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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Aug 12. 2020

공장 노동자서부터

영어완전정복

처음에는 심박체크 머신에 연결된 인체 부착용 패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 년 계약으로 일을 했었다. 수술실에서 쓰는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가운과 캡, 그리고 보안경에 라텍스 장갑까지 복장을 갖추고 하는 단순 작업이라 어려운 것은 없었다. 같은 동작의 반복이라 동료들과 얘기하며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기회였다. 네팔과 티벳 출신자들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으나 듣다보니 문법에 맞게 썩 잘 구사하였다. 미국 온지 얼마 안됬다면서 어찌 그리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들의 모국어와 영어는 문법이 비슷하여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단어만 알면 문법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손으로는 작업을 하고 입으로는 그들과 말을 섞으면서 영어 울렁증을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십오 분간의 브레익 타임에는 스낵이나 커피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브레익 타임에서 돌아오면 작업이 로테이션 되어 지루함에서도 벗어났고 같은 동작의 반복으로 한 곳에 집중되었던 근육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입사 초기에는 런치로 햄버거나 샌드위치도 먹었으나 지겨워져서 밥과 냄새 안 나는 간단한 반찬을 싸갔다. 하루는 동료들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다가 무심코 옆자리에 앉은 아시안 아가씨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처녀가 먹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닭발이었다. 형체를 고대로 보존한 닭발이었는데 푹푹 삶아서 그런지 그 닭발은 유난히 컸고 아주 하얬다. 닭발의 발목부분을 손가락을 집어 들고 닭의 발가락을 차례로 뜯는 모습에 깜짝 놀랬다. 저런 건 집에서 먹을 일이지 일터에까지 가지고와서 먹다니. 갖고 올 거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난도질을 해서 갖고 오던가 해야지 저렇게 적나라한 자태를 보란 듯이 펼쳐놓고 먹다니. 내가 보기에도 몬도가네 스러운데 백인들이 보기엔 어떠랴 싶어 닭발아가씨와 도매금으로 넘어갈까봐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작업 중에 제일 편하고 맘에 드는 공정은 인스펙션(품질검사)이었다. 탁자에 둘러앉아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인데 수다를 떨기에 딱 좋았다. 모여서 떠들 때에는 문법을 생각하다간 입고 뻥긋 못하고 대화내용이 바뀌어 버리기 일쑤이니 문법이고 뭐고 떠오르는 영어 단어를 즉시 내뱉어야 그나마 대화에 낄 수가 있었다. 말을 하고 난 후에 과거형을 썼어야 했는데 현재형를 썼고, 단수를 썼어야 하는데 복수형을 썼다던가, ‘그’라고 해야 했는데 ‘그녀’라 했던 것들이 생각나 복기, 복습 효과도 있었다. 실전 영어강습 받으며 돈까지 번다고 생각하니 일하는 것도 즐거웠다. 직장에서 집까지 삼사십 분 동안 미국방송을 들으면서 운전했고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 일주일 두번 있는 영어수업 숙제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영어 속에 풍덩 빠진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밤 일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 보니 눈이 이미 많이 쌓여 있었는데 여전히 눈보라가 마구 휘몰아치고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살살 출발을 하였는데 다른 차들도 살살 다니니까 그런대로 운전할 만도 하였다. 밤이 깊어 기온이 뚝 뚝 떨어지자 도로는 그대로 얼어 붙었고 눈보라때문에 시야가 안좋아 앞차와 거리를 많이 두었다. 느긋하게 맘을 먹고 운전을 하려해도 핸들을 잡은 손과 어깨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깜깜한 밤에 눈 폭풍 속을 뚫고 가는 프리웨이의 풍경은 꿈속처럼 멋있었다. 집 동네가 가까워져 나들목으로 빠지기 위해 핸들을 살짝 틀었는데 하향 경사로여서 차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더니만 삼백 육십도 회전을 하고서야 갓길에 멈추어 진짜 식겁을 하였다. 다행히 뒤따라오던 차가 멀리서부터 멈추어주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눈길 운전도 그렇게 실감나게 배운 덕분에 눈이 와도 쫄지않는다.  물러 설 곳이 없으면 다 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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