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년 - ① 아이 주도 식사가 되기까지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09
첫째 아이는 정말이지 이렇게도 안 먹을 수 있나 싶을 만큼 입이 짧았어요. 아이의 성장이 더디고 아기만의 통통함이 없다 보니 ‘네 젖이 참 젓이 아닌가 봐. 그래서 애가 잘 안 크는 걸 수도 있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어요. 수유가 잘 안 되는 것이, 아이가 잘 먹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란 생각으로 미련하다 싶을 만큼 자책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외면했거나 다르게 해석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첫째 아이의 입 짧음을 감지한 건 태어나서부터였어요. 첫 아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건 모유 수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조리원에서 다른 산모들보다 더 마사지를 받아야 할 만큼 젖이 자주 뭉쳤어요. 그래도 끙끙거리며 모유 수유를 고집했습니다. 직접 수유를 할 땐 모르고 있다가 열심히 유축한 모유를 신생아실에서 먹일 때 잘 안 먹어서 거의 버려진다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캥거루 케어가 이슈였어요. ‘출산 후 자연스럽게 모유가 형성된다는 것, 수시로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면 모유 양이 많아진다는 것’이 캥거루 캐어 수유의 포인트로 기억해요. 이 말을 믿고 정말 열심히 물렸어요. 모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 품에 안긴 조그마한 생명이 살겠다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젖을 빠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어요. 조금만 먹다 잠이 들고 또 깨어나서 조금만 먹다 잠이 들었어요. 기특하다 여기면서 아기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유 간격이 너무 짧아서 제가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쪽잠을 자니까 미칠 것 같더라고요. 사람 몰골이 흉하게 변해가는 게 느껴졌어요. 거기에 더해 모유가 만들어지는 속도에 비해 수유가 원활히 되지 않으니까 일정 주기로 젖몸살을 앓았어요. 젖몸살이 올 거 같다 싶으면 무서웠습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픈 가슴을 아이에게 물리면서 ‘제발 열심히 좀 먹어 이 아픔을 멎게 해줘.’라며 간절히 부탁까지 했어요. 엉엉 울면서 수유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는 아파도 참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첫 아이를 키우는 조심스러움에 약을 먹으면 혹여나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어찌나 겁이 나던지, 차라리 내가 참고 말지 했거든요. 이래저래 어설프게 육아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잘 해내고 싶어 애를 썼던 거에요.
수유가 잘 안 되는데 이유식은 잘 되었을까요? 네. 역시나 입 짧음이 타인에게까지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생후 6개월입니다. 만든 이유식이 외면당할 때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더 비쩍 말라서 잘못될 것 같았어요. 가끔가다가 아기 엄마 건강이 먼저라며 챙겨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그 마음이 감사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어요.
“아기가 엄마 고생시키네. 아가, 잘 먹어야 해. 그래야 안 아프고 잘 자라지. 어쨌든 아기 엄마가 더 잘 먹어야 해. 뭐든 있는 대로 먹으면서 몸 챙겨요.”
반면에 대부분은 조그마한 아기가 귀엽다며 바라보시다가 훈수 두시는 분들이었어요. 통통한 아이들이 너무나 부럽다 보니 외부 시선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를 탓하는 말에는 늘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애가 잘 안 먹나 보네. 뭐 좀 먹여봐요.”
“엄마가 애를 좀 알고 신경 써야지.”
“모유를 끓어야지 여태 먹이고 있어요?”
타인이 던지는 말은 아이를 두고 한 것이었는데 아이의 상태와 제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그때는 귀하게 얻은 자식인 데다가 애틋함이 커서 부모가 다 감싸 안아야 한다는 오해로 육아를 시작한 서툰 초보 엄마였으니까요.
생후 9개월 때 이유식 거부가 최고조였어요. 50분 동안 티스푼으로 5숟가락 먹어주면 고마움에 물개박수를 칠 만큼 아이의 식사 시간은 서로가 고역이었어요. 그래도 첫 돌까지는 모유가 주식이니까 다행이었습니다. 아이가 단 한 수저를 먹더라도 밥(이유식)이 먼저라는 것이 체화되도록 식사 후에 수유를 실천했어요. 힘들었습니다. 때 되면 잘 먹게 되는 줄 알았어요. 아이는 씹는 것은 고사하고 삼키는 것을 늘 힘겨워했습니다. 우리도 억지로 무언가를 삼키려 하면 헛구역질을 하잖아요. 아이에게 밥은 그랬어요. 예의상 밥을 입에는 넣는데 씹지 않고 삭히기 시작합니다. 본인도 삼키는 고통을 회피하고 싶으니까 삼키지 않는 방법을 생각한 거예요. 밥과 마주한 아이가 점점 미워졌습니다. 올바른 엄마의 역할을 아무리 떠올려보고 마음을 잡으려 해도 저 다문 입을 억지로라도 벌리고 밥을 쑤셔 넣고 싶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깊어졌어요.
잠시 잠깐 혼자만의 그런 나쁜 생각을 자책하면서도 속마음이니까 아이에게 들키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어디에서든 그 못난 마음이 삐져나와요. 어찌 아는 건지, 아이는 밥 한 톨도 입에 넣지 않으려고 입을 더 다물었어요. 억지로 앉힌 부스터에서는 망부석처럼 앉아 있더라고요. 집중 시간이 짧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데 15개월인 제 아이는 40분도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고집을 보였어요. 결국 백기를 든 건 저입니다. 달래가며 먹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때부터 더 아이를 관찰하며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먹게 하려고 색감에 신경 쓰면서 보기 좋게 차렸어요. 고급 레시피와 색다른 재료는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남편과 제가 먹는 흔한 식재료를 이용해서 눈에라도 익숙해지라고 밥상을 차리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어요. 식판 가득, 반찬 3가지에 국과 밥은 진수성찬이었지요. 아이 밥 차림에 지치지 않으려고 식판도 칸이 적은 것을 선택하고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 그릇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펼쳐진 음식보다 차리는 입장에서는 한 그릇 음식이 훨씬 편해요. 준비하기도 먹이기도요.) 아이 음식이라고 간을 약하게 하니까 적당히 식은 후에도 맛이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조리하면서 틈틈이 식혀 맛을 보았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식욕 없는 아이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확인당하면서도 차리는 정성만큼은 소홀히 할 수 없었어요.
콩을 담은 시루에 물을 주면 그대로 흘러내립니다. 그래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싹이 트고 자라나는 콩나물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처럼 아이들에게 들이는 정성은 몸과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어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렸어요. 눈으로라도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려고요. 결과는 괜찮았습니다. 단순히 차리는 노력만으로도 성과는 있었어요. 아이는 세 번을 차려도 두 끼만, 어떨 땐 한 끼만 먹을 때가 있었어요. 4살부터는 소식을 할지라도 세 끼를 챙겨 먹기 시작했고요.
다른 식사예절은 다 내려놓고 어떻게든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집중을 했거든요. 생후 약 44개월은 아이의 식사 거부 1차전이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이에요. 저것만 먹고도 연명할 수 있나? 라는 걱정을 매일 해서 서로 노력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먹을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먹성이 조금 생겼다는 것에 한숨을 돌렸습니다.
먹성 없고 식탐 없는 아이라면 수유도 힘들진데, 엄마 주도 식사뿐 아니라 아이 주도 식사의 시작은 더욱 곤욕스럽습니다. 육아 전반에 걸쳐 엄마가 계획을 세워 무엇을 시도해도 아이가 잘 안 따라 줍니다. 운동, 학습, 독서 등은 잠시 미루거나 안 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밥 먹이는 걸 따라주지 않는다고 안 차리실 건가요? 안 먹는다고 그냥 굶기실 거예요? 에너지를 소모하면 배가 고플 거란 생각으로 보통의 식사를 하는 아이들이랑 같이 뛰어놀게 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안 먹는 아이는 그렇게 놀아도 안 먹어요. 지치고 기운이 없어서 밥을 먹기보다는 쓰러져 자는 것을 선택할 겁니다. 결국 아이의 건강만 해치는 선택이에요.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안 되더라 하시는 분들 많아요. 저도 역시 울기도 많이 울고 남편한테 하소연하면서도, 아이 밥은 꼬박꼬박 차려 보여주었어요. 먹고 안 먹고는 아이의 선택이니까 보기라고 하라고 말이에요. 하다가 안하는 건 맞지만 해도 안되는 건 없어요. 노력도 좋은 노력과 안 좋은 노력이 있다고 해요. 안 먹는 아기, 무조건 밥만 먹이려는 온갖 방법들만 적용하셨던 건 아닌가요? 엄마의 마음 상태가 가장 우선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화난 마음으로 의미 없이 밥만 먹이려 노력하는 건 나쁜 노력이더라고요. 저는 마음이 들끓어 오를때면 아이가 존재하는 이유를 떠올리며 진정 시키는 훈련을 더했습니다.
"아이는, 나를 밥으로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육아의 반은 사랑이고 반은 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밥만 잘 먹어주면, 밥만 잘 먹이면 육아의 절반은 성공이라는 건데요. 그래서 저는 처음 입문한 ‘엄마의 삶’에서 못해도 50점은 받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게 된 거예요. 그 덕분에 아이의 먹으려는 의지를 키우고 먹는 재미, 삼키는 재미,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이 많음을 알려주었던 6세까지의 식사거부 2차전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짧았어요. 식사량을 늘리는 것과 음식에 대한 혐오감을 없애는 과제, 식사 시간을 줄여야 하는 등 몇 가지를 서서히 진행해 나갔어요. 가족들이 볼 땐 1차전 때나 매 마찬가지로 매우 지치고 어려운 과정이었겠지요. 그러나 아이를 위한 밥 먹이는 고민 덕분에 육아를 위한 저의 정신적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