 이겨내라는 말은, 곱씹어보면 매우 의미심장하다.

          쉽다는 말이 아니다. 반도 안 왔는데 거의 다 왔다고 호들갑을 떨며 기운을 북돋워 주려는 달콤한 거짓말도 아니다. 힘들다. 아직 한참 남았다. 잘 알지만, 이겨내라. 옆 사람보다 잘 하라는 말도, 옆 사람을 이기라는 말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말라는 의미다. 하기로 한 횟수를, 가기로 한 거리를 채우라는 의미이며 아주 잠깐 아주 작은 일이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켜내라는 의미이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요즘도 저 말, 이겨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다시 한 번의 슛을 날릴 힘이, 아주 약간은, 생긴다. 아니, 아직도 열 한 개 남은 건가……



버티세요.

          턱걸이를 할 때였다. 1년 이상 꾸준히 짐을 다니고 있는 회원 두 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고, 나도 한 7개월쯤 되면서 상급반으로 시간을 옮긴 때였다. 그 기간 동안 그룹PT 시간에 정식으로 턱걸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날은 나까지 딱 세 명만 출석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 위험하다. 짐장님이 강도 높은 자세를 이거저거 시험 삼아 시켜보는 느낌이 들거든. 오래된 회원한테 함 시켜보면서 이게 다른 회원들에게도 할만한 건지 아닌지 테스트 해보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래도 꾸준히 7개월이나 운동을 해왔는데, 턱걸이를 몇 개는 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3초가 되지 않아 멘탈이 무너진 것도 사실이고…… 10개를 해보자고 했는데 내 앞에 먼저 하신 회원분이 5~6개까지는 잘 하다가 그 뒤 몇 개를 아주 힘겹게 하시는 걸 봤다. 자, 이제 내 차례! 어떻게든 5~6개 빡시게 해낸 다음 나머지 우겨넣는거야! 한 개! 하는 순간, 어, 이거 뭔가, 느낌이 쎄한데 싶었다. 그게 딱 3초 정도 걸렸던 거 같다. 하하하하하. 이걸 어떻게 열 개를 하라는 거지. 하하하하하.

          두…… 개! 세……(말줄임표 곱하기 3의 제곱) 개, 정도쯤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썼다. 신생아 때 힘까지 다 썼으니 이제 나머지 일곱 개를 할 힘은 전생에서 끌어와야 하나, 제 뒤에 기다리는 회원분도 있으신데, 제가 시간 너무 잡아먹으면 실례잖아요, 짐장님, 한 5~6개 정도에서 그만! 해주셔야 될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뭐 이런 심정으로, 아마도 온 몸으로 짐장님의 그만,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사람 괴롭히기 전문가 자격증을 보유한 게 분명한 짐장님의 음성이 나직하게 울려펴진다.


          “버티세요.”


          버티라는 말은, 이겨내라는 말보다 더 수동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동시에 더 처절하게 능동적이 되기도 한다. 이겨내라는 건 차라리 사치스럽다. 아직은 이겨낼 정도의 힘은 남았다는 거 아닌가. 한 걸음, 아니 반 걸음이나 반의 반 걸음이라도 디뎌볼 정신이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전진이겠으나, 정신은 이미 주저앉아 땅 속에 스며들어간 사람에게는 껍데기 같은 육체로 전진 따위 아무 의미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당연한 수순은, 정신을 따라 육체도 주저앉는 것이다.

          버티라는 말은 그래서 더 처절하다.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할지라도 주저앉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몸이 풀리더라도 그 전에 정신을 먼저 풀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걸 해보려는 용기, 할 수 없더라도 바로 포기하지는 않는 끈기, 실패라는 걸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받아주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겨우 버틸 수 있다.


          “버텨요. 못 올라와도 버티는 것 만으로도 운동 돼. 시간 채워요.”

          봉 위로 전혀 몸을 올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팔을 펴지도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떠는 내 옆에서 넷, 다섯……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해진 숫자를 센다. 팔의 각도나 자세 따위는 이미 무너졌고 표정 유지 같은 것도 딴 세상 얘기다. 사실 내 표정 따위 어떻게 흘러내리고 있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영원 같은 시간이 어쨌든 지나긴 지나고, 뭔가 아홉 열은 거의 동시에 가깝게 빨리 세주신 짐장님의 배려가 뇌 속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련히 느껴질 때쯤, 털썩, 손가락이 풀리면서 매트위로 몸이 떨어진다.


          오늘도 버텼다. 여전히 내면은 미숙하고 외양은 볼썽사납게 서투른 나지만 그래도 버텼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치고 나가진 못했지만, 두 다리에 발가락 다 써서 겨우 물 속 어디 한 지점에서 비틀거리며 버텼다.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이 폭포 같은 물살이 조금 약해질 때가 온다면, 그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버티고 있다면, 그 땐 한 발, 내디뎌볼 날도 오지 않을까. 다른 몸이 아닌 내 몸으로, 이겨내며, 그마저도 힘든 날엔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말이다. 이렇게 눈물나게 스스로가 대견한 날에는, 상으로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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