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라 Jul 17. 2020

철인 삼종 경기

나는 책임없는 종업원일 뿐

미국에서 한국 여인들이 영어도 못하고 자격증 없어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네일 일이다. 나이 상관없이 손만 안 떨고 눈만 제대로 보이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인 네일 살롱에서 일하려면 매니큐어 리스트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영어도 잘해야 하지만 오륙 개월 코스의 아카데미 수료증 소지자에 한해서 자격증 시험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고 먼 길처럼 여겨지는 데다가 수업료도 많이 든다. 한데 한국인이 주인인 네일 살롱에서는 전혀 경험없는 한국 아줌마들과 아가씨들을 채용하여 속성으로 발톱 손질과 각질 제거, 다리 마사지등 간단하게 기술을 연습시켜  바로 일에 투입시킨다. 필요한 영어라야 몇 마디 안 된다. 발톱을 깎아주랴 길게 놔두랴, 모양은 네모나게 해 주랴 동그랗게 해 주랴 아님 네모인데 코너를 약간 둥그러 주랴, 거기에 다가 익스큐스 미, 땡큐, 쏘리 정도면 일단 오케이다. 것도 목구멍에서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은 만국 공통 언어인 바디랭귀지가 있다. 가끔 관리국 직원이 나와 일체 점검을 하고 직원들 자격증도 체크한다고 듣긴 했지만 네일살롱에서 일했던 이 년 동안 점검을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콜로라도의 대학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지인 볼더시의 중심가에 친구들이 네일샾을 개장하여 무자격 매니큐어리스트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발학교의 수업이 끝나는 세시 반에 덴버 다운타운에서 볼더의 네일샾으로 출발을 하면 도착하기까지 오십분이 걸렸는데 그때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일을 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이틀동안 풀타임으로 일을 하여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파트를 나서면 겨울 해뜨기 전이라 몹시도 춥고 깜깜했다. 사십 분 걸려 다운타운의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학교까지 이십 분을 걷다 보면 등에 걸머진 가방은 양어깨를 내리눌렀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추운 날씨에도 등짝엔 땀이 났다. 이발 학교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8시간의 수업이 있었다. 학교에서 삼분의 일를 보내고 네일샾에서 삼분의 일을 보내다 보니 내 생활은 철인 삼종 경기를 치르는 것같이 여겨졌다. 어릴 때부터 언니들이 손톱 손질을 하고 매니큐어를 칠해 잡지책의 손 모델처럼 만들던 것을 보면서 커왔던 지라 초보자처럼 떨지 않고 일단은 용감하게 손님들의 손발톱을 손질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렸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매니큐어 도구랄 것이 따로 없었다. 손톱깎기 하나로 온식구가 돌려가면서 썼고 면도칼로 다듬었다.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를 살아오셨던 할머니들과 그 때 태어나고 청소년기에 해방을 맞으신 부모들이 쓰는 '쓰메끼리'라는 말이 우리들에겐 어려서부터 아주 익숙했다. 손톱깎기를 쓰메끼리라고 불러보면 안 방의 아랫목에 신문지를 펴고 그 위에 맨발을 올려놓으시며 ‘쓰메끼리 가져와라!’ 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넓은 등을 둥글게 구부려 발톱을 깎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언니들이 새 면도날로 손톱 가장자리의 굳은 살을 잘도 다듬어냈다. 그러다가 피가 나면 즉시 입으로 가져가 더러 피를 뱉어내기도 했다. 신기하여 옆에 붙어 앉아 들여다보면서 약간의 스릴도 느꼈다. 굳은 살까지 완벽히 제거된  좁고 긴 손톱에 화려한 색의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은 아트였다. 그런 언니들의 손기술을 보면서 커왔던 지라 경험은 없었으나 발톱 손질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면도날도 아닌 편리한 도구들까지 있으니 굳은 살을 너무 용감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살까지 찝어 피를 볼 때는 움찔하여 식은 땀이 나왔다. 지혈제를 뿌려주면 바로 멈추기도 했으나 어떤 사람은 피가 멈추질 않고 계속 나와 당황되고 미안스러워 주인한테 떠맡기고 숨어버리고 싶었다.  점점 요령이 생겨 조금씩만 잘라내다가 야금야금 쪼아내는 프로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업원이 손님의 손이나 발에 피를 낼 때마다 네일샾의 주인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싶다. 막 신장개업을 하여 찾아오는 손님 하나하나가 귀한데 피 봤다고 발걸음을 끊을까봐 걱정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온갖 것을 다 생각하고 챙겨야 하고 일년 삼백 육십 오 일, 하루 이십 사 시간 동안 업장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오너라는 자리이다. 과거의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제일 속 편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럽고 치사해도 일하는 시간 동안만 내 할 일하고 퇴근하면 일에서 완전히 놓여날 수 있는 종업원이라는 낮고 홀가분한 자리가 좋아 휘파람까지 휘휘 나왔다. 그때 그 시절 무자격증 초보 매니큐어 리스트로서의 일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은 ‘모든 걱정과 뒷감당은 오너의 몫이고 나는 책임 없는 종업원일 뿐이다’ 하는 딱 그 수준이었으며 뭐니 뭐니 해도 팁 많이 주고 가는 손님이 제일 좋았다. 일이 익숙해지자 발에서 손으로 옮겨가는 시점이 되었고 더욱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작업을 해야했기에 몰입도가 더 높아 재미있었다. 그녀들의 손을 다듬어 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살아 있는 영어회화 수업을 받는 잇점까지 얻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떻게든 표현하게 되어있고 듣고자 하면 어떻게든 알아듣게 되어있다.  인종과 언어가 달라도 사람 사는 것은 거기서 거기고 느끼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네일샾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항상 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는 멋진 백인 여성이었다. 친구가 손님의 손톱손질을 하고 동시에 나는 손님의 발톱을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외국어 대학을 나왔다는 친구는 전공이 어느 나라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영어가 많이 딸렸다. 사람을 코앞에 앉혀두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가 머슥했던지 친구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우쥬 라이크 워터?'. 드레스 그녀는 답했다.' 아임 화인.'. 그러자 친구는 나를 보더니 작게 말했다. '얘가 물 달라는 거지?. 당시에 나는 이발 학교를 다니던 중이라 '아임 화인'의 쓰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역시 작은 소리로 답했다.'자긴 괜찮대. 물 달라는 게 아냐.' 친구는 소리를 죽여가며 다시 말했다.'지난 번에는 얘가 '아밈 화인'이라고 해서 물가져다 주니까 마시던데?' 내가 또 말했다.'괜찮다는 데도 갖다주니까 할 수없이 마신 거겠지. 이 경우의 '아임화인'은 됬으니 신경끄라는 거야. 그런데도 자기가 정녕코 물을 갖다주고 싶거들랑 갖다주든가. 또 마실 지도 모르지. 크크크.' 친구는 그럼에도 물을 갖다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계속 갈등중인 것처럼 보였다. 이런 대화를 한국말로 소근소근 주고 받고 있는 우리를 그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얘네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설마 내 흉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에피소드를 하나만 더 얘기하자. B는 한국인이 세운 회사에서 일을 해온지가 십오년이 넘었다. 그 회사에서는 한국인 직원이 반이 넘는다. 덕분에 영어때문에 일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다. 직장내의 외국인들과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간신히 소통을 하긴하는데 그들이 알아듣는 것이 용했다. B가 네일일을 배워보고 싶다기에 내가 일하는 네일샾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의 영어발음은 완전 한국식이다. '굳.'이라고 할때도 '구우웃~!' 하고 끈다. '조옷치이~! '인거다. '유 노 아이 노오오오.' 즉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아.' 이런 식이다. 어느날 B가 손님의 발톱을 손질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초보때에 발톱손질 과정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이다. 살에 묻히지 않으면서 매끄럽고 깔끔하고 예쁘게 칠해야하니 지우고 고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발톱손질이 거의 끝나갈 무렵 손님이 '내발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르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그소리를 듣자마자 B는 바로 이렇게 크게 대답했다. '오오 땡큐우우우~~~'. 그러면서 좋아 죽겠는지 껄껄 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매니큐어리스트로 일을 하면서 무자격자인 티를 내도 저렇게 대놓고 내도 되는 건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나는 두고 두고 그 얘기를 울궈먹으며 깔깔 댔다. 나역시 철이 덜 들었던 때라 웃자고 그런 건데 B에게는 상처가 됬던 모양인지 내가 네일샾을 관 둔 후부터 B가 내 뒤담화를 많이 한다고 친구에게 들었다.  B가 뒤담화를 하고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싫지 않다. 이제는 싫거나 미운 사람이 없다. 그들의 나쁜 점은 내게도 있고 나의 좋은 점은 그들에게도 있고 그들의 좋은 점은 내게도 있고 나의 나쁜 점은 그들에게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전 07화 공장 노동자서부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