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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배우 Aug 07. 2024

4화_못해서 더 즐거운 것

빵댕이 흔들어~ 땐쓰타임!

모든 사람은 잘하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는 거야~ 다 잘할 수는 없어!     


맞는 말이다. 근데... 내 춤은 좀 심했다. 그래도 오늘은 춤 얘기를 해보려 한다.     


살다 보면 그냥 춤을 춰볼 기회들이 가끔 생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민망한 마음에 필사적으로 기억이 안 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한 번은 춤으로 무대에 선 적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초중고를 한국에서 졸업했다면, 100퍼센트! 분명하다!


여러분들께서 떠올리기 힘들어하시니 내가 대표로 춤과 함께한 어둠의 추억을 끄집어내 보겠다.     


초등학교 왕언니 부심이 있던 6학년.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랑 500원짜리 컵떡볶이 사서 나눠 먹고 더운 날엔 슬러시 쫍쫍 빨아먹는 게 낙이었던 시절에 수학여행에서 장기 자랑을 한다는 건 초딩 기준 최고의 도파민이었다. 금방 걸그룹이 결성됐고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뷔곡은 f(x)의 Hot summer로 정해졌다. 우리는 정말 데뷔라도 할 것처럼 연습했다. 친구 집에서 연습하다가 배고파서 대충 맨밥에 참치캔, 김자반 넣고 비벼 먹었던 게 너무 맛있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래서 결국 무대는 잘했냐고 묻는다면? 초딩에 대해서는 아무도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지 좋을 대로 기억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데뷔 무대는 짱 멋졌다.     


그 뒤로는 고등학생 때 반 친구들과 울랄라세션의 ‘아름다운 밤’ 춤으로 수학여행 장기 자랑을 했던 적이 있었다. 순수한 열정으로 반 전체가 뭉치는 건 다 늙은 고등학생에게 기대하기 어려웠으므로, 조별 수행평가하듯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의 노력만 들여 무대에 올랐다. 적어도 다른 애들은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춤추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혼자 다르다는 건 여고딩에게 최악이므로 티 내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무대가 끝나고 친구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너 춤추는데 왤케 웃어! 진짜 dog 신나 보였음ㅋㅋ”      


춤과 관련된 여러 경험을 토대로 알게 된 것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춤을 잘 못 추는구나.

둘째, 춤추는 건 정말 재밌구나.     


그런데 두 번째는 알겠는데 첫 번째는 자꾸만 반박하고 싶어졌다. 배우지 않고 잘하는 사람은 원래 없는 거 아닌가? 언젠가 춤을 정식으로 배우게 되면 사실은 숨겨져 있었던 재능이 발견될 수도 있지 않나? 나는 내가 춤을 못 춘다는 걸 아직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에 박차를 가했던 영상이 있다. 뮤지컬과 관련된 다양한 썰을 푸는 유튜브 채널인데 뮤지컬 안무는 팔다리만 크게 쭉쭉 잘 뻗어도 성공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딱 거기에 꽂혔다.

'그래 다른 춤은 몰라도 뮤지컬 안무는 나랑 잘 맞을지도 몰라! 팔다리 뻗는 거 정도는 자신 있지!'

그 영상을 계기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잠재적 댄싱퀸에게 진짜 춤을 배울 기회가 찾아오고 말았다. 뮤지컬은 연기, 노래,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므로 동호회에서도 연기, 노래, 춤의 기초부터 가르쳐 주었다. 드디어 춤의 기초를 배우는 날이 온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들부터 가르쳐주셨다. 간단한 박자에 맞춰 바운스를 배웠고 그것을 응용한 동작까지 차근차근 배웠다. 아직은 춤이라고 부르긴 애매한 움직임들이었지만 노래에 맞춰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하고 재밌었다.      


배우는 동작이 많아질수록 더 재밌었다. 그리고 점점 더 확실해졌다. 나는 춤에는 재능이 한 톨도 없었다! 배울수록 재능이 보일 거라고 믿었는데 배울수록 처참했다. 일단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왼쪽!이라고 힘차게 외치는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힘차게 오른발을 뻗었다. 입력과 출력이 완전히 다 꼬인 느낌이었다.      


“오른발 뻗으면서 왼손 앞으로 5, 6, 7, 8!”     


오른발 뻗고 왼손? 왼손이 어디지? 고민하는 동안 박자는 나를 버리고 저 멀리 앞서갔다. 때아닌 신체 탐구를 하는 나를 박자가 버리고 도망가길 수십 번, 수업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오른발 왼발 구별도 못 하는 수강생 가르치느라 수고는 선생님께서 다 하셨죠.     


이리도 철저히 못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너무 못하니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잘해야 하는 것들은 찾지 않아도 세상에 널렸다.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더니 대학생이 되니 잘 꾸며야 한댔다. 직장에 가니 어떤 건 잘 물어보는 게 눙력이라고 또 어떤 건 알아서 하는 게 능력이란다. 흥! 적당히들 좀 하쇼!     

 

‘그냥 좀 못하면 안 되냐!’고 실체 없는 무언가에 따져 물었던 날들이 많았다. 하나 잘하게 되기에도 벅찬데 생애주기마다 잘해야 되는 걸 바꾸니 늘 기준에 못 미쳤다. 그 기준이란 남이 만든 것도 있고 내가 만든 것도 있지만 출처와 상관없이 기준은 늘 내 위에 있었다.      


기준은 기대라고도 볼 수 있다. 아예 못했으면 기대도 안 했을 텐데 가능성이 보이니까 기대가 생기고 기대만큼 따라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대가 있다는 건 감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가 없으면 편안하다. 나는 내 춤에 기대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틀리는 건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잘하면 스스로가 아주 기특했다. 잘할 필요 없이 그냥 신나기만 해도 된다는 점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마음껏 못해도 되는 것을 너무 못하면서 즐거웠다.      


춤이 너무 재밌어서 나중에는 동호회에서 운영하는 춤 특강도 신청해서 들었다.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에 나오는 ‘This is me’라는 노래에 맞춘 춤을 배웠는데 당연히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인내심 넘치는 선생님 덕분에 배운 춤으로 동호회 발표회에서 작은 무대를 올리기도 했다. 발표하는 당일까지도 춤이 외워지질 않아서 맨 뒷줄 구석에서 앞에 계신 분들의 춤을 반 박자씩 느리게 따라 춰야 했지만 그래도 한 곡을 마무리했다는 게 뿌듯했다. 앞으로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 없이, 못 해서 더 즐거운 흥취로 춤추고 싶다.     


위대한 쇼맨 <This is me>

https://youtu.be/h2TLNdaQkL4?si=OJdTiahPLj2E_G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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