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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무표정인 날

PMDD | 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by 장주인

생리는 진짜 짜증 나는 애다. 특정한 사건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땐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해체해 보고 해결책을 찾아보며 기분을 풀 수라도 있는데, 이건 그냥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 거라 암만 글을 쓴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설탕 덩어리 라떼 두 잔과 밀가루 덩어리인 스콘까지 먹어버려서 머릿속 뱃속이 모두 후회로 가득하다. 평소 같으면 ‘아, 먹었으면 운동하면 되지, 하하.’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별 의욕이 없고 그저 누워있다. 이따 시간 맞춰서 요가나 다녀오면 다행일 것 같다. 사람 기분이 이렇게까지 오르락내리락해도 되는 건지? 인생은 기분 관리라는데 이럴 때 보면 내 인생은 참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걸 그렇게 많이 먹은 하루인데도 기분은 쓰디쓰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시간 맞춰 요가에 갔다. 일단 그 시간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요가는 하겠지. 단 걸 너무 많이 먹어서 좀 뛰고 싶은데. 아니 뛰기 싫은데, 그렇지만 일단 러닝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지각하면 요가원 안에 못 들어가니까, 시간은 칼같이 맞춰 나간다. 오늘은 아쉬탕가 하는 날. 손이 바닥에 안 닿아... 도움 안 되는 몸이지만 뇌를 빼고 선생님을 열심히 따라 한다. 전사 자세... 전사의 기개는 없더라도 왼쪽 무릎을 힘껏 낮춰본다. 입술을 다물고 코로 숨을 쉬라고 한다. 꾹 다문 입에 입꼬리는 애써 올려본다. 그렇게라도 기분이 나아졌음 해서.


어찌어찌 60분의 수업이 끝나서 나왔다. 러닝 차림인데... 뛸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을 살짝 지나치고, 어쩌다 보니 내 러닝 코스로 향하고 있다. 런데이 어플을 킨다. 그래 1km만 뛰자. 3km는 못하겠어. 마침 1km 달리기 챌린지가 있다. 클릭. 야무지게 신나는 팝송까지 재생해 두고 슬슬 달린다. 이미 러닝 트랙에는 뛰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 배경을 동력 삼아 뛰다 보니 런데이 아저씨가 외친다.


벌써 반환점입니다!


엥 벌써? 오케이. 오백 메다만 더 뛰면 된다는 거지. 열심히 달려본다. 나보다 빠른 사람, 나보다 느린 사람, 스트레칭하는 러닝 크루 등을 지나다 보니 벌써 끝이 났다. 아직 한 바퀴가 채 안 된 곳에서 끝이나 시작점까지만 가야지 생각한다. 다시 런데이 어플을 켜고, 자유 달리기 코스를 클릭한다.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봐야지. 역시 막상 나오면 뛰게 된다니까.


착착 착착 열심히 달리다 보니 시작점에 도착했다. 그래,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이만한 것도 장하다. 보니까 총 1.6km를 뛰었다. 0km일 뻔했는데, 무지성으로 몸을 집어넣으니 뛰었다. 잘했다. 나는 온종일 무표정인 날에도 할 일은 하는 어른이야. 그리고 집 가기 전, 돌로 만들어 놓은 벤치에 앉아 이 글을 마무리한다. 오늘 나는 기분이 안 좋은 날에도 루틴을 망치지 않는 어른이었다. 저번달보다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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