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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부침개 단점 뒤집개

왜 퇴사하고 싶으세요?

by 장주인

오랜만에 옛날 직장동료 A님을 만났다. 당시에는 같은 팀도 아니고, 엄청 친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계속 아는 사이로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알게 된 후에 일부러 연락을 했다. 밥이나 먹자고.


그런데 더 우연하게 A님이 마침 오늘 시간이 나니 저녁을 먹겠냐 했고, 나도 시간이 되어 연락한 당일 바로 만나게 됐다.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 예전에 재미있었던 우리 회사 얘기를 하며 깔깔깔 시간을 보냈다.


그분이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당시에는 회사 칭찬도 많이 하고 참 만족해 보였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꽤 달랐다.


원치 않는 방향의 업무만 계속해서 하게 되어 지쳤다.

근데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며 팀장님은 계속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 같다.

팀장님이 일을 잘 하긴 한다.

대표도 진짜 똑똑하긴 하다.

중요 내용은 경영진들과 관리자급만 공유하기 때문에 내가 득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인데, 일에 대해져야 할 책임은 커서, 그 괴리가 힘들다.

그래서 아직 갈 데는 없지만 퇴사하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귀에 들리는 그 말들에서는 여전히 조직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마치 권태기 같았다. 권태기를 극복해 보는 시도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오지랖일 수 있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노력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그 회사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을 강조해 봤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요?

-> 같이 일하는 분들은 다 너무 좋고 유능하긴 해요..


엄청 똑똑해서 자기 혼자 결정하는 대표 vs 멍청해서 하루 종일 나한테 물어보는 대표! 골라봐요!

-> 전자가 낫죠ㅠㅠ


그래도 퇴근은 제때 시켜주네요~! 어디는 새벽 두 시에도 메시지 온대요..!

-> 그렇긴 하죠...


등등등...


A님은 “아, 생각해 보니 좋은 점도 있긴 하네... 다시 생각해 봐야 되나...” 하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려는 모습을 살-짝 비추었다. 물론 내 앞이라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나와의 대화 한 번으로 오래 한 고민이 단번에 바뀌긴 어렵겠지만, 그냥. 그냥 그분이 처한 현재의 상황에 한 번이라도 더 긍정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집에 와서는 문득 궁금해져서 그 회사의 재직자 후기를 검색해 봤다. 정말로 안 좋은 회사인가? 괜히 내가 오지랖을 부렸나 걱정하며... 신기하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했던 대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회사에 만족하는 사람이나 싫어서 떠나는 사람이나 하는 얘기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결이었다.


장점 : 똑똑한 경영진, 리스펙.

단점 : 스톡옵션 절대 줄 생각 없어 보임.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고, 이 리뷰들도 보다 보니까... 역시 어떤 점이든 이렇게 보면 장점이고 저렇게 보면 단점이구나 싶었다. 자기가 똑똑해서 혼자 하는데 당연히 주식 안 주겠지~ 대표가 부족한 부분 채우면서 기여하고 싶으면 조금 부족한 경영진과 일해야겠지~ 하면서.


아마 A님은 지금보다 조금 더 주도적인 환경을 원했던 것 같다. 현재 직장에서 A님을 위해 몇 가지 조정을 해주든지 혹은 A님에게 더 잘 맞는 직장을 찾게 되든지 어찌 됐건 A님이 불평 없이(없을 수는 없나?) 더 즐거울 수 있는 환경에 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렇게 오늘도 배웠다. 내가 가진 특징들도 요리조리 뒤집으면서 예쁘게도 봐줬다가, 쇄신도 했다가 잘 요리하며 안고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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