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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Sep 08. 2020

고양이의 깊은 속

같이 사는 거다

이발학교 다닐 때 한 청년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낡은 문고판 책을 내게 빌려주었다. 겉표지뿐 아니라 속장까지 누렇게 변색된 그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눈을 떴더니만 강아지가 옆에서 그 책을 물어 뜯고 있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책을 빼앗고 보니 이미 겉장도 뒷장도 없었으며 여러 페이지가 뜯겨지고 찢겨져 나간데다가 침상 주변으로는 종이 쪼가리들이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났으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리 강아지는 아메리칸 에스키모였는데 본시 철이 늦게 드는 종자라서 두 살이 될 때까지 사지분별을 못하고 기운이 철철 넘쳐 난다고했다.  순식간에 순모 스웨터에서부터 새로 산 고가의 이어폰에 부루트스까지 다 씹어놓았고 마구 짖어 댔으며 틈만 나면 문밖으로 탈출하여 찾아다니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서 중요한 물건들은 죄 다 높이 올려놓고 늘 조심해 왔는데 깜빡 잠든 사이에 빌려온 책을 그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누구를 탓하랴. 책의 파편들을 모두 주워 상자에 모아 놓고 망연자실하여 앉아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단 겉장과 뒷장부터 찾아다 붙여놓고 보니 의욕이 생겨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퍼즐을 맞추듯이 모양과 글자를 맞춰 나가면서 개를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끼손톱 크기로 잘게 찢어진 페이지쪼가리 들을 이리 저리 맞춰보는데 어떤 쪼가리들은 이게 저기로 가서 붙어야 되는지 저게 여기로 와서 붙어야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돌려가며 갖다 대어 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눈알이 빠지는 것 같았다. 수사 추리물의 탐정이나 형사가 몇 날 며칠에 걸쳐 훼손된 증거물을 복구하는 심정이었으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고려청자가 불의의 사고로 산산 조각이 나는 바람에 쪼가리들을 모아 형태라도 복원해보려는 절박한 종가집 종손의 심정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복구작업을 하면서 씹어도 너무 잘게 씹어놓은 개를 또 욕했다. 개에 비해 고양이는 아기 때부터 다 알아서 하니까 훈련도 필요 없었고 조용하고 얌전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적이 없어 같이 살기 편했으나 문제는 털이었다. 머리와 몸의 일부분에만 털이 있는 우리 인간들도 여기저기 털을 흘리고 다니는데 온몸에 털이 달린 짐승들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이부자리를 수시로 털고 찍찍이로 찍어 내도 하얗고 짧은 고양이의 털들은 노상 어딘가에 붙어있었다. 그 당시 언니네 집에는 새가 있었는데 종종 새장을 벗어나 거실 안을 날아 다녔다. 새는 나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쪼아대며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어찌나 귀엽던지 파랑새를 키우고 싶다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작고 예쁜 파랑새가 들어있는 새장을 생일 선물이라며 들고 들어왔다. 그새의 이름을 ‘콩’이라고 지었다. 새장 속에는 그네와 거울, 먹이통 등이 다 들어있어 새는 거울도 들여다보고 그네도 타다가 새장의 철망도 가로로 세로로 타고 돌아다니며 놀았다. 고양이도 신기했는지 새장 곁에 붙어 있었다. 한 번씩 새장 문을 열어 주어 거실을 날아다니게 했는데 그때마다 혹시나 고양이의 사냥감이 될까 싶어 한시도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한데 어느 날, 잠깐 열어 놓은 현관문을 통해 새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아 허탈했다. 게다가 얼마 안가 매나 솔개의 먹이가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으나 것도 다 자기 운명이니 어쩌랴 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오는 고양이에게 빈 새장을 가리키며 콩이 없다고 콩이 날아가 버렸다고 몇 번을 알려 주었더니 뭔가 알아 들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장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틀 후 마당에서 놀던 고양이가 들어오는데 보니까 입에 무엇인가가 물려 있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쥐를 물고 들어온 줄 알고 기겁을 하여 아들을 깨웠다.  살펴보니 참새였는데 목을 물었는지 죽어있었다. 안하던 짓을 한다고 고양이를 야단쳤다. 다음 날 아침 고양이는 또 새를 물고 들어왔고 나는 다시 아들을 불렀다. 이번엔 살살 물고 왔는지 다행히도 살아있었고 놓아주니 멀쩡하게 날라 갔다. 고양이가 갑자기 왜 사냥을 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은 순간 불현 듯 나보고 콩대신에 얘라도 키우라고 마당에 앉은 참새를 잡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다 맞아 들어갔다. 콩이 날아갔다고 애석해하는 내게 주려고 마당에 날아든 참새를 노리다가 첫날은 목을 무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둘째 날엔 날개쭉지 부분을 살살 물어 살려갖고 들어온 것이었다. 것도 모르고 야단만 쳤으니 그 속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고양이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고 마음가짐과 태도도 신중해졌다. 씻기고 먹이고 산책시키고 똥도 치워주고 온갖 수발 다 해주면서도 이 존재들에게는 애잔하고 미안한 감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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