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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하는 아이, 불안한 엄마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13

by 지예


‘BLW 해봤는데 장난만 치고 먹지를 않는다.’
‘식탐이 없는 아이는 자기 주도도 안 된다.’
‘치우는 게 감당이 안 돼서 포기했다.’
‘식탐이 없어 굶어 죽을까 봐 포기했다.’

아이에게 맡긴 식사를 조금 해보다가 위와 같은 이유로 안 된다며 BLW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BLW를 시작하고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며 아이의 성장 시기별 먹는 양과 올바른 식사 태도에 갇힌 고정된 관념으로 아이를 봐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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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이와 밥을 보는 마음을 두고 느슨해지리라 생각했음에도 비워지는 그릇을 보는 희열이나 식사 후 청소가 필요 없을 정도의 깨끗함이 좋아 먹여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생후 12개월이 될 때까지는 음식을 입으로 넣는 비중이 적다하더라도 믿고 차려주었어요. 어차피 돌까지는 그 이후의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한 연습 기간이니까요. 그맘때 아이 성장에 있어 주식은 엄연히 모유나 분유잖아요.

아이가 식탐 없고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판단되면 엄마는 어르고 달래는 수법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 비위를 맞춰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려다 백기 들고 뚜껑 열리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참으로 까다로운 난제 앞에 이성이 마비되는 현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다 큰 어른이 거르지 않은 감정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해집니다. 그래도 답답한 속을 어느 누구한테도 함부로 보이지 못하죠. 하루 세 번 맞닥뜨리는 식사는 달갑지 않고 아이나 엄마나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감정의 편차는 조절이 되지 않고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면서 가슴에 돌 하나 얹어 놓은 듯 무겁게 하는데요.

우리가 밥 먹이는 어려움을 가진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이, 아이는 밥 먹는 어려움을 가지기 때문에 스스로 먹으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일 수 있어요. ‘더 먹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먹을까? 어휴, 이래봤자 먹지 않겠지. 흘리지 않고 말끔히 먹었으면. 이제 혼자 먹을 때도 되지 않았냐?’ 등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실 텐데요. 아이가 제 손으로 밥을 떠서 잘 먹게 하기 위해서는, 밥 때문에 우리가 가지게 된 내면의 불안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는 본래 뭐든 도전하고자 하는 모험심을 가지고 있어요. 돌 무렵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손을 잘 잡고 가다가도 손을 빼버리고 혼자 가보겠노라 발을 내딛습니다.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혼자 걷는 것처럼, 혼자 음식을 탐색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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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시작할 즈음이 되면 어른들이 먹는 밥을 유심히 쳐다본다거나 입맛을 다시게 되는데요. 새로운 음식에 대한 탐색의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는 이렇듯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늘 지니고 있는 존재예요. 그런데 우리의 계속된 불안 심리가 아이의 주도적 식사를 방해합니다.

아이 혼자 먹다가 음식을 흘려 더러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떠먹여 주시나요? 골고루 먹지 않아 성장이 지연될까 봐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떠먹이시나요? 엉덩이 붙이고 먹으라며 강압적으로 하시나요? 먹는 태도가 어떤지 일일이 지적하시면서 잔소리하시나요? 식사 시간은 조용해야 한다며 아무 말 없이 아이 먹는 모습만 지켜보며 애태우고 계신 건 아닌가요?

회유와 협박으로 밥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낄지 생각해보셔야 해요. 밥을 차리는 것도 엄마가, 먹는 양을 결정하는 것도 엄마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엄마가 다 해결해줍니다.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입만 벌리면 밥이 절로 들어오는데 손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에 익숙해집니다. 엄마가 먹여주고 닦아주고 치워주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학습이 되어 의존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식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 아이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욕구 표출이나 스스로 음식을 선택해서 먹어볼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식사 시간마다 자신의 무능감을 매번 확인하게 돼요. 그러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엉덩이 들어 탈출을 시도하고 입을 더 다물고 엄마가 먹어 보라는 것은 더 안 먹고 심지어 식사를 거부하는 패턴이 형성되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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