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오디션을 보는 경험은 그다지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면접을 보면 봤지 오디션은 드물다. 데뷔를 할 게 아닌 이상에야 오디션을 봐야 할 일은 잘 없을 텐데 다들 살면서 데뷔 한 번씩 해보고 그러진 않으니까 확실히 오디션은 드물다.
오디션이라 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프로듀스101’을 떠올리게 된다. 프로듀스101은 내가 고3일 때 시대를 강타하고 전국 여고생들의 마음을 죄다 빼앗은 어마어마한 TV 프로그램이다. 우리 반 여자애들도 거의 다 그 프로를 봤다. 나는 광란의 여고 3학년생들의 틈바구니에서 꿋꿋하게 모의고사를 푼 범생이 포지션이었는데, 사실 나도 집 가서 유튜브로 다 봤다.(황민현 잘생겼더라...ㅎ) 그래서 이게 뭔데 그렇게 난리였냐 하면,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들 중에서 데뷔할 보이그룹을 뽑는 공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였다. 조각같이 예쁜 소년들이 나와서 데뷔의 꿈을 이루겠다고 살벌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데, 계속되는 오디션 결과에 따라서 어떤 연습생은 떨어지고 어떤 연습생은 순위에 오른다. 이걸 보고 나면 오디션이라 함은 ‘도끼눈을 뜬 심시위원들이 순딩한 어린 양같은 연습생들을 오지게 째려보는 행위’로 확실히 정의 내리게 된다.
그런 중에 안타깝게도 뮤지컬 동호회에 가입하기 위해 내가 넘어야 할 첫 관문이 바로 오디션이었다.내가 고른 그 뮤지컬 동호회에는 입회 오디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작품의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어필하는 오디션이 아니라 이 동호회에 내가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합격/불합격이 있는 오디션이었다.
당장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의 반응은 어땠을까.싫어 죽겠고 너무 부담스러워서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사실 나는 내가 오디션을 찾아서 간 케이스이다. 애초에 동호회를 고를 때 오디션을 반드시 보는 곳으로 선택하겠다고 좁혀 놓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동호회를 해본 적은 없지만 감히 추측하건데, 팀이 꾸려진 이후에 모종의 이유로 중도 하차를 하시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오디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 중도 하차가 적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기로는 별 관련 없는 것 같다. 관두실 분들은 뭘 해도 중간에 관두시고 끝까지 하실 분들은 아무렴 끝까지 하신다.)
그래도 막상 오디션 안내 메일을 받으니 온몸이 두근거렸다.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지정곡, 자유곡, 지정 연기 세 가지였다. 연영과 입시 썰 유튜브 볼 때나 들었던 지정곡, 자유곡 이런 말들이 내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와 이거... 좀 부담되는데...?’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좋았다! 내 안의 도전 욕구가 마구 샘솟았고 반드시 잘. 할. 거. 야 하는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냥 오디션을 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특별한 뭔가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바로 집 주변에 있는 보컬 연습실을 알아보았고 연습에 돌입했다. 현생도 꽤 바쁠 시기였는데 아랑곳않고 꾸역꾸역 연습실에 나갔다. 그동안 나는 칭찬받고 싶은 10살 마음이 되었다.솔직히 실력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력을 준비해 갈 능력도 없었다.) 그치만 내가 이 오디션을 위해 많이 준비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라는 사람을 좋게 봤으면 좋겠고 앞으로 내가 열심히 할 것이라는 좋은 인상을 심고 싶었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그 동호회가 어떤 동호회인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나 지금 좀 과한가...?’ 싶었지만 멋지게 첫 시작을 하고 싶은 커다란 마음에 비해 그런 건 작은 잡음일 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오디션 당일. 미리 오디션 장소 근처에 연습실을 잡고 한 시간 정도 목도 풀고 연습한 것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보다 먼저 오디션장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차례를 기다렸다.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원래 긴강을 잘 안 하기도 하고 오히려 실전에 강한 편이었으므로 막상 시작하면 어떻게든 알아서 하고 오는 적이 많아서였다.
핫, 촤! 그래 사실 맞다! 준비도 많이 했겠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그렇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스텝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금방 내 순서가 되었다.
자. 이제 진짜 들어간닷!!
문을 여니 넓은 연습실이 눈앞에 펼쳐졌고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선생님께서 가운데에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렸다.
그 순간, 엥?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갑자기 온몸 근육이 발발 떨리기 시작했고 거기에 놀란 심장이 오지게 펌프질을 시작했으며 거기에 놀란 뇌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무대 체질온 개뿔~ 정신줄 놓는 데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미친듯이 나대는 심장박동 때문에 눈잎이 회까닥 회까닥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입 밖으로 무슨 말들을 내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와정말떨린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걸 어디에 내려놔야할까요 어 내 핸드폰이 어디갔지 아 여깃네 근데 핸드폰이 왜필요하냐면 첫음을 들어야될것같은데 첫음이 뭐엿더라 아 이거였나 바로시작하는건가 이거지금 바로할까요
이 중에 뭘 말로 했고 뭘 생각으로 했는지를 모르겠다.
별안간 손까지 떨리는 와중에 준비한 노래와 연기를 시작했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 싶은 수많은 순간들을 와다다다닥 질주했다. 준비한 걸 어째 다 하긴 했다. 그때 나는 마치 벌거벗은 기분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훌렁훌렁 벗어 던진 옷을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눈빛으로 주점주섬 다시 입혀주셨다.
끄덕끄덕 그래 잘 하고있어 그르치 아고 잘한다.
재롱 떠는 조카 바라보는 이모의 표정을 받으면서 나는 쪽팔림보다 안정을 얻었다. 응애.
이제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다 싶은 순간에 심사위원님께서 물으셨다.
“마지막 한마디 하실래요?”
마지막 한마디,,, 마지막 한마디 뭐하지?!!!!
“동호회 지원 공지글에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저 간절합니다. 많이 간절해요. 뽑아주세요....”
나는 정말 간절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간절한 내 자신이 어이가 없는 와중에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간절했다. 그 말을 남기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허둥대다가 도망치듯 오디션장을 빠져나왔다. 화끈거리는 두 볼과 너무 오랜만에 빨리 뛰어본 연두부 심장을 달래며 집으로 조속히 복귀하였다.
뭐... 제대로 한 건 없지만 아무튼 오디션이 끝나고 나니양심 없게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후회가 밀려오기 전에 냉큼 꿈나라로 도피했다.
며칠 뒤. 기다리던 번호가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합격했다. 대학 합격만큼 기뻤다. (진짜로)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동호회 좀 다니겠다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싶은 억울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지만 이내 '뭐 어쩌라고 좋은걸ㅋ'의 압승으로 싱글벙글 첫 수업 일정을 핸드폰 캘린더에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