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크 Oct 20. 2020

무슨 운동을 할 것인가 (2) – 웨이트

다이어트의 What - 운동편

          남자답다거나 여자답다는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젠더 감수성이 민감해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남자인데 흔히 말하는 남자다움은 별로 갖추지 못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남고를 다닐 때 키든 운동이든 싸움이든 여러 가지 비행이든 소위 ‘남성스러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또래에서 인기를 끄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물건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뭐든 한 종류만 모아놓으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는 걸 인생의 신조로 삼게 되었다.

          그런 내가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남자다워지겠다며 홀연히 결심한 게 있으니, 바로 유도다. 첫 날 테스트로 낙법 자세 한 두 개를 시키는 대로 해보고는, 오 이거 해볼만한데? 이러다가 진짜 멋있는 남자가 돼버리면 어쩌지? 하며 내친김에 몇 만원에 달하는 도복까지 지르고 와버렸다. 그러니까 남자답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젠더 감수성이 민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딱딱하게 굳어진 성 편견이 주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남자다워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내 모습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유도는 한 달 만에 그만둬버렸다. 말이 한 달이지 실제 나간 것은 5번을 넘지 않았다. 낙법을 몇 번 잘못 떨어지면서 어깨도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파트너와 같이 연습하는 동작 때문이었다. 기초체력 훈련을 2~30분 정도 하고 나면 이미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든데, 그 뒤에 업어치기 같은 유도의 기술로 메치고 메침 당해주는 걸 서로 짝을 지어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고등학생, 아마도 중학교 2,3학년쯤으로 보이는 친구와 짝이 되었다. 메침 당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었는데(해준다기 보다는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쪽에 가까웠지만), 내가 메치려고 하니 다리가 풀려서 파트너를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는 파트너가 거의 버튼으로 조종하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내가 자세만 잡아도 스스로 점프해서 넘어가 줄 정도가 되자,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애물단지가 된 도복을 빨지도 않고 구석에 처박아놔서 쉰 냄새가 피어 올랐다. 패배의 증거처럼 보여 다시 싸고 또 꽁꽁 싸매서 이리저리 보관 장소만 옮겨놓았다. 아마 이사를 하면서 어디 의류수거함에 던져버린 것 같다. 그 때 맡은 쉰 냄새처럼 열패감이 스물스물 피어 올랐다. 꽤 오래 갔다.

          좀 오바를 보태면, 마흔이 되어 별 거 아닌 계기로 그룹PT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 쉰 냄새 같은 열패감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근육을 단련시키는 류의 모든 운동이 나와는 인연이 없다는 믿음으로 유산소 운동만 죽도록 했었다. 생활에 필요가 없는 걸 일부러 만드는 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야. 내가 건설현장의 노동자로 일한다면 어떨까? 성실히 일하다 보면 일하는 데 필요한 근육은 자연스레 생길꺼야. 유산소 운동을 잘 해두면 지하철 경의선의 악명 높은 환승구간을 달려 닫히는 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할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뚜벅뚜벅 10층까지 걸어 올라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리에 앉으며 “네? 아니 엘리베이터가 수리중이더라고요. 그래서 걸어올라왔죠, 훗.” 할 수도 있지만, 불뚝불뚝한 근육 있어봐야 어따 쓴담? 글로벌한 강남스타일도 근육보단 사상이 울퉁불퉁하잖아.


          그러다가 와이프가 같이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웨이트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 병 걸리면 그 수발 들어줄 마음 없다는 얘기와 함께. 매우 유쾌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영화 <EXIT>에는, 조정석이 분한 남주 용남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옥상으로 건너가기 위해 케틀벨에 로프를 고정시켜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초반 철봉 씬에서 말도 안되는 동작으로 근육을 자랑하는 조정석은... 나랑 동갑이다. 연예인과 나이 비교해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 싶지만... 윤아같은 동아리 후배를 만나 재난에서 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웨이트를 해야하는 건가 싶었다.


          ‘별 거 아닌’ 계기로 TRX(Total Resistance exercises, 전신 저항 운동)를 하는 짐에 등록하게 되었고, 사십 년 정도 살면서 이십 년 가까이 근육운동에 부정적이었던 것에 비해서는…… 나름 즐겁게 1년 가까이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 “회원님, 3개월 연장?” 코스를 또 한 번 밟았다. TRX는 필라테스나 요가 등 많이들 알고 있는 운동에 비해 아직 검색량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NAVY SEAL)에서 체력단련을 위해 만들어진 운동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배우 손예진이 TRX 강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요상하게 생긴 벨트를 높은 곳에 묶어두고 하는 운동인데, 검색을 해보면 탱크 포신에 벨트를 매달아 놓고 운동하는 군인이 나오는 사진 같은 걸 찾아볼 수 있다.

          웨이트가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꽤 즐겁다고 느꼈다. 그리고 첫 번째 “회원님, 3개월 연장?” 코스를 밟는 순간, 쉰 냄새 같이 날 따라다니던 열패감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열패감의 원인은 사실 웨이트 트레이닝이 아니라, 한 꺼풀 이겨내면 이토록 즐거운 것을 지레 포기해버린 쓸데 없는 내 자존심이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도 웨이트 운동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즐겁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때는 남자다워지고 싶다는 시덥잖은 이유로 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걸 실패했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물론 뭐, 조정석과 윤아가 제대로 된 이유라고 보기도 어렵긴 하다……)



          나는 TRX를 별 합리적인 고민 없이 우연히 선택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운동은 개인별로 맞고 안 맞고 차이가 있다. 이 두 사실을 조합하면, 내가 어떤 운동을 구체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신뢰성도 떨어지고 큰 의미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근육 운동을 싫어하다가 비교적 최근에, 비교적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의 가시적인 변화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얘기는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1. 근육을 잘 알고 있고, 잘 알려주는 곳에 가라.

          사실 내가 웨이트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짐에 간 첫 날, 짐장님(짐의 장이라는 뜻. 회사의 장은 사장, 지점의 장은 점장이니까)께서 근육 이름을 엄청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홀딱 반했던 게 큰 원인이다. 복근은 그냥 하나인 줄 알았는데 복직근에 외복사근 등등, 게다가 그걸 영어로도 막 다 말씀해주시는 거다. 후면 삼각근을 훈련시키려고 레터럴 레이즈를 한다거나, 중둔근을 영어로 줄줄 읊어버리시면 어머머, 너무 멋있다. 게다가 아이패드에 사람 뼈다귀 그림 하나 넣어놓고 근육을 붙였다가 뗐다가 돌렸다가 하면서 설명해주시니 어머머 완전.

          차려 자세로 선 다음 몸을 앞으로 구부려 손을 땅에 짚기를 한 번 해보라. (혹시 이거 하실 수 있나? 난 못한다.) 그 상태로 한 쪽 앞발꿈치를 들어보면 종아리가 당기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들어올린 앞발꿈치를 몸 안쪽으로 돌려보라. 아주 작은 동작이지만 참여하는 근육이 확 달라진다. 웨이트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 존재도 잘 모르던 근육까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양한 근육의 움직임을 잘 알고, 그걸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2. 비용제한이 없다면 개인PT가 이상적이다.

          말 그대로다. 근육을 잘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일대 일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나의 주머니 사정에도 제한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말은 이렇게 해도 개인PT를 받아본 적은 없다. 이 경우 그룹PT가 웨이트에 익숙해지는 데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여러 부위의 근육을 자신의 한계보다 더 밀어부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룹 사이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보면서 교정할 기회도 많고, 나처럼 동작을 자주 까먹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다.


3. 일주일에 두 번이 무난하고, 데피니션(definition)을 원한다면 횟수를 늘려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강 체지방율이 15%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의 체형이 만들어진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약 6개월 정도 웨이트를 하면 가능한 수준이다. 데피니션(definition)은 근육의 선명도를 뜻하는데, 수줍음이 많아 남들 앞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내 근육을 선명하게 보이게 하려면 체지방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져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웨이트로 13%까지 내려봤는데, 그 이상은 잘 되지 않았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사는데 무리 없이 적절히 건강한 몸 이상의 몸을 만드는 것에 있다면 횟수를 늘리는 것이 빠를 것이다. 물론 식단과 같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결론 : 흔히 말하는 주식투자 방법과 비슷하다. 웨이트는 해야 한다. 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반드시 좋은 단 하나의 웨이트, 이런 건 없으니 하나에 몰빵하지 말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개인에게 맞는 걸 찾아보기 위해 아무 운동이나 선택해서 좀 다녀보자. 몇 개월 해보면 스스로 알게 된다.



          그리고 꼭 기억하길 바란다. 웨이트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면 조금씩, 처음보다는 덜 어려워질 것이다. 쉬워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난 웨이트가 여전히 어렵지만 예전보단 덜 어려운 정도다. 그 정도만 되어도 지속해나갈 힘이 생긴다. 혹시 운동을 잘 하다가 흐름이 끊겨 무너져버린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경우엔 꼭 부탁드리고 싶다. 완벽주의를 버려라. 운동을 해 봤으니 그 즐거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불씨를 다시 살리기 바란다. 열패감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믿어라. 당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해버린 나조차 할 수 있었으니까.

이전 07화 무슨 운동을 할 것인가 (1) – 유산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