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선수
작은 엄마들은 뭔 걱정이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큰 형님이었던 엄마에게 와서 털어놓고 위로도 받고 조언도 구했다. 어느 날 작은 엄마가 찾아와 하소연하길 작은 아버지가 학교 앞에서 엿 장사를 하겠다고 하니 형님이 좀 말려 달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노느니 무엇이건 시작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엄마가 그랬더니, ‘하필이면 엿 장사가 뭐 예 유우, 엿 장사가. 애들 학교 다니는데 느이 아버지 뭐하냐고 그러면 엿 장사한다고 해야 것시유? 넘 부끄러워 못 산대유우...’ 하면서 작은 엄마가 울상을 지으셨던 생각이 난다. 우리 남매들은 집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에 있는 초등학교에 차례로 입학하여 다녔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 가까워오면 학교 정문 앞에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이것저것 팔았다. 삐약삐약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병아리들이 가득 든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계신 병아리 할아버지와 모양도 크고 소리도 크게 나는 엿가위를 쉴 새 없이 쩔겅대던 엿장수 아저씨, 연탄 화덕 위에 조그만 국자들을 올려놓고 설탕을 녹이다가 소다를 넣고 부풀려 철판에 납작하게 눌러 갖가지 모양으로 찍어놓고 파는 뽑기 할아버지는 정문 앞의 기본 삼인방이었다. 언니들은 내게 몇 푼 쥐어주며 뽑기를 뽑아오라는 심부름을 종종 시켰다. 학교 뒷문의 담벼락 한편을 의지해 일 구 연탄 화로를 피워 자리를 잡고 쪼그리고 앉아 불기를 쬐며 아이손님이 오길 기다리던 뽑기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설탕이 검게 타서 눌어붙어 까맣게 탄 조그만 양은 국자에다가 설탕을 한 수저 넣어 탄불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저으면 설탕은 금방 녹아 밤색 시럽이 되었다. 거기에 소다를 새끼손톱만큼 넣고 휘저으면 순식간에 갈색 덩어리로 부풀어 오르는 것이 마법 같아 할아버지의 손동작과 그 모든 과정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다. 잔뜩 부푼 덩어리를 편편한 철판에 휘딱 엎어 떨어뜨려놓고 누름 쇠로 누른 후 모양 쇠를 올려놓고 다시 한번 눌렀다. 이때 누르는 힘 조절이 중요했다. 너무 세게 누르면 별이나 둥근 세모가 확연히 드러나 아이들이 쉽게 뽑을 테고 너무 약하게 누르면 그 할아버지의 뽑기는 뽑기가 너무 어렵다고 동네에 소문이라도 나면 손님이 떨어질 테니까. 할아버지한테서 따뜻한 뽑기 한판을 건네받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툇마루를 지나 건넌방 문을 열고 들어가 아랫목에 앉아있는 언니들에게 건넸다. 상 위에 뽑기를 올려놓고 준비해둔 바늘에 침을 발라가면서 별과 둥근 세모 모양을 따라 공들여 깔끔하게 뽑아낸 뽑기를 건네받으면 조심조심 손에 올려놓고 신나서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할아버지는 설탕으로 새로 한 판의 뽑기 판을 만들어 주셨고 언니들은 다시 성공작을 뽑아냈다. 할아버지로서는 반갑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새 뽑기 판을 만들어 주셨었다. 기억나는 대표적인 불량식품으로 얼음 덩어리를 수동 빙수기로 한 그릇 철철 넘치게 갈아 놓고 그위에 사카린을 섞어 단 맛을 낸 빨강, 노랑물을 끼얹어 아이들의 눈을 단 번에 사로잡았던 빙수가 생각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다. 한데 요즘으로 치자면 초등학생 상대 장사라고 하긴엔 너무 말이 안 되는 물품들도 학교 앞에서 팔아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익기도 전에 떨어진 푸른 개 복숭아를 수레에 하나 가득 싣고 와서 파는 아저씨와 흙이 마구 묻어있는 칡뿌리들이 잔뜩 올려진 수레의 상판에 두꺼운 통나무를 가로로 켠 둥근 도마를 놓고 푸줏간 칼로 툭툭 내리쳐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파는 아저씨, 그리고 멍게 해삼 장사하는 아저씨다. 군것질거리가 궁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에게 개복숭아와 칡, 그리고 해삼과 멍게는 좋은 군것질거리였다. 피로 해소와 고혈압, 동맥경화와 고지혈증에 좋아 요즘은 어른들의 건강식이 된 칡을 어릴 때부터 수시로 먹었다. 칡이 처음엔 쓴 듯해도 씹다 보면 단 맛이 느껴져 껌처럼 질겅질겅 씹기 좋았다. 그리고 고둥과 번데기도 인기 있었다. 신문지를 작게 원꼴 모양으로 돌돌 말아 거기에 고둥이나 번데기를 퍼 담고 뜨거운 국물도 약간 부어 주었다. 학교 앞 길 양편으로 줄줄이 늘어 선 수레들의 맨 끝자리엔 멍게와 해삼 수레가 있었다. 아이들이 서는 쪽 수레 상판에는 쭉 펴진 옷핀이 여러 개 꽂혀있는 사과 반쪽이 엎어져 있었으며 그 옆에 놓여있는 양은 대접에는 초고추장이 가득 담겨있었다. 수레의 상판 한가운데에는 물을 쏘아대는 멍게가 잔뜩 쌓여있는 자박지와 해삼을 물속에 빠뜨려놓은 대야가 있었다. 수레의 안 쪽에 서 있던 아저씨는 아이들이 주문하는 멍게와 해삼을 대충 손질하여 양동이에 담긴 물에 역시 대충 씻어서 칼도마 위에서 또다시 대충 토막 내어 그릇에 담아 주었는데 양동이 물을 자주 갈기나 했을까 싶다. 멍게와 해삼 살점을 옷핀으로 어설프게 찍었다가 초장 대접에 퐁당 빠뜨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초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맵고 달달하고 짭짤하면서 시원한 바다가 입안으로 가득 찼다. 단지 아쉬운 건 소주 한잔이었다고나 할까. 사용한 옷핀은 다음 사람을 위해 씻지도 않고 사과에 도로 꽂아놓았다. 살점을 다 먹고 난 후 마지막에 먹는 것이 멍게 꼬다리였는데 그것은 사실 입이자 항문이었다. 처음엔 거칠고 부담스럽지만 일단 씹기 시작하면 짭짤한 바닷물이 이빨 사이로 짓눌려 나오면서 껍질 속 꼬들꼬들한 살이 씹혀져 나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비위생적으로 처리가 된 건강식품을 먹고 다닌 덕분에 세균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되어 철철이 보약 같은 거 안 먹어도 이만큼 버티고 살아내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