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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Jul 20. 2020

행복을 주는 층간소음

용의자 K의 헌신

층간 소음때문에 이웃간에 크고 작은 불화가 많이 생긴다.  한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층간 소음덕분에 행복감을 느끼게 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혼자서 오래도록 살아오고 있는 중년의 고등학교 수학선생인 남자는 어느 날 죽기로 결심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메뉴가 다양한 도시락을 골라서 사먹어 가며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굴곡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뿐이다. 불만도 없었고 딱히 목표도 없었고 매력 없는 외모 때문인지 여자 친구도 없었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도 없었다. 학창시절부터 머리가 상당히 좋고 성적이 월등하게 우수하여 동급생들은 그가 장래에 꽤나 저명한 천재 수학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그는 그냥 평범한 수학 선생으로 머물러 버렸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으나 세월이 갈수록 외롭고 삶이 지루하여 계속 그렇게 산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죽기로 결심한다.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날 옆집으로 모녀가 이사를 들어오자 그저 조용하기만 했던 그의 집에 사람소리가 들려온다. 천장에 밧줄을 매달고 의자에 올라섰다가 내려와 벽에 귀를 대고 옆집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 보니 작은 행복감이 밀려와 죽기를 미룬다. 그날부터 그는 집에 있는 시간에는 벽에 귀를 대고 그녀들의 생활소음을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매일매일이 기대되었으며 그들과 같이 사는 듯이 여겨져 그의 일상은 더 이상 외롭거나 황량하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이라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시신이 유기되고 사건은 은폐되고 그를 위해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는 스토리인데 탄탄하게 잘 짜인 스토리에 푹 빠져서 단 숨에 읽었다. 맥락과 숨은 복선을 파악해 가며 두세 번을 더 읽었는데 이 소설을 시작으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모두 읽게 되었고 새로이 출간되는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즐거움도 갖게 되었다. 소설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다. 혼자 살아온 지 십 년이 되어 독신생활에 익숙해져 혼자인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은 적도 많았으나 가끔씩 적막감에 고립되어진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혼자 사는 일인 가구가 많은 세상이라 공통 애로사항이리라. 아파트 삼층에서 몇 년째 살아오고 있는데 이곳으로 입주했을 때에는 아래층에 백인 청년 둘이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반년 뒤인가 그들이 이사를 나간 후 몇 달동안 비어있었다가 새파란 청년이 이사를 들어온 날이었다. 느닺없이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청년의 목소리에 놀라 내다보니 중년 여인이 아파트 건물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 청년이 그녀한테 대고 그러는 것이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엄마가 왔었나 본데 뭔 다툼이 있었는지 당장 꺼지고 다시는 오지 말라며 아들녀석이 악을 썼다. 잠깐 구경하는 내 속도 쓰린데 저 엄마는 얼마나 속이 문드러질까 싶었다.  며칠 후 습관대로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딱딱한 식재료를 분쇄기로 갈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우리 집 마룻장을 쾅쾅 올려치는 소리가 났다. 아래층이 오래도록 비어있었던지라 잠시 깜빡한 데다가 소리는 보통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니까 괜찮다고 방심해 온 것이 탈이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즉시 맞대응하다니. 청년이 자기 엄마한테 악을 써대는 것을 봤던 터라 바짝 긴장이 됬다. 한 번만 더 분쇄기 소리를 내면 올라와 총으로 쏴 죽일지도 몰라 더럭 겁이 났다. 그 후로는 믹서기나 분쇄기 등을 쓸 때엔 대낮이어도 주차장에 그놈 차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주방기기를 사용해야했다. 어서 속히 아래층 놈이 이사 나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몇 달 만에 이사를 나가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들어와서 거실 바닥에 누워있을 때엔 아기를 얼러대는 엄마의 목소리와 아기가 내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와 잔잔한 평안함을 주기도 했다.  그들이 이사를 나가고 난 뒤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가 들어왔으며 지금까지 이 년이 넘도록 이사 안나가고 살고 있다. 엄마가 방을 놔두고 거실에서 요깔고 잤던 것처럼 나역시 혼자 살다보니 거실 바닥에 자리 펴고 자는 것이 좋았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그녀들의 대화와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려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안온함을 느끼며 잠들 수 있었다.  겨울이 깊어지자 잠자리를 방으로 옮겼다. 바닥에서 자는 것이 좋아 침대는 진즉에 없애버렸으나 겨울 침실을 나름 예쁘고 아늑하게 꾸며놓고 이부자리 위에 자려고 누우니 전에는 못 들어 본 소리가 바닥을 통해 들려왔다. 커커커커컥 커커커커컥. 아래층 여자의 코 고는 소리였다. 바닥의 건축자재를 통해 걸러진 남의 코고는 소리는 개껌 뜯는 소리만큼이나 숙면에 도움을 주었다.  아래층 모녀가 이사 안 나가고 오래 살아주는 것이 고마워 두 모녀의 머리나 예쁘게 잘라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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