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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Sep 05. 2021

심각할 거 하나도 없다

혼자 또 같이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은 24년간의 결혼생활로 충분했고 이제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굳게 마음먹고 지난 십일 년 동안 혼자서 웃고 울며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오십 중반의 노처녀가 스님께 여쭙길 이 나이에 결혼을 해도 될지 안 될지를 여쭸다. 혼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으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누군가와 같이 살면 덜 외롭고 아플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남자랑 같이 살아본 적이 없어 다 늦게 결혼했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봐 겁도 난다고 했다. 늙어가는 싱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딜레마이리라. 그에 대한 스님의 설은 이랬다. 당신 나이에 결혼해서 애를 낳을 것도 아닌데 뭘 걱정하느냐. 혼자라 너무 외롭다 싶으면 마땅한 남자 만나 결혼해서 같이 살면 된다. 같이 살아보니 혼자 사느니만 영 못하다 싶으면 혼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도 딸린 애가 없으니 걸릴 것도 없다. 혼자로 돌아와 어느 만큼 지내다보니 역시나 외로워 죽겠다 싶으면 또 누구랑 살아도 그 나이에는 괜찮다. 왜냐면 당신이 혼자 살건 누구랑 같이 살건 남에게 해를 주는 것만 아니면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다는 명답명설을 해주셨다. 나 역시 그런 갈등 속에 있던 중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속이 후련해지게 답을 주셨다. 이 나이에는 심각할 게 없는 것이었구나 싶어 결혼이라는 것을 다시 해보기로 가볍게 결정을 내렸다. 젊디 젊던 이십 대 때에는 나와 다른 성격에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는 듯싶은 사람에게 끌렸었다. 왜 그런지 그땐 몰랐는데 이 책 저 책, 이 강의 저 강의 듣다 보니까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나보다 생존능력이 강화된 후세를 보고자 하는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이성한테 끌리게 만든다고 한다. 몇 년 전 스웨덴의 어느 유전학 연구 기관에서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가임기의 여성들은 자신이 취약한 부분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그들의 땀 냄새로 알아낸다고 한다. 물론 본인들은 그 상대에게 끌리는 이유를 딱히 모르지만 뇌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이래서 좋아한다 저래서 사랑한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것이라고 한다.  야생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수많은 남성들 중에서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것은 여성이란다. 한데 아기를 낳고 다 키워놓아 더 이상 아이를 만들 필요가 없어지고 나면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이 사는 것이 무척 힘들다, 연애할 때엔 그게 매력적이었는데 같이 살다 보니 그것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단다. 환갑이 내일 모레인 나이가 되어 공통점이 많은 남자 사람을 만나서 지내보니 편하다. 2세를 만들 일도 없고 만들 수도 없어져 다른 성격이나 취향의 이성에게 끌려야 할 생물학적인 동기가 없어져서 그런게 안닌가 싶다. 늦게 만날 바에는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배추가 이렇게 생겼든 저렇게 생겼든 간에 소금에 푹 절어지면 다 축 늘어지듯이 사람도 늙으면 이 성질 저 성질 다 죽어 대충 비슷해진다고도 하지만 사람은 떡갈나무랑은 비슷해도 배추랑은 많이 달라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을 듯 싶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나처럼 바깥 활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집에 틀어박혀 느긋하게 꿈지럭꿈지럭 거리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가 농담하는 코드도 맞아 좋은 친구이자 마음공부를 같이 하는 도반이다.  현관문을 나서서 시멘트 보도를 걷다가 잔디밭으로 들어가면 저항 없이 밟혀주는 잔디는 두 발을 시원하고 부드럽게 감싸주어 느낌이 정말 좋다. 거기다가 잔디는 회복력이 강해  마음껏 밟아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어 더욱 좋다. 잔디는 잔디대로 흙은 흙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발에 체중을 실어 내딛는 즉시 기분이 상쾌해져 지친 몸과 맘이 위로되고 치료된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대지.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면서 넉넉하고 푸근한 존재인 어머니. 맨발로 맨땅을 걷다 보니 이래서 어머니와 대지를 붙여 부르는 것이구나 싶다. 어머니가 된 순간부터 절대로 낫지 않는 불치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맘에 깊이 박혔었는데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가 되어본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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