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스쿨
2011년 11월 말, 미국 회사에 입사하여 생산라인에서 반 년 넘게 일을 해오다가 확실한 기술을 익혀 생활의 기틀을 다지려 의료기술자가 되는 길을 알아보다가 예전에 엄마한테 인슐린을 놔드렸던 경험이 있어 채혈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6학점을 취득해야 2년제 메디칼 기술 전문학교 입학 자격이 주어진 다기에 칼리지에 영어 과목을 등록했다. 수업이 있는 이틀 동안은 아침에 집을 나와 수업을 듣고난 후 근처 도서관에 들어가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다가 오후 3시에 회사로 바로 출근하여 밤 11시 30분까지 일을 하였다. 잠이 모자라 작업 중에 졸다 세 번이나 걸려서 회사의 카운슬러한테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밤에 잠을 못 자는지 몸이 안 좋은지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일이 너무 많은지 술을 먹고 자는지 약을 먹고 자는지 등등. 다시는 절대로 졸지 않겠다고 다짐을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학교의 영어 클래스 수업은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데다 에세이를 써내야 해서 골치 아팠다. 우리말로 써놓은 후 영어로 번역을 하여 큰아들에게 봐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되건 안 되건 자신의 실력대로 써가야 한다며 아들은 거절했다. 한 두 페이지 쓰는 것도 오래 걸리고 스트레스였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앞에 나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순서가 되어 앞으로 나가긴 했으나 어떻게 하고 들어왔는지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그래도 몇 마디라도 하고 들어온 용기가 가상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간신히 학점을 따고 정말로 채혈사 과정에 등록을 할 것인가를 두고 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어렵사리 공부해 의료 기술 자격증을 따고도 병원이나 연구소에 취직이 되지 않아 일년이 넘도록 놀고 있는 한인 교회의 청년에게 물어보았더니 서류심사에 합격해도 인터뷰만 가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듣고보니 나이 오십의 아시안 여인을 신입으로 채용해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채용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직업 말고 내가 나를 채용할 수 있는 직업이 좋겠다 싶어 이발사로 진로를 바꾸고 '에밀리 그리피스 테크니칼 칼리지'라는 기술학교에 들어다. 100년 넘은 꽤나 유서 깊은 기술전문대에 입학 시험을 치르고 합격이 되니 열아홉 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 교실의 구석자리에 앉아서 이발 수업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일 연장자가 내가 되는 것인가 싶었으나 연세 지긋해 보이는 백인 어르신과 중년 여인이 들어와 다행이었다. 교실 앞문으로 뚱뚱한 금발의 여인이 들어와 우리들에게 일 년간 이발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고 자격증을 획득하게 도와줄 강사라며 자신을 소개하했다. 클래스는 열다섯 명 정원이었다. 출석체크를 마친 강사가 앞으로의 수업 일정을 설명하는 것 같긴 한데 아는 단어와 모르는 단어를 마구 섞어가며 빠르고 길게 떠들어 대는 통에 뭔 소리인지알 수 없었다. 진즉에 그럴 거같아 백인 여인 캐더린과 통성명을 하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었다. 강사의 말이 끝날 때마다 ‘뭐라는 거죠?’ 하고 물으면 그녀는 고맙게도 천천히 쉽게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학생 신분으로 다시 돌아가니 긴장도 되고 설레었다. 엑스레이 촬영기사였다는 육십 세의 백인 아저씨는 병원에서 이십오 년도 넘게 일했으나 주야간 교대근무에 거구의 환자들을 엑스레이실로 옮기는 것도 갈수록 힘에 부쳐 멀리보고 이발사의 길을 택했단다. 교과서가 크고 두꺼워 이발사가 되는데 뭐가 이리 공부할게 많나 싶어 펼쳐보았다. 수업의 목표와 자격증 취득 및 취업과 가게 오픈, 관리국의 업무, 소독, 멸균과 세균학, 각종 질병과 전염 방제, 피부와 두피 해부도, 신경과 근육조직, 머리카락의 종류, 수염과 머리스타일, 도구와 명칭, 기법, 면도칼의 종류와 테크닉, 남녀 헤어 컷팅 기법과 종류, 염색과 펌 등등 깨알 같은 영어가 가득하고 실습 편에는 그림과 사진에 또 영어가 잔뜩이라 훑어보다 머리가 아파 덮어버렸다. 인생 삼 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