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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Nov 19. 2019

숟가락 대신 왜 손으로 먹으려 하나요?

아이주도 식사 솔루션 #27


두 돌이 되어감에도 숟가락질이 어설퍼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과 종종 마주합니다. 여러분들은 식사하실 때 어떤 것을 이용하시나요? 숟가락, 젓가락, 포크 같은 식사 도구를 갖춘 식사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겁니다. 우리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류이긴 하나 처음부터 숟가락을 쓰지는 않았어요. 신석기 시대가 되어서 숟가락 사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 식사 도구가 없어도 편하게 사용했던 그것은 바로 ‘손’입니다. 현재 어떤 나라에서는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입니다. 그러기에 꼭 숟가락이 아니라 어른의 손가락만으로 아이의 식사를 챙기기도 하는데요.

  

우리는 어떤가요. 보편적으로 이유식이나 유아식을 먹을 때 필요한 도구로 숟가락을 빼놓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유식 시작에 한껏 들떠서 엄마 취향대로 숟가락 선택을 하죠. 그러다 아이가 숟가락이나 이유식을 거부한다 싶으면 이것저것 바꿉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지, 아이 입에 편안한 수저는 어떤 것일지 고민을 거듭하지요. 그런데 식사를 꼭 숟가락으로 해야 한다는 관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아이는 눈에 보이는 티 하나라도 무조건 손으로 잡고 봅니다. 그러고는 입으로 먼저 확인을 하고요. 그런데 유독 식사 때는 아이가 손으로 만지려는 행동을 제약합니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다가 12개월 이후 숟가락을 쥐도록 자극해줘야 한다고 해요. 책에 적힌 대로 시기별 해야 할 ‘엄마의 과제’를 따라 해 봅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책에 적힌 개월 수보다 더 지난 시기임에도 숟가락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발달상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몹시 걱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첫째 하나만 키우던 초반엔 어리바리해서 책대로 해야만 되는 줄 알았어요. 아이가 숟가락을 잡기만 하고 비어 있는 한 손이 먼저 음식으로 향한다면 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러면 밥상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던 겁니다. 밥시간 말고는 여전히 손으로 무엇이든 하는 본능의 삶을 사는 주체인데 그걸 애써 무시하려 했거나 몰라서 아이만 힘들게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둘째를 키우며 BLW를 하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맨손으로 잘 먹고 탈이 없는 아이 식사, 
숟가락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언제 시작된 것이지?’


1960년대, ‘아기는 씹는 연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으로 이유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아이 식이 상태를 바라보았습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에서 가능하면 생후 6개월 경부터 점진적으로 이유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 후에도 대부분의 이유식 형태는 퓌레나 죽과 같은 유동식이었죠. 이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유식 시기와 종류가 정립되지 않던 20세기에도 온전한 수유 시기 후, 유동식을 먹이려면 아이의 식사도 어른들처럼 숟가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인식이 이어져 일정 시기는 엄마가 아이에게 떠먹여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졌겠죠. 그러다 엄마의 도움을 줄여나가며 아이가 온전히 주도적으로 숟가락을 이용해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이 결정되었을 겁니다. 이러한 진행은 습성일 뿐이지 이론적으로 정립된 사실은 아닙니다. 숟가락이 식사에 필수 도구라거나 수저 사용이 식사에 미치는 긍정적 요인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연구는 없다고 합니다.


ⓒ지예  : 손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차렸던 식판


거의 손으로 주무르고 놀면서 입에 음식을 넣던 전형적인 BLW(아이 주도 이유식 : baby – led weaning)에 익숙한 제 둘째 아이에게 숟가락은 하나의 액세서리에 불과했었습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 정도였어요. 앞에서 같이 밥을 먹는 식구들 모습을 자극받아 손에 잡기는 했지만, 음식을 담아 입에 가져가는 건 제가 거들어야 가능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알 때가 있어요. 제 둘째 아이의 11개월 즈음부터 보이던 행동을 보고서야 왜 숟가락을 입에 넣기 싫어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감기가 오래라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진밥을 해서 먹였어요. 평소에는 손이나 포크로 찍어 먹고 잡고 먹는 한 입 음식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숟가락 사용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진밥이라 숟가락으로 떠먹이려다 말았습니다. 밥을 입에 넣는 것은 아이 몫이었기에 쓰지 않는 이유식 숟가락 세 개를 꺼냈어요. 그것으로 진밥을 떠서 그릇에 놓아주었습니다. 어설퍼도 두 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입에 넣으려 애를 쓰더라고요. 그런데 입에 숟가락을 넣는 모양이 이상합니다. 


ⓒ지예 : 숟가락에서 계속 떨어뜨렸던 문제의 단호박 마늘종 진밥


숟가락을 엎어서 입에 넣더라고요. 아이의 느린 행동에 밥은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빈 숟가락만 입에 들어갑니다. 손 등에 떨어진 건 핥아먹어보지만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합니다. [밥이 있는 숟가락을 들기 – 밥이 아래로 향하게 하기 – 밥이 미끄러짐 – 빈 숟가락만 입에 들어감]을 반복되는 패턴에 결국엔 짜증을 내더라고요. 우리 둘째가 왜 그렇게 한 걸까요?


아이는 숟가락이 있다 해도 그동안 밥을 손으로 먹었던 것처럼 음식이 가장 먼저 혀에 닿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손으로 음식을 먹다 보면 자기 손가락,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사이를 아주 골고루 빨게 됩니다. 그런데 숟가락은 기본적인 말캉함이나 부드러움이 없죠. 단단합니다. 그래서 미각이 예민했던 당시 7세의 첫째 아이가 생후 24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숟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저의 좁은 아량 때문에 첫째 아이가 참으로 힘겹게 숟가락질을 했던 사실들이 스쳤습니다.



세 돌을 앞두었던 시기, 둘째 아이가 밥을 먹다 떨어뜨리고 흘립니다. 그때마다 떨어진 것 주워 먹으며 한마디 해요. “먹다가 흘려도 괜찮아떨어져도 괜찮아밥 열심히 먹다가 그렇게 된 거야라고요. 4살 아이도 숟가락질 서툴러요. 모든 것은 연습하기 나름입니다. 익숙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줘야 숟가락질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엄마가 먹여주던 환경에 놓여있었던 아이는 두 돌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숟가락질이 서툰 건 당연합니다. 혼자 하는 수저질에 음식을 튕길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지저분해지기도 하죠. 그런 주변과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식사를 금방 중단하고 숟가락을 던지거나 일부러 떨어뜨릴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식사를 하는 아이의 태도에서 끈기나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과대해석하지 말아주세요. 


 옛 어른들은 손으로 음식을 떠서 입에 넣어주시기도 했죠. 위생 문제를 걱정하며 숟가락이 아니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분들도 계시긴 했지만 이건 옛 어른들의 지혜였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 입에서 느껴질 촉감을 무의식적으로 염두에 둔 행위였다고 받아들였어요.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손으로 뜯어서 먹이는 음식들이 더러 있습니다. 빵이 대표적인데요. 이거 하나 먹겠다고 위생을 따져 집게, 포크, 칼 등을 모두 꺼내지 않잖아요.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려 하고 먹으려고 손을 내미는 행동의 숨은 재미는 바로 음식의 온도와 그 촉감질감을 그대로 느끼고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손의 편리를 두고 수저 사용에 아이의 본능을 가두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이가 손으로 먹으려는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여러분이 원하시는 ‘주도적인 식사’에 한 걸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식사 전 깨끗하게 씻는 손은 음식을 마음껏 잡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 생각을 달리해주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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