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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Jul 16. 2020

우울증을 알고 나니 백전백승

그 맘을 쉬자

은퇴를 목전에  흑인 매니저를 포함하여  명의 젊은 백인 여성 이발사가 일을 하고 있었던 나의  이발소는 미국 콜로라도 볼더라는 대학도시에 관광지로 유명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그곳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을 하면 가게의 컴퓨터로 모든 것이 입력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발 학교 졸업하고 지원한  직장이라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데다 기술도 미천하여 실수를 종종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데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고 왕따 되고 억울한 일을 겪다가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와서 견디고 견디다가 결국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이 바닥이 되어 무기력증으로 거실 소파에 누워 온갖 괴로운 생각으로 몸과 마음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꼼짝없이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여지더니 급기야는 죽어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있을 것만 같았다. 초겨울 어느  살림살이를 거의  정리했다. 죽고   언니들과 아들들이 뒤처리를 쉽게   있도록 벽장의 옷들과  덮는 이불들 주방도구들을 중고가게에 기부하고 더러는 쓰레기 컨테이너에 던져 넣었으며   타지도 않은  자전거와 외국에 다니면서 오랜 세월 동안 수집해서 애지중지 끌고 다니던 예쁘고 고급스러운 찻잔들과 인형들, 본차이나들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동네 사람들 누구든 맘에 들걸랑 가져들 가시라고. 기러기 엄마로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바리바리 사다 날라 아들들과 재미나게 읽었던  많은 책들이 가장 아까웠기에 당시 다니고 있던 한인교회에 몽땅 기부를 하려고 했더니만 목사님께서 종교서적이 아니면 받지를 않는다고 하기에   끼고 있다가 이도 저도  성가셔서 그냥 버렸다. 초겨울이니 산속으로  나무에 기대어 처방받은 수면제  알을 삼키고 잠들면  체온 증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있겠지. 내일 저녁에 산으로 가리라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생각하고 눈을 감으니 이혼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듯했던  인생을 다시 세워보려 애썼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대학을 다니던 중이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학교를 졸업했고  역시 생계를 위해 잠시 잠깐 식당 서빙도 해보고 공장에서도 일을 해보다가  나은 삶을 위해 모든 경우를  따져보다가 나이 오십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것이   코스의 이발 학교였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면서 잊고 가지 말라고 아들의 런치 가방을 현관문 안쪽에 두고 새벽 여섯 시에 집을 나서면  겨울 해뜨기 전이라 몹시도 춥고 깜깜했다. 삼사십  걸려 덴버 시내에 도착하여 무료로 주차하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등에 걸머진 가방은 어깨를 내리누르고 등짝에선 땀이 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여덟 시간 수업에 방과 후엔 네일 가게에서 네다섯 시간 일을 하고  열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올  있었고 주말엔 풀타임으로 일을 했다.  고생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는 이제 고생 끝이다 싶어 그렇게나 기뻤는데 볼더 이발소에서 겨우   만에 그렇게 무너져 절망감은 실제보다  배로 부풀려진 듯이 컸고 시신으로 누워있는 나를 붙잡고 슬피 우는 아들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떠올랐다. 너무도 마음 아파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 딱히 남겨줄 것도 없는 마당에 애들에게 이런 슬픔과 평생의 족쇄를 채워줄  없어. 사고사나 병사, 자연사로 떠나야지 이건 절대로 아니다 싶어 기를 써서 일어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알고 이겨내자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섭렵하며 우울증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즐거움을 주는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몸을 자주 움직여주고 명상도 하고 고립감이  때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다. 아프면  되는데 또는, 아픈   심해지면 어쩌나 혹은, 이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사람을 진짜로 아프고 더욱 병들게 만든다고 한다. 아플 테면 실컷 아파보라지 그러다 보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지내면 아픔도 병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물러간다고 한다.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일하게   번째 이발소는 화통한 중국 여인이 주인이라 백인 여자애들보다 나을 듯싶었으나 수시로 마작을 하기 위해 사라지는 주인 여자는 청소하면 재수가 없어 돈을  딴다는 징크스를 믿는 모양이었는지 소독이나 청소하는 것을 싫어했다. 거기다가 콜로라도에 살면서는  번도 보지 못한 바퀴벌레까지 등장하자 견딜 수가 없어   만에 그만두고 다시 백인 이발소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만에 다행히도 초보를 벗어날  있게 되었고   환경이  나은 지금의 이발소로 옮기고 이삼 년이 되니 실력과 수입도 안정세에 들게 되어   전에 세웠던 목표지점에 서게 되었다. 삶의 파고를 넘으며 몸과 맘의 병으로 불같은 담금질을 겪으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도 많았으나 삶의 기로마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후회는 안하게 되었다. 힘들게 한국에서 사다 나른  많은 책들을  없애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쉽긴 하지만 것도 당시로서는 어쩔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많이 지금을 살았다면 훨씬 행복할  있었으리라 생각되나 이만큼  것만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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