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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Oct 14. 2021

언제나 이긴다

비름나물을 찾아서

나물이 그립고 먹고 싶어지면 시금치도 삶아서 무쳐먹었고 미나리도 삶아서 무쳐먹었으며 중국인 친구가 잔뜩 뜯어다 주었던, 그들 말로는 ‘시엉초’라고 하는 나물도 우리식으로 무쳐 먹어봤다. 시엉초는‘water cress'라는 영어 이름이 있다. 우리말로 막 가져다가 붙인 이름인 듯 여겨지는 야생 나물들도 구글로 검색해보면 버젓이 영어 이름이 나온다. 명이나물도 ’Ramp, wild leek'라고 뜬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으나 사진으로 비교해보니 비슷하다. 'Solomon's seal'이라고 나오는 둥굴레의 영어 이름은 한층 재미있다. 물속에서 자라나는 야채들은 미나리고 시엉초고 간에 모두 뭉뚱그려 ‘water cress’라고 하지 따로 분류된 이름은 없는 듯하다. 여름으로 접어들자 예전에 엄마가 철이 되면 무쳐주었던 비름나물이 먹고 싶었다. 된장과 고추장을 약간 넣어 무친 비름나물은 어중간하게 털털하면서 시골스런 맛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맛이 좋아져 철이 되면 비름나물이 항상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마켓에서 흔하게 살 수 있었으나 여기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몇 해 전에는 교회 권사님한테서 씨앗을 얻어 아파트 앞마당에서 키웠는데 덕분에 나물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이사를 했고 현실을 살아내느라 경황이 없어 비름나물을 한 동안 잊고 지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중국인 친구 뽕주네 집 텃밭에 무성하고 튼실하게 자라난 비름 나물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녀의 후한 인심 덕분에 잔뜩 뜯어다가 무쳐먹으니 엄마와 우리들의 어린 날이 떠올라 행복했다. 지난 봄 후덕한 그녀가 갑자기 엘에이로 이사 가는 바람에 그 집 출입이 불가능해졌고 때문에 아쉬운 것은 비름나물이었다. 작년에 발코니를 화분들로 가득 채워 깻잎 농사를 욕심껏 해보느라 매일 아침마다 물을 퍼 날라다 주면서 고생을 하긴 하였지만 농사의 기쁨을 맛보았기에 올해에도 일고여덟 그루 정도의 깻잎을 나무처럼 키워서 잘 먹고 있으나 아쉬운 것은 비름나물이었다. 구글이 비름나물은 영어로 ‘아마란스’라고 알려주기에 씨앗을 오더하고 싹을 틔워 화분으로 옮겨 심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비름나물 씨앗은 후춧가루처럼 잘았는데 틔워진 싹들도 자디잔 데다가 자라는 것도 무척이나 느렸다. 이발소에서 손님이 없을 때에는 운동 삼아 그 주변 동네길을 걸어왔다. 손님이 없어 한가한 날에는 짬짬이 걷는 걸음 수가 만보가 넘었고 바쁜 날에도 오륙 천보는 되었다.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좋고 바쁘면 바쁜 대로 좋았다. 무조건 이기는 게임, 이것이 위너 게임 아니겠는가. 그렇게 동네 길을 매일 돌다가 보니 잡초들 틈에서 비름나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료를 텃밭에 뿌렸더니 비름나물이 저절로 자라났다는 이야기를 씨앗을 나눠주신 권사님한테서 들었었다.  소나 말이 비름나물도 잘 먹기 때문에 가축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씨앗들도 비료에 함께 섞여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생각이 나서 잡초들 틈에 비름나물이 있나 없나 살피면서 걸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드디어 어느 오래된 집 앞마당 잔디밭에 삐죽이 솟아 나와 있는 비름나물을 발견하였다. 남의 집 앞마당에 들어갔다가 그깟 비름나물 때문에 총에 맞아 죽었다고 신문에 날까봐 펜스의 외부 경계선을 따라가며 찬찬히 살폈더니 미국인들에게서는 대접 못 받는 비름나물들이 거기에도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심봤다! 혼자서 쾌재를 불렀다. 비름나물 주변 흙을 손으로 살살 파서 모종들을 옮겨다가 발코니의 화분에 심어 물 잘 주며 돌보니 크게 자라 꽃을 피웠고 한참 씨앗이 단단히 여물고 있다. 뜯어먹을 만큼 충분히 자랐으나 내년 농사를 야심 차게 지어볼 생각으로 화초처럼 아껴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호수와 넓은 잔디밭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맨발 걷기를 하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다 보니 그곳에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어 놓은 박스형 채마밭이 있었다. 뭐가 자라고 있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다른 박스에는 열무가 하나 가득 자라고 있었으며 또 다른 박스에는 그토록 간절하게 찾아 헤매던 비름나물로 꽉 차있었다. 누가 여기다가 이런 것을 심어 키우는 걸까 궁금하여 꽂혀있는 작은 표식을 들여다보니 무슨 환경단체라는 글자가 보였다. 보시하는 마음으로 채마밭을 만들어 가꾸는 사람들은 있어도 보시를 받는 마음으로 그것을 뜯어다가 먹는 사람은 없었나 보다. 누군가는 호박을 따가기도 했겠으나 열무와 비름나물은 완전 정글 수준으로 자란 것이 아무도 손을 안 댄 것이 분명했다. 아시안이 아니고야 그게 뭔지, 그것도 내 나이 정도의 아시안 중에서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나 그 식물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좋아라 뜯어갈 텐데 단지 내에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 누구도 채마밭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먹지도 않을 열무랑 비름나물은 왜 심고 키우는 것인지 의아했으나 아무도 안 따가니 나라도 따가야 겠어서 호박도 몇 개 따고 비름나물과 열무를 적당히 뜯어서 남편과 나의 티셔츠 앞자락에 각기 넉넉하게 담아가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도반이었던 남자 사람이 남자 친구가 되었다가 남편이 되었다. 내 인생의 이 시점, 이 나이에 이곳 콜로라도에서 이 백인 아저씨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진정 난 몰랐다. 역시 오직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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