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그놈의 약속, 족쇄 같고 올가미 같은 지랄 맞은 약속을 아이와 하고 있다. 약속을 한다는 것은 내가 대단히 멋진 사람처럼 여겨지던 어린 시절이었다. '엄마, 이제 공부 잘할게요. '엄마, 이제 말 잘 들을게요.' 엄마, 엄마, 엄마..... 예쁨을 받기 위한 약속이었지만 사랑 고백 같은 거였다. 말로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때마다 편지로 글자를 새겨 갖다 받친 종이는 엄마에게 비밀병기가 되었다. 아주 강력했다. 그런데 놀기 바빠서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는 것이 약속이더라.
무책임한 약속을 이유로 엄마에게 모진 말을 들었다. 늘 약점이 되었음을 알기에 나는 함부로 편지를 쓰지 않는다. 편지만 쓰면 감성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사한 약속을 내가 하고 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약속해! 꼭 지켜! 라며 강압적이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아이와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음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거야.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다른 사람과의 약속만큼이나
네 스스로 계획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약속도 매우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약속을 하면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걸
배우면 돼.
첫째 아이와는 대화가 잘 된다. 이해력도 좋고 공감력도 좋아서 주고받는 대화가 일찍부터 가능했었다. 그런데 둘째는 다르다.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차이다. 첫째의 성장과 비교 대상이 될 뿐, 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려 해도 되지 않게 확실히 구분되는 다름 들이다.
아이에게 손가락 걸고 도장 찍는 약속은 그냥 놀이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무언가 가르쳐야 하고 다짐을 받아 동의했음을 확인해야 할 수단일지 모른다. 그러나 꼬꼬마들은 그저 버겁고 어려운 과제다. 어른도 무심히 흘리며 안 지킬 약속, 못 지킬 거라 여기는 인사 같은 약속을 너무 쉽게 한다. 그런데 아이에게 약속이라니! 게다가 손가락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 찍고 손바닥에 사인하고 맞닿은 손바닥을 움직여 복사까지 한다. 아이는 놀이로 어른은 각서로 여기며 동상이몽 계약이 체결된다.
두 아이와의 약속은 곧 틀어질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울지 않을 힘이 생긴다. 아침마다 등원으로 힘든 3월이다. 울지 않고 등원하자는 약속, 다른 아이들도 엄마가 보고 싶지만 꾹 참고 지내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약속, 유치원 잘 마치고 와서 맛있는 간식 먹자는 약속, 집에 와서 함께 할 놀이를 정하고 지키자는 약속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약속을 끼워 넣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기분이 하루를 좌우하기에 텐션 올려 식구들 기분을 맞춰준다. 둘째에게는 더 씩씩한 격려를 해주며 버스에 오른다. 그런 노력도 허사, 아이는 변함없이 울면서 들어가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선생님에게 안겨 고개 젖혀 울면서 들어가는 모습보다 눈물을 훔치며 고개 숙여 들어가는 모습이 더 가슴 아프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올 땐 걸어서 온다. 집으로 출근을 하는 심정으로 몸을 움직이며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그래야 아이가 없는 오전을 알차게 보내고 다시 웃는 얼굴로 아이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딸기 우유를 한잔 만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두 모금 마시다가 목이 메어 멈추었다. 컵을 내려놓고 길게 한 숨 내쉬며 식탁을 정리하다 작은아이가 먹다 남긴 샌드위치를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또 눈물이 나려 해서 이리저리 다니며 정리를 시작했다. 무리한 약속을 지키라는 엄마를 탓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말썽 부려 미안하다던 아이 말이 생생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그때 카톡이 울린다. 아이 활동 사진을 담임이 보냈다. 활동 결과물에 초점을 두시고 찍은 모습이겠지만 엄마 눈에는 다른 게 보인다. 마스크로 가려진 무표정한 아이의 모습에 결국 눈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