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뮤지컬이다. 보는거..? 라고 생각했겠지만 노노! 내가 '하는' 뮤지컬 말하는 거다.
나는 주말이면 뮤지컬 배우가 된다.물론... 정확히는 내가 내 돈 내고 주말에 뮤지컬 동호회를 다닌다.
앗, 혹시 방금 이런 생각하셨나요?
‘우와 멋지다~ 끼가 되게 많으신가봐요~’
‘그럼 노래 잘하시겠네요! 뮤지컬 배우는 춤도 잘 춰야 될텐데... 대단하다~’
그치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스럽게도... 나는 그런 놀라운 재능 따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주말엔 멋진 뮤지컬 배우다! 부족한 실력과는 상관 없이 연습실에서 나를 포함한 동호회 배우님들 모두는 마치 프로 배우들처럼 사뭇 진지하다. 취미 뮤지컬의 세계엔 이상하리만치 끝없는 열정과 노력이 가득하다. 나도 아마추어치고는 큰 진심으로 뮤지컬을 한다.
지금부터 나는 소중한 나의 일부,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Q: 취미가 뭐에요?
A: 저는 취미로 주말에 뮤지컬 동호회를 합니다.
Q: 와 그럼 노래 잘하시겠네요?
A: 아뇨
Q: ... 춤을 잘 추시나봐요!
A: 아닌데요
Q: 혹시 연기를...
A: 아뇨
Q: 그럼 왜...
A: 그냥 좋아서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언제부터 뮤지컬을 마음에 품었는지 잘 모르는데, 초등학생 때 내가 방학 숙제에 이런 말을 적어놨더라.
‘어린이 뮤지컬 구름빵을 보고 왔다. 정말 멋있었다. 커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
이걸 보니 아마 그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물론 그 뒤로 뮤지컬 배우의 꿈은 홀라당 까먹고 다른 장래 희망으로 갈아탔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우연히 그 방학 숙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나의 수많은 장래 희망 후보군 중에 뮤지컬 배우가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또한 나는학창 시절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기에 뮤지컬 같은 건 내 인생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진짜 성실하게 공부만 했고 정말 공부밖에 안 했다. 하지만 은은하게 내 마음 속에 뮤지컬이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도 닦듯 지나간 6년 중고등학생 시절이 지나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내가 앞으로 다니게 될 그 대학의 연극동아리 유무였다.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연극동아리가 늘 하고 싶었다. (사실 뮤지컬이 하고 싶었는데 나는 매우 음치였으므로 양심은 있어서 연극동아리로 빠른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통으로 연극동아리에 갈아 넣었다. 대학을 다닌 건지 동아리를 다닌 건지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동아리에 진심이었다. 몇 차례의 공연 기획 그리고 잇따른 몇 차례의 커튼콜 이후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박수받던 대학생 배우는 곧, 꼬질꼬질한 초보 직장인이 되었다.
처음 1년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에 취미고 뭐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퇴근과 동시에 내 체력은 영업 종료를 선언했고 내 저녁시간은 그에 굴복하여 기절(취침)시간으로 변신했다. 직장인이 된 순간, 내가 다시 무대에 설 것이라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도 아니고 직장인이 무슨 공연을 준비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물을 오랫동안 마시지 못한 사람이 갈증을 느끼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공연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목이 너무 말라서 갈증이 고통이 될 때가 되어서야 ‘물이 정말 중요하구나’ 깨닫는 사람처럼 나는 그제서야 ‘나 공연이 하고 싶구나...’ 깨달았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과하게 빨리 진행되었다. ‘공연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자마자 동호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구글 인스타 otr(뮤지컬 관련 다양한 정보가 올라오는 사이트) 유튜브 등등 모든 정보를 샅샅이 뒤졌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꼭 맞는 동호회를 찾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동호회를 찾아내었다. ‘좋아, 이곳으로 한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자기소개 지원서를 작성했고 제출까지 마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뮤지컬 동호회의 첫 수업을 듣기 위해 낯선 연습실에 앉아 있었다. 동호회 연습실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인원이 빙 둘러앉아 있었고, 생각보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의 유머러스한 농담으로 어색한 공기는 조금씩 깨져갔다. 우리는 연기의 기초부터 배웠다. 바로 이런 게 배우고 싶었다. 곧이어 간단한 대사로 실습을 시작했다. 간단한 대사 한 줄에도 마음이 마구 설레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설레는 시작. 말 그대로 설레는 시작이었다.살면서 대부분의 시작은 설렘과 동시에 다양한 부정적 감정들을 수반했다. 설렘과 부담, 걱정, 책임, 의무 등등...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시작이었다. 온전히 즐거운 설렘만이 있었다. 앞으로가 자꾸 더 기대될 뿐이었다. 이토록 해맑게 신날 수 있음이 신기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연기하니까 어때?’ 물어보셨다. (동호회 선생님들께서는 수강생들에게 편한 분위기로 다가와 주신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빠른 적응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친근히 대해주심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정말 좋아요 선생님. 제 인생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꿈만 꾸게 될 줄 알았지 이렇게나 빨리 그 꿈 속에 들어가 있게 될 줄 몰랐어요. 정말 꿈만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