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Denis Blzz
어린 경선은 학교를 마치면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는 낮은 돌담만 넘어가면 고운 모래와 몽돌과 해초가 널린 조그만 백사장이 나타났다. 경선은 거기서 홀로 소꿉놀이를 했다. 젖은 모래를 잘 뭉쳐서 해초에 돌돌 말아 김밥을 만들기도 하고, 더운 날엔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했다.
보통 집에는 아무도 없거나 하루 종일 술을 마시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학교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등교를 할 때 마다 본인을 쳐다보는 또래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다. 경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이 왜 아이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는지 골몰했지만 정답은 알 수 없었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초등학생땐 직접적으로 괴롭히기보단 은근한 따돌림만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로 진학을 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사춘기에 막 들어선 중학생 아이들은 어찌나 잔인하던지 경선을 갖은 방법으로 짓밟아놓았다. 경선을 철저하게 무너뜨릴수록 인정받는 하나의 게임과도 같았다. 어느 날은 교과서를 훔쳐 갔다. 어느 날은 체육복을 찢어놓았다. 어느 날은 가방을 뒤져 생리대를 책상 위에 마구 흩뿌려놓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경선이었지만 미성숙한 몸은 정직하게 달달 떨렸다.
무엇보다도 경선을 괴롭게 한 것은 본인에게서 풍기는 돼지 냄새였다. 경선은 매일 등교하기 전 두 시간이 넘도록 샤워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경선만 모르는 돼지 냄새를 아이들은 집요하게 맡곤 시비를 걸었다. 주로 “살 좀 빼라. 돼지 냄새난다.”라고 하든지 “어디서 돼지 냄새 안 나나?”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열일곱이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도 괴롭힘은 계속 되었다. 결국 경선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경선이 엄마에게 자퇴 신청서를 내밀던 날 저녁. 내심 엄마가 본인의 자퇴를 펄쩍 뛰며 반대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경선의 엄마는 자퇴 신청서에 빠르게 인감을 찍고는 대단한 안주라도 되는 듯이 빤히 쳐다보며 소주만 마실 뿐이었다.
경선이 스무살 되던 해, 경선의 엄마는 꽁꽁 언 새벽길을 비틀거리며 귀가하다가 집 근처에서 쓰러졌다. 해돋이횟집네 아저씨가 출근하며 발견했을 땐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 사인은 저체온증이었다.
“너거 엄마가 참 불쌍한 인간이다. 엉? 젊어서는 애 아빠 먼저 보내뿟제, 하루 종일 식당 가가 설거지하면서 딸내미 키워놨더니 자퇴해뿟제. 너거 엄마가 왜 맨날 술을 마셨는지 아나? 온종일 손가락을 쓰니까는 관절이 아픈 거라. 허구한 날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가꼬야. 어? 술을 안 마시면 아프니까네 자꾸 마시는거다 안카나. 너거 엄마가 그런 말은 안 해줬제?”
옆집 명우대게수산 아주머니는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위로인지 책망인지 뭔지 모를 말을 쏟아냈다. 경선은 엄마의 관절이 아팠던 것도 몰라준, 자식 도리도 못 해놓고선 술만 마시는 엄마를 미워했던 본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본인의 눈빛에서 경선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쳤다. 경선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안동 이모의 도움으로 집을 정리하고 구미 공단에 들어갔다. 그 뒤로 약 15년간 공단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반도체며 디스플레이며 부품을 검수하는 일을 맡았다. 경선은 불량품을 걸러내며 본인 역시 기업이 원활히 잘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부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경선은 서른다섯 생일날 갑작스레 퇴사를 결심했다. 그동안 타지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딱히 없긴 했다. 약간 충동적으로 한 결정이었다. 단순히 집을 정리했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는 게 아니었다.
경선은 4년 전, 그러니까 서른 한 번째 생일날에 맞춰 이틀간 휴가를 낸 적이 있었다. 거의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고향 동네 전체가 집이나 다름없었다. 경선은 비둘기보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곳, 어린 시절 숱하게 흘린 경선의 눈물이 공기중에 녹아들어 짠 내를 풍기는, 울진으로 향했다.
근 10년 만에 방문한 울진은 변해 있었다. 자신의 기억과 많이 달라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경선은 잠깐 우쭐해졌다. 미끈거리는 해초와 조개껍데기를 집어 들고 소꿉놀이를 하던 바닷가를 따라 쭉 뻗어 있는 모노레일을 볼 땐 더욱 그랬다. 카페는커녕 다방 하나 없던 곳이었는데, 어느샌가 예쁜 카페들도 생겼다. 그 안에는 싱그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꼭 닮은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하얀 푸딩같은 걸 먹고 있었는데, 위에 주황빛 젤리가 얹어져 있는게 상큼해 보였다. 경선은 새콤한 맛을 좋아하기에 본인도 한 번 먹어볼까 했지만, 카페에 사람이 너무 많이 앉아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인근에 있는 다른 카페에라도 가서 여유로움을 만끽해보고 싶었지만 그곳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입장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가 고파와 차라리 밥집을 들어가려니 “우리는 2인부터 받아요.”라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와 인사도 못 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모노레일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서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옛날에 살던 집은 명우대게수산 아주머니네 집과 사이좋게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대형 펜션이 생겼다.
결국 경선은 울진에 도착한 뒤 약 한 시간 만에 구미로 돌아가야 했다. 구미에 도착해서는 편의점 총 세 곳을 들려 음식을 한가득 샀다. 공단에서 제공해주는 숙소는 2인 1실이었는데, 함께 살고 있는 언니는 주간조라서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경선은 급하게 껍질을 벗겨서 많은 양의 음식들을 10분 만에 전부 해치웠다. 그것이 경선의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돌아갈 집은 이날 마음속에서도 허물어졌다.
결국 경선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구미 공단에 있던 숙소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원룸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돈은 모아둔 게 꽤 있으니 일 년 동안은 푹 쉬면서 천천히 국내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것과 몸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경선은 두 달 동안 집에 누워만 있었다.
예전에 써놓았던 단편 중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몇 개 있어서, 그 중 한편을 따스한 봄이 다가오기 전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D 4~5편 정도로 나누어서 올라갈 것 같은데 그쯤이면 날이 꽤 풀려 있겠네요. 꽃샘추위로 아직 추우려나요.
어쨌든 허술한 면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제가 썼던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이라서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