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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Dec 29. 2018

편식하는 아이, 불안한 엄마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3


‘BLW 해봤는데 장난만 치고 먹지를 않는다.’
‘식탐이 없는 아이는 자기 주도도 안 된다.’
‘치우는 게 감당이 안 돼서 포기했다.’
‘식탐이 없어 굶어 죽을까 봐 포기했다.’
     
아이에게 맡긴 식사를 조금 해보다가 위와 같은 이유로 안 된다며 BLW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BLW를 시작하고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며 아이의 성장 시기별 먹는 양과 올바른 식사 태도에 갇힌 고정된 관념으로 아이를 봐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아이와 밥을 보는 마음을 두고 느슨해지리라 생각했음에도 비워지는 그릇을 보는 희열이나 식사 후 청소가 필요 없을 정도의 깨끗함이 좋아 먹여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생후 12개월이 될 때까지는 음식을 입으로 넣는 비중이 적다하더라도 믿고 차려주었어요. 어차피 돌까지는 그 이후의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한 연습 기간이니까요. 그맘때 아이 성장에 있어 주식은 엄연히 모유나 분유잖아요.
     
아이가 식탐 없고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판단되면 엄마는 어르고 달래는 수법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 비위를 맞춰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려다 백기 들고 뚜껑 열리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참으로 까다로운 난제 앞에 이성이 마비되는 현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다 큰 어른이 거르지 않은 감정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해집니다. 그래도 답답한 속을 어느 누구한테도 함부로 보이지 못하죠. 하루 세 번 맞닥뜨리는 식사는 달갑지 않고 아이나 엄마나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감정의 편차는 조절이 되지 않고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면서 가슴에 돌 하나 얹어 놓은 듯 무겁게 하는데요.
     
우리가 밥 먹이는 어려움을 가진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이, 아이는 밥 먹는 어려움을 가지기 때문에 스스로 먹으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일 수 있어요. ‘더 먹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먹을까? 어휴, 이래봤자 먹지 않겠지. 흘리지 않고 말끔히 먹었으면. 이제 혼자 먹을 때도 되지 않았냐?’ 등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실 텐데요. 아이가 제 손으로 밥을 떠서 잘 먹게 하기 위해서는, 밥 때문에 우리가 가지게 된 내면의 불안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는 본래 뭐든 도전하고자 하는 모험심을 가지고 있어요. 돌 무렵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손을 잘 잡고 가다가도 손을 빼버리고 혼자 가보겠노라 발을 내딛습니다.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혼자 걷는 것처럼, 혼자 음식을 탐색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어요.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이 되면 어른들이 먹는 밥을 유심히 쳐다본다거나 입맛을 다시게 되는데요. 새로운 음식에 대한 탐색의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는 이렇듯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늘 지니고 있는 존재예요. 그런데 우리의 계속된 불안 심리가 아이의 주도적 식사를 방해합니다. 
     
아이 혼자 먹다가 음식을 흘려 더러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떠먹여 주시나요? 골고루 먹지 않아 성장이 지연될까 봐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떠먹이시나요? 엉덩이 붙이고 먹으라며 강압적으로 하시나요? 먹는 태도가 어떤지 일일이 지적하시면서 잔소리하시나요? 식사 시간은 조용해야 한다며 아무 말 없이 아이 먹는 모습만 지켜보며 애태우고 계신 건 아닌가요? 
     
회유와 협박으로 밥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낄지 생각해보셔야 해요. 밥을 차리는 것도 엄마가, 먹는 양을 결정하는 것도 엄마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엄마가 다 해결해줍니다.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입만 벌리면 밥이 절로 들어오는데 손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에 익숙해집니다. 엄마가 먹여주고 닦아주고 치워주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학습이 되어 의존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식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 아이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욕구 표출이나 스스로 음식을 선택해서 먹어볼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식사 시간마다 자신의 무능감을 매번 확인하게 돼요. 그러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엉덩이 들어 탈출을 시도하고 입을 더 다물고 엄마가 먹어 보라는 것은 더 안 먹고 심지어 식사를 거부하는 패턴이 형성되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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