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 Nov 08. 2018

생후 6년 - ② 안 먹는 이유를 찾아 헤메던 시기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0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고 충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밥 세 번과 간식 두 번을 챙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 먹는 아이에게 다섯 번을 챙기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먹이는 건 곤욕이었어요.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 제 입으로 들어갈 때마다 마치 제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반이 된 기분도 들었어요. 스스로 우울감을 계속 키웠습니다. 가슴에 돌 하나 삼켜 막힌 것처럼 물 한 모금 삼키기 힘든 날들이 이어지자 ‘나부터 살자!’라며 약간 이기적으로 돌아섰어요.      


밥 두 번에 간식을 가장한 밥을 차려 세 번 만 먹이려 해도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을 찾고 제대로 살려는 방법이었어요. 식사를 위한 에너지 소모를 좀 줄인다면 아이를 상대적으로 편하게 볼 힘이 생길 거라 판단했거든요. 하루 총 다섯 번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 세 번만 먹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제 아이의 식사를 살피고 기록하면서 얼마를 먹어야 하루를 잘 견딜 수 있는지, 어떤 음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관찰일기로 남긴 덕분이었습니다.    



제 아이는 모든 것에 예민했어요. 밥의 묽기, 반찬의 크기, 반찬의 무른 정도, 음식 냄새, 주변 환경과 그로 인해 느끼는 심리적인 요소까지 두루 살펴야만 식사가 가능한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타인은 육아서를 읽는다지만 저는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를 알기 위해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책에 고개를 파묻고 탐독하기 바빴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밥을 안 먹을까? 밥을 안 먹는 성향이나 어떤 기질적 특성이라도 있는 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정보 수집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적 형태로 존재하는 성질이 바로 ‘성향’이에요. 경향성, 가능성, 잠재성, 추세 등을 통칭한다는데요. 아이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사태를 주면 해당 성향이 밖으로 표출됩니다. 그렇다면 안 먹는 성향도, 어떤 요인에 자극을 받아서 내면에 있다가 밖으로 튀어나올 거란 물음에 닿았습니다.     



네오포비아라고 들어 보셨나요? 네오포비아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래요. 유아에게서 가장 먼저 보이는 네오포비아는 ‘낯가림’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아이나 다 낯가림이 있어요. 낯선 사람이나 낯선 상황, 낯선 물건 등에 대한 두려움, 공포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애착이 있는 상대에게 울음이나 거부 반응을 보이며 도움을 요청하고요. 이것은 생후 6, 7개월부터 서서히 나타나서 만 1, 2세에 심해진대요. 아이의 전체 성장에 음식에 대해 낯섦도 있잖아요. 네오포비아에 이어 생소한 단어, ‘푸드 네오포비아’를 접했습니다.     


‘푸드 네오포비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존 본능이 지배적인 수유기는 제외하고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나타난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만 2세에서 5세 때가 최고조라는 것에서 머리가 하얘졌어요. 만 5세까지라면 유아기 전반, 한국 나이로 7세까지라는 계산이 동시에 들었거든요. 청소년기가 되어야 서서히 줄어든다는데 당장 유치원 졸업 때까지 이 짓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렇다고 잘 먹을 때가 될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라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푸드 네오포비아가 줄어들게 하려면 음식에 대한 친숙성을 키워야 한답니다. 참으로 쉽게 읽히는, 친숙성을 키우라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얄미웠어요. 아이가 입으로 밥을 삭히는 신공을 목격했고, 입에 들어갔던 모양 그대로 뱉어내는 액션에 감탄했으며, 밥이나 죽으로 그림을 그리길래 화가를 꿈꾸나 착각도 해봤고, 과학자가 될 재목인가 싶을 만큼 밥이며 수저를 낙하시켰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아무도 건들지 않았는데 밥 보며 울고, 밥과 원수가 진 듯 등 돌려 외면하던 모든 시간이 마구잡이로 떠올랐습니다.    

  

‘누가 안 해봤어? 어? 어떻게든 먹여보겠다고 기를 썼는데 뭐!’     


끄적이던 볼펜에 화풀이를 하려다 말고 심호흡을 했어요. 곁에서 애쓰는 엄마 좀 눈치껏 살피고 조금이라도 먹어보면 좋으련만, 전혀 새롭고 낯선 음식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입을 닫아버리던 아이와의 지난 시간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안 먹는 아이라고 해서 결국 문제가 될 만한 특별한 기질적 특성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다만, 제 아이의 ‘푸드 네오포비아’는 잘 먹는 아이들에 비해 다소 강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푸드 네오포비아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상태를 의미하겠지만 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이해를 해보려 했어요.     


아이는 우리 어른보다 맛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해요. 혀 미뢰의 민감 정도가 우리와 약 세배나 차이가 난다고 하니까 식감이나 맛에 더욱더 크게 반응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거나 다져 아무리 숨겨 먹이려 해도 귀신같이 알고 거부하거나 골라내는 거예요.     


뭐든 골고루 먹이려고만 했어요. 같은 재료지만 조리법을 다양하게 해야 받아들이는 아이도 물리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요. 그런데 그런 애씀을 여러 번 무시당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일단은,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단 한 수저를 먹더라도 행복하게 먹게 하려면 여러 번, 같은 음식을 보이면서 눈으로 익숙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요. 미뢰의 민감도가 얼마가 되든, 눈으로 계속 보고 익숙해져야 음식에 대한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안 먹으려는 아이는 아니기에 좋아하는 재료 하나 콕 집어서 그 재료를 중심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아주 천천히 넓혀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성향이란 것은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첫째 아이의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해 공을 들인 덕분에 양이 적은 편이긴 해도 고정된 먹는 양이 생겼고, 배고픔도 알게 되었어요. ‘먹어야 놀 수 있고,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밥을 먹이기 위한 힘겨운 44개월을 달려 식사 거부 1차전을 마무리했다지만 ‘이제 되었다.’ 할 수 없었어요. 긴 시간 동안 ‘잘 안 먹는다.’는 인이 박여서인지 아이가 아무리 잘 먹어도 부족해 보였으니까요.      


그 시절, 밥때가 무서웠던 이유는 먹이는 의무감이 컸기 때문에 아이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밥 먹는 시간만 우선했던 원인도 있어요. 그렇기에 삼시 세끼가 마치 족쇄처럼 여겨졌던 겁니다. 밥을 세 번 다 안 먹이고 게다가 간식 두 번까지 챙기지 않으면 아이 성장에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인식했던 초보 육아 시절이었으니까요.  

    

하루가 마무리되어 육아 퇴근을 하면 한숨을 돌릴 수 있지만,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여전히 밥에 대해 무거움을 안고 잠을 청하면서 머리에는 내내 ‘내일 아침엔 뭐 먹이지?’였습니다. ‘될 대로 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 건 아마, 엄마의 책임감 때문이었나 봐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 켜고 흥얼거리며 또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는 안 닦고, 밥을 하지요. 밥을 하지요. 아이 먹일 밥을 먼저 하지요.” 남편의 아침은 제 어깨를 토닥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고생하겠네.” 그 한마디 응원에 웃으며 주먹 불끈 쥐고 힘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밥을 안 먹는 고민, 먹을 게 넘쳐나는 우리 아이들 세대만의 일일까요? 우리 세대에도 부모님 세대에도 안 먹는 아이들은 늘 있었어요. 아마 현생 인류가 출현한 23만 년 역사만큼이나 안 먹는 아이들의 역사도 함께할 텐데요. 부모님들께 여쭤보셨나요? ‘나도 이렇게 안 먹었어? 우리 집에 누가 도대체 안 먹는 피를 나한테 나눈 거야!’라고요. (유전학적인 의미에서는 딱히 안 먹는 피나 유전자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제 양가에는 안 먹는 사람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된 점이 병치레가 심해서 건강보험증이 너덜너덜해지고 새까매질 만큼 병원 출입이 잦았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건강보험증을 들고 다녀야 했지요. 아기 수첩처럼) 병을 달고 살았으니 어떻게든 먹이겠다고 노력을 하셨을 거예요. 어떤 방법이었을까요? 가장 흔하게 쓰신 방법이 밥그릇 들고 따라다닌 거였어요. 그래야 한 수저라도 먹일 수 있으니까요.     


제 시어머님께서는 남편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고생하셨어요. 신발 신고 후다닥 등교하려는 아들을 붙잡고 한 수저라도 입에 넣으려 하셨데요. 그래야 아들 입에 들어간 밥숟가락 횟수만큼이라도 마음이 놓이셨으니까요. 더 어릴 땐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그냥 둘 수밖에 없으셨데요.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을 여전히 후회하고 계세요. 친정 오빠를 먹이기 위해서는 외할머니께서 참 고생이 많으셨데요. 앨범에 있던 사진이 떠오르네요.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세 살쯤 친정 오빠의 웃는 모습이 제 아이의 세 살 모습과 겹칩니다.     

 



숟가락 잡던 순간을 포착!

28개월 된 둘째 아이가 단단한 맨밥을 잘 뜨질 못해서 계속 바닥에 떨어뜨려요. 이내 울상입니다. 자꾸만 떨어지는 밥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잘 뜨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진밥이면 나을 것 같아서 주었지만 똑같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어떤 형태의 밥이든 제가 아이의 빈 숟가락에 밥을 떠서 혼자 잡고 먹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소감을 남깁니다.     


“엄마, 내가 혼자 예쁘게 떠서 먹었어! 안 흘렸어!”     


엄마가 억지로 먹여 들어차는 영양보다는 아이 스스로 원해서 입에 넣는 영양소가 더 잘 흡수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밥을 뜨고 입에 넣고 씹어서 삼키는 너무나 평범한 행위에서, 아이는 자립심을 키우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생길 수 있도록 엄마(식사를 함께하는 사람)가 절대적으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부모님 세대에는 그저 우리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 생각하시고 밥을 차려주셨어요. 그런데 우리 때부터 시작된 외모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잖아요. 그렇기에 아이 키가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해져서 밥을 잘 먹이시려 애쓰시는 거고요. 아이들은 엄마 마음과 달리 어느 순간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다이어트한다고 더 안 먹고 가려먹을 거예요. 평생 다이어트 과제를 안고 사는 우리도 너무나 쉽게 굶는 것을 선택하는걸요.      


때 되면 먹는다고요?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유아기는 진정한 의미의 주도적 식사가 평생 유지 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안 먹는 것이 습관화되기 전에, 엄마 품에서 푸드 네오포비아가 강한 유아기를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 01화 생후 6년 - ① 아이 주도 식사가 되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