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은 언제나 눈사람인 채로(完)

이미지 출처: Unsplash의Juno Jo

by 주이슬




이후 약 두 달 동안 주지우와 열 번 이상의 만남을 가졌다. 주말에는 점심을 같이 먹었고, 평일에는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그런 만남의 공통점을 두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는 매번 즉흥적인 약속이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불러내는 사람은 항상 주지우라는 점이었다.

“근데 언니는 왜 한 번을 먼저 보자고 안 해줘요? 섭섭해.”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켜던 주지우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아….” 하고 애매한 반응만 보였지만 그는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진짜 이유가 뭐예요? 나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목소리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서운함을 감추려 그런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자꾸만 미소가 지어지려고 해서 입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아니, 당연히 나도 너랑 친하다고 생각하지…….”

“근데?”

술이 한 잔 들어가서 그런지 감춰뒀던 솔직한 마음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지우는 턱을 괸 채로 눈썹을 까딱이며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먼저 누굴 찾는 거보다, 그 사람이 날 찾아주는 게 편해.”

“왜요?”

어느새 자세를 고쳐잡고 앉아 팔짱을 낀 주지우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그 사람은 언젠가 날 떠날 거니까…….”

옆 테이블에서 왁자지껄하게 대화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잠깐의 틈을 메꿨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누군가한테 대단한 존재로 남지도 않을 거 같고.”

“왜 그렇게 생각해요?”

“모르겠어. 난 원래 그런 사람이더라고. 그래서 항상 혼자가 될 연습을 하는 거 같아.”

입 밖으로 술술 나가는 말을 인식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는데. 주지우는 내 마지막 말 이후로 별 대꾸 없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심 스스로가 대견했다. 언제 이렇게 성장해서 솔직담백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꺼낼 수 있게 된 건지. 약간은 뿌듯해진 기분으로 주지우의 말을 기다리며 남은 생맥주를 전부 들이켰다. 시원한 온도가 목구멍을 스쳤다. 그때까지도 주지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너무 진지했나.”

“그러니까…….”

주지우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꿔 말하면, 나 역시 언니한테 아무런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런 건가요? 나도 언젠간 언니를 떠날 거니까?”

“응? 아니, 그런 건….”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뭐가 되는 건지. 잠깐 내 말을 기다리던 주지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친구는 사귀고 싶고, 먼저 다가가긴 어렵고. 그렇다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딱히 반갑지도 않고. 그러면서 외롭대.”

“…….”

“언니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처음 봐요.”

내가 이기적이라니? 귀로 흘러 들어온 단어를 뇌가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벙찐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주지우를 쳐다봤다. 의자가 끌려 “드르륵”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근처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 말은 굳이 왜 하는데요? 내가 마음을 완전히 열 때까지 어디 한번 계속 구애해 보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건 아닌데. 지우야, 네가 내 말을 오해한 거 같아.”

정말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 속삭였다.

“어차피 너는 나랑 곧 멀어질 사이니까, 나는 신경 안 쓴다. 네가 나랑 오래 지내고 싶으면 알아서 잘해봐. 뭐 그런 거 아닌가? 기분 나쁘네.”

주지우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 내 상처가 오히려 본인을 상처 입힌 것처럼. 어차피 너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면서. 네 인생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내 말 한마디가 뭐 그렇게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식히기 위해 생맥주 한 잔을 추가했다. 천천히 반 정도 비우고 나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사실 그런 반응을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면 윤지우야. 네가 원하던 반응은 뭐였는데? 반 정도 남은 맥주를 다 비울 무렵에야 답을 알 수 있었다.

너 참 많이 외로웠겠구나. 네가 아무리 날 밀어내도 끝까지 곁에 있어 줄게. 이런 말을 해줄 거로 생각했어.

불쑥 튀어나온 마음에 당황해서 도망치듯 술집 밖을 나갔다.

혹시나 했지만 당연히 주지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전화를 해볼 수도,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었지만 겁부터 났다. 벌써 날 차단했으면? 메시지를 읽고 답이 없으면? 몇 분 정도 머뭇거리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알코올 때문에 뜨거워진 얼굴을 달래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 표면에 산뜻하게 내려앉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눈사람이 보였다. 처음 넣었을 때에 비해서 약간 매끈하고 작아져 있었다. 평범하고, 별 볼 일 없고, 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눈사람.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갔다. 손바닥만 했던 눈사람이 손가락 정도의 크기만큼 줄어들 동안에도 주지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또다시 잠잠해진 휴대전화가 신경 쓰여, 업무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이 정도는 스스로 체크했어야죠. 언제까지 내가 내가 하나하나 짚어줘야 해요?” 결국 참다못한 부장에게 쓴소리를 들은 날, 퇴근 후 주지우와 처음 만나 눈사람을 만들었던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벤치에 잠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겨울의 끝자락, 내리다가도 금방 그치는 눈은 쌓일 틈 없이 따스한 오후 햇살에 녹아 길바닥과 벤치 위를 적셨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축축하고 차가운 감각을 느끼며 아직 냉동실에 고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눈사람을 떠올렸다. 눈사람은 냉동실에 있을 땐 눈사람이 된다. 하지만 눈사람이 녹아서 물이 되고 싶다면? 냉동실 밖으로 나와야 한다. 눈사람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싶다면? 따스한 햇살을 맞이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냉동실에 가만히 존재하면 눈사람은 눈사람인 채로 있다.

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에는 술집에서 주지우가 한 말들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뿐이었다. 일그러진 눈썹과 입, 흔들리던 목소리. 정말로 상처받았겠구나. 새로이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서 눈사람을 꺼내 싱크대로 옮겼다. 물이 뚝뚝 떨어지며 스테인리스에 부딪혔다. 눈사람이 다 녹을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다 녹으면 주지우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고.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작아지는 눈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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