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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Jul 18. 2020

개 꿈은 개꿈이었다

같이 살자

어느 날, 잠에서 깨기 직전에 나의 왼 손가락 네 개가 몽땅 잘리는 꿈을 꾸었다. 피는 나지 않았고 통증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나 너무 놀라고 속이 상해 손가락 쪼가리들을 얼른 주워 강력 접착제로 붙였더니 도로 붙었다. 한데 손가락 하나가 잘 못 들러붙어 이상하게 길어졌다. 임태경이 의사라며 내 손가락을 원래대로 만들어 주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 꿈일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개꿈? 개꿈. 혼자서 살다 보니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로워 아쉬운 건 없었는데 딱 하나, 스킨십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심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강아지였다. 지난 세월 속에 사정상 끝까지 못 키우고 입양 보내야 했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개는 절대로 안키우기로 결심했었다.  마당도 아니고 아파트 한 공간에서 개를 키우는 건 자식보다 개를 더 사랑하고 자녀교육보다 개 교육에 더 열심인 백인들이나 할 짓이지 우리처럼 개사랑, 개교육을 대충 하는 사람들은 서로 고생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한데 그 깨달음을 넘어서는 외로움에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아프기까지하여 이번엔 개 교육 잘 시키고 개사랑 제대로 해주리라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는 그때부터 강아지 분양 사이트를 뒤졌다. 개 품종과 특성과 성품을 공부하면서 내가 원하는 작고 예쁘고 똑똑하며 얌전한 강아지를 찾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기본 천오백 불이 넘는 토이푸들, 미니어처 푸들, 웰시코기들을 두고 갈등을 하던 중 관심을 끄는 광고 문구를 개인 광고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오 개월 된 웰시코기를 데려가 잘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 암으로 죽은 자기 아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인데 무료로 줄 테니 한 달에 한 번씩 강아지가 잘 커가는 사진만 찍어서 자기네 부부한테 보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가슴을 울리는 문구와 함께 올린 강아지의 사진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 거기다가 강아지를 공짜로 주겠다고 하니 이메일을 보내어 전화 메시지를 주고받게까지 되었다. 올린 주소가 우리 집에서 가깝길래 직접 가서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들이 워싱턴에서 살았었기에 자기네 부부가 아들 유품을 정리하러 워싱턴에 와 있으며 강아지도 거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개 배달 전문 업체에 운송비를 선지불 하면 문 앞까지 개를 배달시켜 주는 업체가 있다고 하더라, 그 업체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할테니 기다리라고 하길래 기다렸다.  그리고 곧 연락이 왔다. 아랍 쪽 엑센트의 영어를 하는 배달업자라는 남자가 운송비 삼백이십 불을 송금하면 이틀 뒤 강아지를 문 앞에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송금했더니만 티켓팅 전표 사진과 직원이 컨테이너에 담긴 강아지를 비행기 탑승구로 데리고 들어 가는 사진까지 보내주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강아지를 기다렸다. 한데 다음날 업자가 전화 걸어하는 말이 환승 공항에서 태풍으로 인해 연착되어 열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곳 날씨가 너무 더워서 냉방이 잘되는 개 호텔에서 강아지를 쉬게 해줘야 하는데 보증금 팔백 불을 내야 들어갈 수 있으나 그 돈은 나갈 때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장황한 설명에 인터넷 보이스피싱을 당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로 돈을 입금하라고 하면 순순히 입금을 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참 어리석다고 여겼었는데 내가 그랬다. 어떻게 나는 돌이란 돌에는 다 걸려 넘어지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같은 돌에 두 번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다른 돌에 걸려 넘어졌던 것같이럼 여겨져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웃었다. 고작 삼백 불이다, 그 정도야 뭐어 하면서. 한데 이 아라비안 사기꾼이 한 놈인지 두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개 주인 아라비안과 배달업자 아라비안이 번갈아 가면서 계속 전화를 걸어대고 문자를 해대는 것이었다. 업자라는 놈은 개가 지금 더워서 못 견뎌하니 얼른 팔백 불을 보내라 했고 개주인이란 놈은 내가 사백불을 보낼테니 너도 사백불을 보내라 했다. 어차피 열 시간 후에 돌려받는 돈이다 하며 같은 소릴 계속 해대기에 네가 개 주인이고 개 배달업 자지? 아니면 둘이 친구냐? 다 필요 없으니 내 삼백 불을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폴리스에 바로 신고하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되는 전화와 문자를 무시하며 날린 돈은 수업료로 치자 생각하고 심 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누구한테 말할 기분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디다가 털어놓기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기에 큰아들이랑 언니랑 친구한테 쏟아놓았다. 큰아들은 깔깔 웃으면서 큰돈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잊어버리라 했고 언니한테는 핀잔을 엄청 먹었으며 친구는 죽은 아들의 강아지라는데 아니 속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자기도 나처럼 했을 것이라 했다. 역시 털어놓은 덕분에 평상심을 빨리 되찾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데 전화가 울려 잠결에 받았더니 또 그놈 목소리였다. 오밤 중에 전화 걸어 하는 말이 자기는 열심히 사는 선량한 사람의 돈을 갈취하는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영수증을 들고 송금 점포로 가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놈이 내가 열심히 사는 선량한 사람인 건 어찌 알았을까 잠시 생각하다 잠이 들었고 이튿날 반신반의하며 점포에 갔다가 돈을 찾긴 찾았으나 도대체 이게 뭔 일 인가 싶었다. 인터넷 보이스피싱이 맞긴 맞는데 간덩이가 작고 마음이 여린 초보 사기꾼이었던지 혹은 순간적으로 알라신이 두려웠는 지도 모른다. 떼였다 생각하고 포기해버린 돈이 돌아오니 공돈 생긴 것같이 좋았다. 다시 강아지를 찾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가 개주인의 집을 직접 찾아가서 두 달 된 미니어처 푸들 암컷을 데리고 와 딸처럼 애지중이 키운게 벌써 삼년 반이 되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잠드는 밤은 포근하고 아늑하며 강아지의 쌕쌕 대는 숨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아침은 무한히 평화로워 그 존재가 한없이 고맙다. 어린것을 데리고 목이 아프도록 가르쳤더니 크게 짖기, 작게 짖기, 물건 집어 오기 등을 곧잘 한다. 이제 숫자 개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서 두 번 짖는 것이 신통하여 아홉 번 짖기까지 가보려고 하나 그때까지 내 목이 남아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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